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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정탐 (민 13:25-33, 14:4-10) 


애굽의 종살이, 세상의 종살이 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출애굽, 죄에서 부터 해방시킨 다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12명의 정탐꾼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십니다. 

모세는 정탐꾼들의 임무를 13장 18-2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2.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 그들의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3.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그 증거로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40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온 다음 모세의 명한 임무에 따라 보고를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두 사람이 막대기를 매어 들을 정도로 큰 그 땅의 열매를 가져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임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그 땅 사람들은 강하고 많다. 성읍은 산지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다. 

비교적 모세가 명한대로 임무를 잘 수행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것을 들은 백성들은 기대에 차기도 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어떤이는 그 땅을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떤 이는 피곤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보고를 들으며 소란스러워 하는 백성들을 조용하게 한 다음 갈렙이 먼저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이다." (민 13: 30) 


그러나 다른 열명의 정탐꾼은 말합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땅을 치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민 13:31절) 이라고 반대합니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하는대도 하나님 중심으로 믿음을 가지고 보고를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민 14장 8절)이라고 고백하는데

나머지는 하나님 없이, 믿음 없이 그 땅과 가나안 사람들을 바라보니까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니라 (민 13:33)이라고 자신을 비하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마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또 히브리서 기자는 이 믿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쉽게 말하면 내 마음으로 어떻게 보느냐가 곧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바라본 그 땅은 이미 우리에게 맡겨진 땅이요 예정된 땅이요 구별된 땅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보낼때 당부한 것이 무엇입니까? 

13장 20절에 보면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장 9절에 여호수아와 갈렙도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눈에 보이는 것,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때문에 요동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려워하는 것은 곧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 배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같은 사물을 믿음의 시각으로 보느냐, 불신앙의 신앙으로 보느냐의 관점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사물도 어디서 바라보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똑같은 자연도 어느 시각에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집니다. 


정탐꾼들의 처음 보고에 의해 밝혀진 객관적인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 땅은 과실이 잘 열리는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라는 것이고, 그렇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크고 강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잃어버리고 불신앙의 눈으로, 두려움의 눈으로, 자꾸만 바라보니까 

13장 32절에 사람들은 이 객관적인 사실을 어떻게 바꾸어 버립니까?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들어가면 죽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와서 보고할 때는 그들 입으로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였는데도 이제 믿음없이, 두려움을 가지고 말하다 보니까 이제 좋은 점은 하나도 안 보이고 땅조차도 사람을 죽이는 나쁜 땅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말들이 쏟아지니까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했다고 합니다. 

비관적인 생각이 지배하니까 밤에 잠도 못자고 괴로워 합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 원망의 타겟은 애굽에서 그들을 구출한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였는가?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자 애굽으로 돌아가자..." (민 14:3)


과장에 과장을 더하여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극단적으로 생각하면서 다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말미암아 홀해를 건너서 온 민족이 이제 하나님을 떠나서 어떻게 다시 홍해를 건너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극단적인 표현에 분노하게 됩니다. 

14장 11절에서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22절에 보면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노하십니다. 

열번이나 나를 시험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항상 내가 그들과 함께 했음에도 열번씩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공개적으로, 집단적으로 원망했음을 서운해 하시는 것입니다. 


40일의 정탐...

많은 성경 학자들은 정탐의 기간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거리도 그렇고 그들의 땅을 살피고 사람들을 살피고 열매를 가지고 오는 것은 2-3일만 있어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천히 해도 일주일이면 쉬엄쉬엄 하면서도 완수할 수 있는 임무입니다. 

거리도 개인적으로 가기에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40일을 머물면서 정탐을 했다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보고 금방 판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보고 경험한 것을 나름대로 정리하며 서로 나누면서 백성에게 알릴 좋은 소식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마음을 정하고 12명의 마음을 정하는 기간이 40일이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한 마음으로 정해지지 않고 두 파로 갈립니다. 

처음에는 좋은 땅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죽이는 땅, 나쁜 땅이라고 했다가 갈팡질팡하며 정리되지 않은 보고를 합니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40일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으로 40일이란 기간이 등장하는 것은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입니다 . 

노아의 홍: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창 7:17) 

모세: 40일동안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금 송아지를 세워 우상숭배. 

엘리야: 이세벨 여왕을 피해 로뎀나무 아래 피했다가 40일동안 광야를 지나 시내산으로 들어감 

에스겔: 40일동안 이스라엘 죄짐을 짐 

니느웨: 40일 후에 무너지리라 예언 

예수님: 40일 금식하시고 이어서 사탄의 시험을 당하십니다.  

            부활과 승천 사이 40일동안 머물며 사역함 


40일은 우선 육신적인 죽음의 시간입니다. 

홍수를 통해서 죄악을 죽이고 금식을 통해서 내 정욕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시간입니다. 

피곤을 물리치고 다시 힘을 내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니느웨라는 큰 죄악의 성읍을 무너뜨리는 시간입니다. 

내 안의 죄악, 내 안의 불신앙,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 내 안의 불평, 원망, 모든 어두운 것들을 몰아내는 시간이 40일이라는 기간입니다. 


또한 40일은 고난과 훈련의 기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알리는 준비의 기간입니다.  과거의 죄된 세상, 죄된 마음은 물과 함께, 성령과 함께 죽이고 새 창조의 세계로, 부활의 세계로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40일은 하늘의 영원한 문들이 열리며 하늘의 영광을 때를 예비하는 기간입니다.              

40일은 죄와 싸워 승리해야 하는 기간이고 육신을 이기고 정욕을 이기고 하나님의 통치로 들어가는 기간입니다.  

40일은 나를 낮추시며 시험하셔서 내 마음이 어떠한지를,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달아보는 기간입니다. 

자기 삶, 자기 마음의 실체를 시험할 수 있는 기간이다. 


40일의 기간동안 산에 있는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백성들은 황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40일의 기간동안 죄악 속에 있던 백성들은 물과 함께 심판 당했습니다. 

그러나 배에 타고 있던 노아와 그 가족들은 새 세상을 꿈꾸며 인내했습니다. 


40일의 기간동안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바라보며 감격했습니다. 하나님이 저 강한 자들도 능히 자기들에게 주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열명은 40일의 기간 동안 똑같은 땅을 보며 절망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애굽을 생각했습니다. 악평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시험했고 백성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고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후에 우리에게 이러한 영적인 40일이 임합니다. 

똑같이 은혜 받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꾸 과거로 회기합니다. 

자기가 맛보고 경험한 은혜를 거부하고 악평하며 다시 과거의 자기로, 변하지 않는 자기로, 소망이 없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사람들은 은혜 뒤에 오는 영적인 고통의 40일을 통하여 성숙된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사망을 이기고 생명으로 나아갑니다. 


여러분 40일의 정탐은 결국 내 마음을 바꾸는 시간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의 시간이고 내 안에 들어있는 부정적인, 파괴적인, 극단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약속에 근거한 믿음의 눈, 은혜의 눈, 사랑의 눈을 갖는 기간입니다. 


이제 우리 로고스 교회 후반기에는 영적인 캠페인을 좀 벌이려고 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은 결국 자기 마음으로 부터 나오는 죄입니다. 자기는 바꾸지 않고 환경만을 바꾸고 싶은 이기심과 조급함에서 오는 불신앙입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는 자는 회개합니다. 회개한 심령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개 전에 세상을 보면 원망합니다. 

회개 후에 세상을 보면 감사합니다. 


성도들이 교회나 집에서나 어디에서든지 만나서 얘기 할 때 

우리가 명심해서 

원망금지, 불평금지, 회개와 감사 OK

원망하는 자, 불평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든지 원망금지 불평금지 회개 감사 OK! 


우리가 오늘 나눈 말씀을 적용해서 정말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우리 로고스교회와 그 지체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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