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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끗한 그릇

본문: 디모데후서 2 20-26

[딤후 2:20-26]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큰 집에 주인이 여러 그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비싼 금 그릇도 있고, 아주 이쁘게 생긴 은 그릇도 있고, 다듬질을 잘한 나무그릇도 있고, 그리고 반듯하게 생긴 흙으로 만든 질그릇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손님이 왔을 때에만 내어 놓는 좋은 고상한 목적을 위한 그릇도 있고, 어떤 것은 그저 종들이 마음대로 먹도록 바깥에다가 내어 놓는 하찮게 취급하는 그릇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금그릇이나 은그릇은 존귀한, 아주 고상한 목적을 위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에나, 아주 특별한 날에만 쓸 테이고, 나무그릇이나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 아무 때나 쓰는 그릇이 되겠구나…. 대다수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1)

è  If a man cleanses himself from the latter, he will be instrument for noble purposes,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d to do any good work.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금 그릇, 은 그릇은 귀한 용도로 고상하게 쓰여지고,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은 하찮은 용도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금 그릇이나 은 그릇, 나무그릇이나 질그릇, 그 재료에 상관없이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내가 내 재료가, 내 달란트가, 내 능력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능력 있고, 부유하고, 똑똑한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자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습니까? 참으로 아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할 때에도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외모로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느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실 때에도 독사의 자식들아 하시면서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11:3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교회에서까지 바라고 행해왔던 교육은 언제나 큰 그릇이 되게 하는 교육” “금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만큼 1등을 좋아하고 최고를 좋아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올림픽 나가서도 금메달 아니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선 친구와도 경쟁해야 하고 늘 남을 넘어서도록 교육받아 왔습니다.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남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교육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조차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최고가 되는 것이 곧 쓰임 받는 것이며, 사회에 유익한 것이고, 결국은 남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라고,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에 올라서라는 그런 가치관, 그런 인생관이 어느덧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됩니다. 일단 성공을 하면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과정이 어땠든 성공만 하면 그 결과만 남는다는 그런 생각들 속에서 우리 세대는 교육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삼성과 LG같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일구어냈고, 세계 20대 대형 교회 중 절반 이상을 가진 성공한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 기독교의 특징을 말할 때 기업의 특징과 많이 닮아있다고 말을 합니다. 물질 만능주의, 결과 중심주의, 성과주의, 시스템주의, 관료주의.

물론 기독교는 복의 종교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부자가 되며, 세상적으로 성공한 것을 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편에도 보면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1:1-2)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8복을 이야기하실 때에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 5:1-10)이 복 있는 자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편의 복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복을 하나님 말씀하신 복이라고 뚜렷이 증거하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예수 믿었더니 병이 나았더라, 가난에서 해방되었더라. 큰 차를 몰게 되었더라. 그건 그냥 부스러기처럼 따라오는 부록이지 중심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축복이라고 하면 복음을 질 나쁘게 하는 것입니다. 축복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죄로 물든 나의 심령, 사탄 마귀가 지배하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하늘나라의 심령을 가지고 사는 것, 그것이 축복입니다.

제가 큰 교회 보다는 바른 교회, 성도가 없어도 깨끗한 교회,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12명의 제자를 세우는 목회를 하겠다고 하니까 저보고 열정도 없고, 비전도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목사라고 말을 합니다. 야심이 없다고 말들을 합니다. 저의 됨됨이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다는 것이고, 좀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순진하다는 표현입니다. 그 속에는 좀 어리석고 모자란 것 같다는 인상도 좀 받습니다.

전 양 부모님 모두 3대째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3형제가 다 목회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오기 전 전도사로 6년을 섬기고, 선교잡지의 기자로, 편집주간으로 2년동안 한국의 유수한 교회를 방문하여 목사님들을 취재하고 그 중 몇 분의 존경 받는 목사님들로부터 한국교회는 지금 절대 절명의 위기가 올 것이다. 아니 지금 이미 그 위기 속에 살고 있다. 바른 영성, 바른 복음, 바른 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고민하며 영성을 공부하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저희 학교는 개신교 다섯 교단, 가톨릭 네 교단이 각각 합쳐져서 만든 연합체 학교 입니다. 목사에서부터 감독, 사제, 신부, 수녀들이 함께 모여 수업을 하고 지금 시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필요하고 절박한 것이 무엇인지를 교단과 교파, 종파를 초월해서 고민들을 하고 격하게 논쟁합니다. 아주 보수적인 학교에서는 가톨릭과 함께 수업을 한다고 해서 자유주의니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부건 수녀건 목사건 우리가 함께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무엇이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성경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파를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해서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 순위를 예수를 닮는 것이고 그의 삶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잘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간증할지는 몰라도 내가 예수 믿어서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그 분을 닮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분을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저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쓰임 받는 그릇이 되고 싶고 그렇기 위해서 내가 힘써야 하는 것은 내가 금그릇, 은그릇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함을 말씀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면 목동으로도 쓰임 받을 수 있고, 왕으로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깨끗하지 못하면 설사 내가 금그릇이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존귀함만 자랑하다가 끝이 나게 됩니다.

평생 목회해서 좋은 교회를 세우고 존경 받다가 마지막에 교회 세습한다고 해서 본인의 사역도 다 금이 가게 하고 교회도 술렁이게 만들고, 한국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금그릇이라는 것을 애써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금그릇이던 질그릇이던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지 내가 재료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인간이 될 수 없듯이 우리가 우리 재료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은 깨끗한 그릇이 되라는 것입니다.

전 순진하지 않습니다. 목회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리지만 나기 전부터 고민하며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지혜, 가장 큰 야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정하시는 그릇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 그릇은 금그릇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입니다.

두 번째의 반전은 20절의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의 이런 것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è  If a man cleanses himself from the latter, he will be instrument for noble purposes,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d to do any good work.” 

영어로 표현하면 “from the latter” 가 의미하는 것이 16절에서부터 19절에 나타나는 망령되고 헛된 것을 말하고, 경건하지 아니한 것에서부터 떠나라는 것인지, 아니면 바로 전 절에서 나타나는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을 말하는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해석은 내용상으로 16절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문법상으로 보면 이런 것, 영어로 from the latter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시체를 받습니다. 그러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하면 네게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에서부터 자신을 깨끗이 하면 거룩하게 되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쓰임 받을 것이고, 어떤 선한 일에 대해서도 준비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성막에서도 다루었지만 우리 인간은 조각목 같은 존재입니다. 가시 많고 상처많고 쓸모없는 나무가 조각목입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침을 발라 안수하실 때에 소경의 첫 마디는 나무 같은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흙으로 빚어서 만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모두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조각목을 성막의 도구로 쓰실 때에는 나무를 깎아 거기에 금을 입히고 금 테를 둘러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입히워 사용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케 하여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인간의 그릇은 나무그릇이고 질 그릇이지만 우리가 자신을 깨끗이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은그릇, 금그릇으로 만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초라한 나무그릇, 질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며 자신을 깨끗이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금으로, 은으로 덧입게 하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사울은 금그릇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자 그의 좋은 체격, 인물, 자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버림받아 저주받은 왕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우리를 바꾸실 수 있고, 그 분의 말씀만이 나를 온전케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평생 열정과 비전과 내 모든 꿈을 담고 추구하는 목회와 삶은 깨끗한 그릇이 되는 나, 깨끗한 그릇이 되는 가정, 그리고 깨끗한 그릇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망치는 것은 정욕입니다. 사탄의 공격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게 하는 데서 옵니다. 모든 죄의 근간이 정욕에 있습니다.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2)

의는 관계가 바른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바른 것이 곧 의로운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정욕을 피하고 자신을 고귀하게 간직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때에, 또는 자기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자질이 좋을 때에 또한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을 때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비록 힘들더라도 믿음 있는 자들만이 물질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두려움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새 계명이 서로사랑하라. 사랑 가운데 화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곧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라는 말씀입니다.

2013년 제게 주신 목회의 꿈은 30명 교회에서 가장 깨끗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를 닦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장 100, 200명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인원에서, 우리가 가진 위치에서 가장 깨끗한 교회,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20, 30명 교회 중에서 주인으로부터 깨끗한 그릇으로 인정된다면 우리의 모습이 연약해도 존귀한 목적,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교회는 쓰임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룩하심이 교회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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