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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 누가복음 2:25-35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인 인사말은 샬롬(평안)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말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예수,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신 주가 다시 오시리라는 소망 가운데서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 말씀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나누게 시므온 입니다.

26절에 보면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would not die before he had seen the Lord Christ.” 직역하면 예수님을 보기 전에는 그가 죽지 않을 것임을 성령을 통해서 계시 받았다는 것인데,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그가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는 성령님의 계시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는가? 25절에 보면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라고 말합니다.

의롭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이웃, 자신과의 관계가 바르다는 소리이지요. 모든 관계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이 이웃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도 잘못 되어 있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며 기도 생활하는 사람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헌신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의롭고 경건하게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복과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라 말합니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

  1. 이스라엘 민족의 위로
    •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400 동안이나 선지자 없이 로마의 속국으로 소망을 잃어버린 민족을 일으키기 위해. 마치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1. 교회의 위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은 교회. 따라서 교회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

  1. 성령을 기다리는 사람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스시"라는 말인데 이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도와주는" "위로하는" "대신 요청하는" 나아가 "구원하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시면서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는 데 성령이 바로 파라클레시스, 위로하는 , 도와주는 자의 의미 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찬 사람입니다.

, 그는 날마다 성령의 위로, 성령의 감동,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으로 보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소망, 약속의 말씀인 동시에 사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그냥 가만히 앉아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깨어서 기다린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졸지 않고, 알아볼 있도록 기름을 준비하고, 다시 말해 성령과 함께 하며 깨어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 처녀의 비유)

그는 이 약속을 경험하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서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렸던, 그래서 성령으로부터 지속적, 반복적으로 네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것이다 거듭된 계시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성령과 동행하면서 그리스도가 오시길 깨어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이렇게 성령과 동행했던 시므온은 어느 날, 그날도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를 바로 그날, 율법에 따라 태어난 40일이 지나 예배를 드리러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만나게 됩니다.

평생을 그리스도를 만날 날을 꿈꾸며 기다려온 시므온, 그것을 위해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하며 성령과 동행했던 시므온,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기에게 다가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이 바로 29절부터 시작되는 시므온의 기도, 혹은 시므온의 찬양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 말씀의 의미를 다시 직역하면

하나님, 이제 종을 편히 있게 주세요.” “이제 사명을 다 했으니, 평안히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주십시오.”

지금 예수님은 태어나서 막 세상으로 나왔는데, 예수님을 평생 기다려왔던 시므온은 이제 예수를 바라보며 이제 평안히 올라가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 약속의 성취를 보았습니다. 구원은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하신 약속이 성취되는 것, 기도의 응답,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날마다 겪게 되는 구원의 의미입니다.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30-32)

시므온의 이 기도주여, 이제는 종을 평안히 놓아주십시오.”하는 기도, 찬양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임종의 자리에서 드렸던 임종의 기도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기도, 평생의 사명을 완수하며 믿음과 평화의 기도를 드렸던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그 분을 만난 기쁨에 감격한 사람들이 평생의 소원을 이루며 드렸던 기도입니다. 이제 죽음의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나의 일생의 사명을 이루고, 내 평생의 숙제를 다했다, 이젠 나의 구원과, 민족,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약속의 성취를 내가 받았고, 경험했다는 믿음의 고백 끝에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 잊지 않고 주님, 이제 나를 평안히 잠들게 하소서.”하며 평화의 기도를 드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조금도 두려움 없이 죽음을 기다릴 수 있었는가? 바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안에 영원한 안식이 있고,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또한 교회 역사에서 임종의 순간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하루의 삶을 마감하고 잠에 드는 잠자리에서 했던 기도입니다. 말하자면 이 기도가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성도의 매일 매일의 잠자리에서였습니다. 잠들기 전에 매일 같이 주여 나를 평안히 잠들게 하옵소서, 이제 나를 평화로이 쉬게 주세요라고 하는 기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경건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영성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하루를 마감하고 잠들 마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했습니다. 나이가 젊으나 늙으나 경건했던 그리스도인들은 잠들기 이런 마음가짐으로 잠을 청했던 것 같습니다.

주님, 이렇게 하루를 마쳐 잠자리에 들듯, 인생도 언젠가 마칠 때가 오겠지요. 이렇게 하루의 노고를 마치고, 오늘 하루의 믿음의 경주를 마치고 주님 앞에 평화롭게 날 쉬게 해 달라고 기도하듯, 인생 마지막까지 인생의 노고를 쉬지 않게 하시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내가 잠들 때, 아무 걱정 없이 평안히 쉬게 주세요.”라고 날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경건한 크리스찬들은 기도해왔던 것입니다.

밤마다 이렇게 죽음을 기억하며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맞는 아침은 어떤 아침이었을까요? 이제 하루의 과업을 다했으니 내가 평화롭게 쉴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며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던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맞이하는 아침.

그 아침은 바로 부활의 아침이었습니다.

죽음을 바라보며 아무런 걱정없이 평화롭게 주님 앞으로 가기를 청하는 경건한 자들이 맞이했던 아침. 다시 찬란한 햇살이 비취며, 그들을 맞이하는 아침은 바로 매일 매일의 부활의 아침이었습니다.

, 이렇게 주님이 나를 깨워주시는구나. 이렇게 나를 잠에서 깨어주시듯, 새날을 주시듯, 주님께서 나를 죽음으로부터 깨워서 날을 맞게 하시는구나. 삶을 주시는 구나. 새롭게 맞게 되는 하루를 바라보며 그들은 또한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다짐했습니다.

살아야겠다. 믿음으로 살아야겠다. 다시금 소망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하루하루 날을 살아야겠다. 오늘 하루도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고난을 견디며 성령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새로운 날을 살아야겠다.”

날마다 죽음을 연습했던 그들은 결코 죽음을 고대하는 비관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날마다 부활을 기억하고 연습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죽음을 연습하며 하나님이 새 날을 주시면 또다시 부활의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사명을 끝까지 지키면서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시므온이었고, 또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었고, 흔히 이야기하는 Real Christian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로고스 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 탄생하신 성탄을 축하하는 성탄 기념예배입니다. 분의 탄생을 바라보며 우리는 때로 우리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날마다 마지막을 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므온처럼 평생의 사명을 완수하고 이제 편안히 쉬게 하소서하는 담대한 기도를 준비해야 합니다. 두려움 없이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깰 때에 새 생명을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다시 한 번 오늘 하루의 사명을 되새기며 하루를 열심히, 감사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