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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본문 : 미가서 6 6-8

 

목사가 되고 영성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 계기, 원래 신학교는 기독교 상담을 공부하기 위해 온 것.

신학교 3학년 때, 인생의 여러 문제(결혼, 진로)가 겹쳐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잘 응답해 주시지 않을 때머리 속이 너무 복잡할 때

중세 교회사 수업시간의 일환으로 인천에 있는 한 봉쇄 수도원 방문

봉쇄 수도원은 바깥 출입을 제한하며 그 곳에서 평생 머물면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당시 나는 수도원을 현세 도피적이고 비성경적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마치 군대 훈련소 첫 주간에 방문했던 영창 속의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 만큼 봉쇄 수도원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무섭고, 낯설었다. 그들을 볼 수는 있었지만 수도 중이던 그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그들 또한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듯 하였다.

 

미리 교수님의 부탁이 있었던지 한 수도자가 나와서 수도원을 안내해 주었고, 그리고 우리에게 몇 마디 말을 했다. "개신교 신학생들이 보기에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 알 만합니다. 속세를 떠난 사람들처럼 도피한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지요.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딪치며 살아가는 삶이 어쩌면 맞는 것이겠지요. 전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실어 나르는 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라는 바다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그런데 그 배도 때때로 길을 잃지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길을 잃었을 때에 잠시 바라보며 길을 되찾는 등대처럼, 저희 수도자들은 세상 속의 교회가 길을 잃었을 때에 한 번이나마 빛을 비추어 줄 수 있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을 훈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거나 읽습니다. 그들의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분량에 때때로 큰 도전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신문을 보면 많은 목사님들이 때로 사사로운 일상의 문제 안에서 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넘어짐이 결코 말씀이 없거나 기도가 모자라서 생긴 것 같진 않습니다. 일상에 대한 훈련, 삶에 대한 연습이 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수행하는 것은 반복적인 매일 매일 삶 속에서 일상에 대한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일상 속에서 지쳐 그리스도의 은혜마저 볼 수 없던 때에 그 수도사의 한 마디는 내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내 일상 속의 수많은 문제가 그들의 반복되는 일상의 훈련 속에서 정말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첫 수도원의 방문은 내 삶을 조금씩 바꾸었고 이 곳 미국에서 영성을 공부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때 그 수도사가 한 말, 등대 같은 존재, 그리고 일상에 대한 훈련이라는 말이 나를 목사로, 그리고, 참 목사 같은 목사가 되기 위하여, 다시 말해 영성이 있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기독교 영성을 공부하게 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정말 어떻게 하면 구도자의 삶을 살까? 정말 때묻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까? 남들에게 등대 같은 존재가 될까? 고민하면서 공부하고 또한 많은 목사님들과 신부 혹은 미국으로 유학 온 한국의 수도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신부들과 수도자들을 이곳에서 만나고 난 그들이 고민하는 말들을 듣게 되었다.

결혼 않고, 사회생활 않고, 살다 보니까아무리 그들의 고해성사를 듣고, 그들을 상담해주고, 그들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주려 해도 도무지 그게 체감이 안된다. 그들이 하는 고민의 대부분이 가정문제, 부부문제, 자녀 문제인데 아무리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그것을 공감하려고 해도 그게 피부에 와닿지를 않을 때에, 자기들이 아무리 좋은 말로 그것을 들어주고 상담해 주어도 스스로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 스스로 독신이 신앙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회의….

또한 단순한 삶 속에 채우지 못하는 허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에딕트가 되는 것. 음식, , 기호…..

그러면서 개신교 목사들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결혼 생활하면서 목회를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개신교 목사들과 신부들,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 참 그리스도인, 정말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모여 경건생활, 영성생활을 정리하면서 영성생활의 중요한 키워드는 단순한 삶이고 반복적 삶 속에서 충만히 하나님의 임재, 함께하심을 느끼는 것이라 정의..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나 분주하다. 우리가 가정을 꾸리며 자식을 낳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면서 살아갈 때,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 같은 곳에 가면 나도 신앙생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은 결코 수도원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수도자가 누리는 삶을 살긴 어려운 것일까?

많은 헌신된 신앙인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구도자로서, 수도자로서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질문하고 시도하고 또한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가정을 지키며, 밖에 나가서 일도 하면서 그 안에서도 충만히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을까?

해답은 우리 삶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중심이 되는 가장 단순한 영적 경건을 위한 시간을 중심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루의 삶 속에 가장 단순하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마련해 두고 그 시간이 하루의 가장 핵심을 차지하게 하라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을 다스리게 하시고 당부하신 말씀.

너희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너희가 임의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너희가 먹지 말라. 다시 말해 손대지 말라. 동산 중앙의 선악과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상징하는 나무. 그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그것을 훼손하지 말라.

즉 신앙생활 하는 우리에게 하신 말씀. 네 삶의 중심에 선악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을 훼손하지 말고 철저히 지키라.

 

본문의 말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 대하여 법정소송을 제기하는 장면. 먼저 원고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 미가를 세우셔서 피고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내용을 대신 읽게 하십니다.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1)너는 일어나서, 즉 선지자 미가야 일어나서 산 앞에서 소송 내용을 샅샅이 밝혀라. 산과 언덕이 네 말을 듣게 하여라. 너희 산들아, 땅을 받치고 있는 견고한 기둥들아, 나 주가 상세히 밝히는 고발을 들어 보아라. 나 주의 고소에 귀를 기울여라. 나 주가 내 백성을 상대하여서, 고소를 제기하였다. 내가 내 백성을 고발하고자 한다.”

“내가 내 백성을 고발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아니 이스라엘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실망시켰으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순종했으면, 이렇듯 하나님이 스스로 이스라엘을 고소했겠냐 하는 것입니다.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 말하자면 재판을 걸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다. 지금 판사는 산들과 작은 산, 언덕이다. 본인이 지으신 자연물을 판사 삼아서 지금 이스라엘을 고발한 사건이다.

 

두 번째 3절에서 5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제 자신의 결백을 설명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자세히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짐이라도 되었다는 말이냐?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 나는 너희의 몸값을 치르고서,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서, 너희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게 한 것도 바로 나다. 내 백성아, 모압의 발락 왕이 어떤 음모를 꾸몄으며, 브올의 아들 발람이 발락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지를 기억해 보아라. 싯딤에서부터 길갈에 이르기까지, 행군하면서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돌이켜보면, 나 주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한 일들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돌이켜보면, 나 주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한 일들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노예로 붙잡혀 있던 이집트에서부터 마지막 싯딤과 길갈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시면서 자신의 결백을, 아니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은혜를 격정적으로 토해내셨습니다.

싯딤은 어디입니까? 싯딤은 요단 강 동편에 위치했으며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감한 곳입니다.( 3:1) 그리고 길갈은 요단 강을 건넌 후 처음으로 머문 곳입니다.( 4:19) 하나님께서 이 두 도시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요단강의 그 범람하던 물길을 아무 사고 없이 건넜던가를 회상하라는 분명한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억울해 하시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변론하실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고 있다는 것- 신앙생활 힘들다. 열심히 하는데 보람이 없다.

하나님께 바쳐도 하나님이 응답도 없고 기뻐하시지를 않는다.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나에게 짐만된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괴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6절부터 선지자 미가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편에 서서 백성들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하나님 왜 자꾸 노하십니까? 왜 또 화나셨습니까? 하면서 시작되는 말이 6절부터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지금 자기의 입장에서 뭘 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하나님께 원망 반, 탄식 반, 하나님께 반론을 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아, 백성들아, 하나님께서 선한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르쳐주겠다.

여호와께서 구하는 것은 천 천의 수양도, 네 몸의 번제도 아니고

1)     정의를 행하고: 정의 (: 바른 관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해라..

2)     인자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라. 자비롭게 대하라.

3)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

 

è  세가지 말씀으로 주셨지만 내용은 한 가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웃을 사랑해라.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마자 경험하는 것 기근- 애굽으로 피신함. –거기서도 하나님이 살리심. 아브라함의 관심- 자녀를 통해 복을 물려 주는 것 하나님의 관심- 너에게 이삭이 중요하냐? 나를 더 신뢰하냐이삭을 바칠 수 있느냐?

2.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요구한 것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

우리나라가 일제에 해방된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기쁨을 나눈 것.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 어린 양의 보혈, 다시 말해 예수의 보혈을 기념하고 누룩을 제하라-> 네 안에서 죄를 제하고 거룩하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대로 행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행한 것은 무엇인가? 열흘 이면 될 길을 가장 먼 길 홍해길로 인도하신 것.

더 나아가 앞엔 홍해, 뒤엔 바로의 군사들이 뒤쫓아 오게 만든 것. 막다른 곳- 왜 그렇게 하실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하는 것 이제 언제 가나안에 들어가는가?

하나님의 관심-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을 경험해보아라.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광야에서 죽느니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 말 그대로 우리가 스스로 답해 보자.

만약 신앙생활 하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정말 비참한 것인가? 다시 말해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예배 생활 했는데도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의 축복, 영광을 맛보지 못하면 정말 불행한 것인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느니 애굽에서 종살이가 더 좋다고 말한다.

그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는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 그는 가나안에 못 들어갔어도 한 번도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지 않았다. 누구도 모세에게 실패한 지도자, 실패한 신앙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모세와는 일대일로 대면하였다고 말씀하시며 그를 인정하셨다. ?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미 가나안 속, 가나안 보다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속에서 날마다 살아간 것이다.

 

신앙적인 고민

이제 목회 시작한 지 1….

유명한 목사님들의 간증…. 목회 시작하자마자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나고 부흥된 교회….

반대의 예들….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다가 현실에 절망하며 믿음이 사라져가는 주위 목사들

몇 명이 나가면서.. 처음엔  그 분들이 섭섭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  못 알아주고,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가?

그런데 이젠 정말 그 분들께 죄송하다.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이지만 결국은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내 말씀이 은혜가 안되고, 말씀이 현실을 극복할 은혜를 주지 못해서 그렇다. 교인들 중에서도 힘들어 하는 모습, 낙심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저들에게 은혜를 못 주는구나

그러면서 정말로 죄송해서 울고, 낙심되서 울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교회를 살리고 성도를 살립니까?

그 때 주신 말씀이 본문의 말씀..

내가 언제 천천의 수양을 원했냐? 네 아들을 원했냐? 네 몸의 번제를 원했냐?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나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나와 동행하는 것이다.

이 교회는 네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고, 성도들은 네 성도가 아니라 내 백성들이다. 네가 행할 것은 나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끝까지 네게 맡긴 영혼들을 사랑하고 나와 동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 속에서 은혜를 구한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날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내 삶의 중심을 말씀으로, 기도로 채워 나가는 것 밖에 없다. 그러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여호와, 나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견고히 서서 바라보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