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2019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주일예배 설교

제목: 나의 나 된 것은

본문: 고전 15:9-10

[고전 15:9-10]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For I am the least of the apostles and do not even deserve to be called an apostle, because I persecuted the church of God.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아직 젊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해오고 있지만 한 번도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부담스러웠고, 남들을 쫓아가기 바빴고,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내내, 중학교 때까지도 피부병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하고, 남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을 때에, 내 앞에 항상 나보다 더 건강하고, 나 보다 훨씬 부유하고, 나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들 속에서 자라나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 그리고 나의 연약함에 대한 걱정에서 한 번도 자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이 했던 걱정은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

어릴 적 부모님께서 사업하실 때에는 가정부가 밥을 제대로 먹이지 않아 영양실조를 걸린 적도 있고, 어머니께서 목회를 시작하실 때에는 서울에 혼자 남아 집에서조차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과외 수업 받아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과외 시켜 달라고 말 조차 꺼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날 붙잡아 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내 자아, 내 자존감이 극히 작아 나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고, 내가 외로울 때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나의 Best Friend였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면 응답해주시는 나의 후원자셨습니다.

(When my self-esteem and self-confidence was so low, God became my father; when I was so alone, He became my best friend, when I was needed, He became my supporter!)  

Like Moses, he treated me as a prince of Heaven, he whispered me, “I love you” whenever I prayed, and he makes me to know that I am a special person, the precious person in the world.

When I effort with fear to be an ordinary man, He challenged me, “Don’t afraid! You are special, I will always be with you.” 

마치 모세에게처럼, 주님께서는 나를 하늘 나라의 왕자로 대우하셨고, 내가 기도할 때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으며, 내가 세상 어느 사람보다 귀한 존재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난 보통사람이라도 되려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데, 주님은 나를 특별한 존재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널 붙들어 주리라고 격려하시며 날 살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적 하나님을 알게 된 후부터 지금까지 회개 없이 지내 온 날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고, 믿음대로 산다고, 믿음 밖엔 없다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도 세상적으로 조금 욕심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 때문에 신앙을 뒤로 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외면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내가 외식하는 자였기 때문에 외식하는 신앙인들을 보면 너무 잘 알아 겉으로, 속으로 정죄하고 비난했으며 나에게는 한없이 변명하고 합리화했지만 남들의 잘못은 칼날 같이 예리하게 판단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신앙 안에서 한 번도 예수님께 떳떳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신앙 안에서 전 떳떳하지 못합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리고 유학을 오고삶의 여정 가운데서 내가 가장 감사했던 것은 내가 어떻게,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남들과 같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걱정하던 인생의 모든 여정들을 하나님께서는 부족함 없이, 가장 좋은 때에, 뒤쳐짐이 없이 살아오게 하셨습니다. 목사 안수 받으러 LA갈 때, 난 방향을 잘못 가서 북쪽 레딩까지 가서 다시 오던 길을 돌아 10시간 넘게 가서 안수를 받아야만 했지만, 그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 네가 어디를 가던 너의 길을 돌이켜서 나의 길을 가게 하리라. 네가 아무리 방황하고 잘못된 길을 가도, 내가 그 길을 바로 잡아 예정된 시간에 너에게 맡겨진 일을 하게 하리라는 내 인생의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 로고스 교회의 영혼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나를 붙드시고, 나를 일으켜주셨던 그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내 힘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내가 노력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은혜 없이 나도, 여러분도 이 자리에 함께 예배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려는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받은 은혜와 함께 그의 삶을 통해서 체험한 것들입니다.

(I will name this phrase as the grace of “however” because the word “however” indicat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grace of God.)

Paul was the least of apostles and prosecutor the church if God.

However,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저는 이 은혜를 '그러나'의 은혜라고 이름 짓고 싶습니다.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바울이 받은 은혜의 색깔을 선명하게 밝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교회의 핍박자', 바울은 자신의 모습을 이 두 가지 표현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용하신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처럼 자신을 자격이 없다고 보는데 하나님은 자격 있다고 하시고, 그는 자신을 감히 사도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시며, 자신은 죄가 많아서 안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신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I do not deserve to be apostle, however, he says that you deserve to be; I cannot do anything however, he says that you can do everything in Me.)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바울의 크게 빚진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했던 자는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핍박자도 있을 것이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살았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런 죄 저런 죄를 범해서 그 때를 돌이켜 보면 고개를 들 수 없는 수치를 간직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돌보시고 인도하셔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 나 이하의 삶은 아닙니다. 이것이 '그러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가 있었기에 주를 위해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10).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나서 죽는지 사는지 모르게 일했습니다. 마치 하루 종일 놀다가 오후 5시에 일당 받기로 하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 노무자의 심정으로 헌신했습니다. 감지덕지 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 I live than what I am by the grace of God! This is reason why I call it the grace of “however”!)

그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실토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면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고개를 쳐들고 자기 공로를 이야기할 만도 한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수고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다'란 말은 '실패가 없었다', '능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분께서 내 삶을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He does not fail. He has power to success. He makes me to success. This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모진 시련과 고통을 겪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주어진 삶의 무게와 이번 생에서 배워야 할 삶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람이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다른 하나는 아주 쫌생이가 되고 강팍하고 부정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똑 같은 고난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로 드러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로 드러납니다. 연륜은 고난을 겪고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처가, 쓴뿌리가 많은 사람에게 연륜이 쌓여다 하지는 않습니다. 연륜은 상당한 정신과 영혼의 수준으로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낮아지고 깊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새로워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바라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도 연륜의 깊이가 충분히 묻어납니다. ‘내가 죽을 고생을 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나를 몰라주나?’ 이런 게 아닙니다. 큰 시련과 고난을 통해 사람이 익고 성숙됩니다. 이전에 지닌 모든 기득권과 부를 내놓고, 심지어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진실의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자신의 인생궤적을 돌아보면서, 지독한 외로움, 무시무시한 억압을 경험하고, 공포와 불안이 가득한 시대의 모순에 직면하여 진실과 진리의 사람이 되는 여정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지금의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는가 질문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코 자신을 선택한 하늘의 은총은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처럼 내 자신을 선택한 하늘의 은총이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로오늘의 내가 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사람의 입술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진보한 영혼이며, 성숙한 영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나 이상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죄 앞에서 떳떳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 예수의 공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고백을 다 함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그리고 마지막 우리 인생의 때에 우리도 사도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구원하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결단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결단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This is the way to be happy

I am what I am by the grace of God.

I will live in order that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