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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제목: 낙심과 싸워 이겨라.

본문: 느혜미아 4 1-14

 

이 세상에 있는 질병, 아니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인간에게 가장 위협을 주는 질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에이즈? 문등병? 여러분은 인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인간에게 해를 끼쳤던 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계 제 2차 대전때 악명높던 아우슈비츠 수용서에서 독일군이 연합군에 항복하기 바로 전해인 1944년 겨울 갑작스레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이전까지 그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용소에서는 하루 한 잔의 물이 배급되었는데 그들은 반은 물을 마시고 반 컵의 물로 세수를 하고 유리조각을 가지고 면도까지 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거의 끝나버릴 1944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갑작스레 많은 유대인들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질병이나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944년 수용소 안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독일군들이 수감자들을 석방시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은 그 소문을 믿으며 고된 수용소에서의 삶을 참으며 한 잔의 물을 마시면서도 그 물로 세수도 하고 면도도 하며 자신을 지켜 왔던 것이지요. 이제 조금만 참으면 가족들도 만나고 자유를 얻게 되는구나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사람들은 막상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석방의 소식이 없자 급기야 절망하고 낙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고문에서도 버티고 이겨냈던 사람들이 낙심하게 되니까 삶의 의지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그 다음해 4월까지 아우슈츠 수용서에는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죽어나가게 됩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해 5 8일 히틀러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수용서의 모든 유대인들이 석방되게 된 것입니다.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라는 사람은 그의 유명한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죽음이 최대의 위험일 때는 사람은 살 것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한 층 더 무서운 위험에 부딪치면, 사람은 죽음을 원한다. 그리하여 죽음이 희망이 될 만큼 위험이 클 때, 그때에 죽는 것 조차도 바랄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절망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불치병이나 고난에서도 인간은 살려고 하는 희망을 잃지 않지만 절망이라는 병, 낙심의 병에 걸리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되는 가장 치명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낙심은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낙심합니다. 남녀노소,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걸릴 수 있는 병이 낙심의 병입니다. 그리고 한 번 낙심하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낙심합니다. 낙심의 병은 고질병이고 끈질긴 병이고 또한 전염병입니다. 낙심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도 낙심하게 됩니다. 혹시 낙심의 병의 영향력 아래에 계십니까? 스스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숨 쉬면서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낙심의 원인과 그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줍니다. 낙심의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에게 진단과 처방을 내려 줍니다. 말씀을 통해서 낙심의 병, 절망의 병에 대한 성경의 해결책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가 고역을 시키고 노동과 비참한 생활을 영위해 가도록 한지도 어연 70년이 가까워오고 서슬이 시퍼렇던 바벨론도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상대해 이김으로 바벨론의 영화도 끝이나고 페르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던 때였습니다. 느헤미아는 바벨론에서 태어났지만 이방신을 섬기지 않고 신앙과 조국으로 돌아 가려는 열정을 가슴에 담고 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에세 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하는 술관원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을 책임지는 중요한 요직에 있었지만, 자신의 안전하고 평안한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조국의 일을 염려하는 자였습니다.

B. C. 445년경(참조, 2:1)에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궁에서 패망한 조국 예루살렘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도성이 훼파되었고 남은 유대인들이 능욕과 갖은 시련을 당한다는 소식은 그로 하여금 페르시아 성전에서 금식케 하였고, 마침내 왕께 간청하여 예루살렘 귀향길에 오르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지역의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예루살렘에서 그는 무너져 버린 성벽을 재건하려고 합니다. 3장에 보면 느혜미아의 지도를 통해 각 가정과 지파들이 얼마나 열심히 성벽을 재건하는 데 동참하고 일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재건 사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의 파견으로 위협을 느낀 예루살렘 인근의 지도자들, 특히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건너편 암몬의 통치자 도비야의 방해 책동 등은 재건 사업의 큰 장애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는 넘치는 열심과 열정이 있었고 성벽을 재건한다는 사실에 들 떠 있었지만 일이 계속 진행되면서 낙심하게 됩니다. 느헤미아 4장에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4:6)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백성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는 성벽을 절반이나 쌓아 올렸다.”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그 때 유다 사람들은 몹시 지친데다가 제거할 흙 무더기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성벽을 쌓을 수 없다고 불평했으며 우리 원수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밀어닥쳐 우리를 죽이고 공사를 중단시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고 합니다. 원수들의 주변에 사는 유다 사람들이 열 번이나 그들의 위협과 계획을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자 그럼 느헤미아와 그와 함께 사람들이 처한 낙심의 이유들을 하나 하나 살펴 봅시다.

첫 째 그들이 낙심한 때는 그들이 성벽재건을 절 반쯤 했을 때였습니다. 언제 가장 쉽게 낙심합니까? 일을 절반쯤 했을 때 낙심을 우리를 건드립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열심히 일합니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신선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신선함은 사라지고 일은 지겨워집니다. 삶은 다시 피곤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빠지게 되고 진부해지고 습관적인 삶은 사람을 피곤케 합니다.

산을 오르기 전에 우리는 산의 정상을 쳐다보며 생각합니다. “한 두 세시간 이면 정상까지 가겠지.” 하지만 겨우 절반 밖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3시간이 훌쩍 지납니다. 그럼 고민하게 되지요. “계속 올라가야 하나? 내려가는게 더 좋지 않을까?” 피곤함은 낙심을 불러 일으키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며 보통 중간 지점에서 잘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4:10)

낙심의 이유. “제거할 흙 무더기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성벽을 쌓을 수가 없다.” 성벽을 재건하려 하다 보니까 이전에 있었던 깨진 바위덩이가 여기 저기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들은 흙무더기와 쓰레기 더미를 보고 낙심하게 됩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아 일을 계획은 계속 지연되고 일을 과연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불안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동시에 이전의 잘못된 일과 잔재들을 치워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청소의 일은 언뜻 기대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지만 동시에 죄에 젖에 있고 세상적인 가치관에 젖어 있는 나의 내면의 쓰레기를 치워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치워 나가는 과정은 끝이 없어 보이고 때로는 불가능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치워야 할 쓰레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사명과 목표와 계획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치우다가 절망하고 낙심하고 계십니까? 힘이 다 빠져 이제는 못하겠다고 하십니까?

세 번째, 그들의 일을 기뻐하지 않는 세력들의 방해와 위협 때문입니다. 1절의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고 비웃으며, 3절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 4:7-8]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사람들은 먼저 유대인들을 비방했고, 조롱했고, 그리고 협박하고 위협했습니다. “너희가 성벽을 계속 쌓으면 우리는 너희를 죽일 것이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좋아할 사탄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희들이 해 봐야 얼마나 하냐 하면서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결심이 강해 끊질기게 지속되면 이제는 위협하고 협박합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고소하고 우리를 무너뜨리려 한다. 낙심은 그들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 마귀를 대적하라. 대적의 무기는 말씀과 기도.

ex)신앙생활 열심히 하려는데……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을 주고 절망을 주었던 사람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보다도 원수들 가까이 사는 유다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라고 부정적이고 낙심케 하는 비관적이고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데, 그래봐야 네가 별수 있어? 우리는 어차피 돈 앞에 장사없고, 세상을 벗어나 살 수 없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면 세상에서 왕따가 되고 만다는 신앙인들 앞에서 가장 큰 낙심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낙심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 4:4- 4:5]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è   비방하는 자에게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 기도 할 때에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나타난다.

1)         비방자들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라.

2)         비방자들로 인한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신다.

2.       [ 4:13-14]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1) 종족에 따라 재배치- 지지 그룹을 만들라. 낙심한 사람은 그들을 뒷받침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Ex) 모세: 이드로와 가족들.

[ 4:9- 4: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 주를 기억하라.

-              과거에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              현재에 나와 함께 동행하고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              미래에 우리에게 행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라.

è   기억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재헌신 하라. 그 분의 영적인 능력 안에, 그 분의 주권 안에 들어가라.

è   그 분은 우리를 이끌어 오시고, 우리를 책임지실 능력의 아버지, 낙심될 때, 상황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라. 감정이 생각을 지배하도록 내어 놓지 말고 생각이 감정을 다스리도록 하라. 그리고 말씀 가운데 당신의 생각을 집중하라.

낙심은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포기할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위대한 신앙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에도 낙심하는 것을 거부했다. 피곤하고 실망될 때도, 실패하고 두려울 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위대한 신앙인이란 단지 엄청난 인내심을 가진 보통사람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포기하지 않는 자다.

 

전반기의 사역을 끝내고…. 후반기를 준비하는 때…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우리를 선하게 이끌어 왔나.

그러나 동시에 너무 지쳐있는 모습들… 때로는 낙심된 모습들…

우리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참고 달려 왔는데, 몇 분은 직장을 잃기도 하고, 몇 분은 육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하기도 하고, 몇 분은 낙심하여 예배에 빠져 있기도 하고, 몇 분은 건강이나 가족의 건강으로 미래에 대해 두려워 하기도 하고…. 주변에서는 우리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모습도 있고, 때로 믿음의 동료들까지 낙심되는 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기도에 물러서지 말자. 시험 받더라고 예배의 처소에서, 기도의 처소를 지키는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억하자.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서로 일으켜 주자. (이드로와 십보라가 모세를 일으키듯이)

 

해방의 날을 4개월 남겨두고 낙심중에 죽어갔던 수 많은 유대인들이 될 것인가? 끝까지 참고 이겨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와 영광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까? 바로 여러분의 선택에 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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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직예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2.08 06:02

    좋은글 감사합니다

  2. 오직예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2.08 06:02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