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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보내며 - 적극적 평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 20:19-22]

 

한 해의 표어를 받으면 한 해 동안 어떤 굴곡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감사한 일이건, 고통스런 일이건 가장 먼저 표어의 말씀을 떠 올리며 그 말씀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샬롬!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2019년도에 대한 표어로 받았을 때는

성도들도 좀 늘고 재정적으로도 안정이 되어서 이제 성도들 가정마다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는가 보다 하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표어의 말씀만 딱 떼어 보면 이제 고난 끝 행복 시작 하듯 예수님께서 평안을 선물로 주시는 말씀 같았지만 그 말씀이 속한 요한복음 20장 19-22절의 말씀을 보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평안과는 좀 맥락이 많이 달랐습니다.

 

즉,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평안과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안은 그 성격이나 내용이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 바란 평안, 우리가 바라는 평안

이스라엘의 독립, 이스라엘의 회복, 문제가 해결되고,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문제가 없어지고, 방해꾼들이 사라지는 걱정 근심할 것 없는 평안.

상황적 평안, 감정적 평안, 물리적 평안.

그런데 삶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평안이 과연 있는가? 잠시 잠깐 문제가 해결되고 방해꾼들이 사라지면 잠시잠깐 편안할 수 있지만 그 편안함이 얼마나 지속되는가?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나 또 다른 문제, 더 큰 문제가 다가오고.....

 

  • 주님이 가져다 주신 평안

 

    • 안식 후 첫 날...(19절)

 

첫 안식일 - 6일간의 창조 사역 이후-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 좋았더라 하시면서 창조사역의 완성으로서 맞는 첫 안식일.

 

그런데 하나님이 안식하시고 그 안식을 나누어주셨던 완전한 안식이 죄로 인해 깨어지고 안식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두 번째 창조사역, 말씀으로, 손으로 빚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창조하신 인간을 위해, 말씀 대신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된 말씀으로, 손으로 인간을 빚으신 것 대신, 손수 그 손에 못에 박히면서 십자가로 죄를 지운, 죄값을 대신 지신, 그 새로운 창조의 사역의 결과로 얻은 두 번째 안식...

 

그런데 자기의 죄가 사해진 줄도 모르고, 여전히 이스라엘은 그대로,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있고, 성전의 제사장들은 여전히 믿고 의지할 수도 없고, 자기들이 기대했던 예수는 십자가의 형틀로 사라지고....

평안과는 완전히 반대된 상황에서 모든 문을 닫아 버리고,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제자들....이런 상황 속에서 평안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상황과는 정반대인 그런 참담한 상황.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는 어디로 오는가? 바로 평안과는 전혀 정반대인 상황의 정 가운데 중심에서....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말씀이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혼돈과 공허의 상황에서 "빛이 있으라"

말씀 하신 바로 그 창조주의 말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 분은 절망 끝에서 평강을 창조하시는 창조주시다!

 

그리고 상황만 변하기를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신다. 못박힌 손, 창에 찔린 옆구리....

죽어야만 하는 그 예수가, 죽은 줄만 알았던 그 예수가

못박힌 손 그대로, 찔린 옆구리 그대로, 피와 물을 쏟은 그 옆구리 그대로

그 고통에도 죽지 않았노라고,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너희의 그리스도라고....

그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며

그러니 너희도 괜찮다고, 고통스러워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요

물가운데를 지나도 불가운데를 지나도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요, 너는 절대로 안전하다고....

그 절대적, 적극적 평안으로 제자들을 초대하신다.

성령과 함께 거하는 평안. 상황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평안.

 

폭풍 가운데서도 잠잠할 수 있는 평안.

 

바로 적극적, 절대적 평안이다.

우린 여전히 그 평안과는 거리가 먼 세상에서 산다.

여전히 우리는 사람의 말 한마디, 표정 한 마디에도 평안을 잃어버린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황을 바라보며 절망한다.

 

그런데 예수를 바라보며, 그 분의 말씀을 묵상하며 조금씩 상황적 평안은 거짓 평안이요, 금방 지나가는 평안이요, 주님 주신 평안만이 요동치 않는 평안임을 소망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 숨쉴 때까지 계속적으로 소망하고, 갈망하고, 기도해야할 성도의 평안이다.

 

shalom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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