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2019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마태복음 27:15-26절

 

예수님이 오셔서 공생애를 통하여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귀머거리, 소경들을 고치고 오천 명을 먹이시고 육신적으로는 기적을 통하여 강건하게 하고 영적으로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을 것을 말씀하심.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자신을 통해서 천국을 들어갈 것을 말씀하심.

l  바리새인, 서기관, 종교지도자들의 태도

1)     가만히 놓아두면 자기들의 지도력과 귄위가 서지 않는다. 백성들이 더 이상 자기의 말은 듣지 않고 예수만 따르려고 한다. ->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를 고발.

2)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여지껏 천하 누구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자가 없음. 이것은 자기들의 신앙과 지식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신성모독죄. -> 죽이라.

l  빌라도

-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 그에게 예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권리, 책임이 있는 사람.

-       백성이 예수를 고발하여 데리고 옮. 그런데 자기가 로마의 법으로 살펴 보았지만 어떤 처벌을 받을 만한 죄를 발견하지 못함.

-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를 처벌하라고 소리치고 그것도 단순한 처벌이 아닌 십자가에 못박으라, 십자가에 못박으라 하고 외침. 법적으로 보면 처벌할 수 없는데, 가만 보니까 처벌하지 않으면 민란이 일어나게 생겼다. 민란이 생기면 또 자신에게 불리하고 총독으로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예수를 잡고 있는데, 아내가 다가와서 꿈을 꾸었는데, “예수의 일에 상관하지 마소서.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를 죽이면 안됩니다.” 하고 청원을 함.

-       유월절 명절- 특사로 놓아주고 싶다. 특사라는 자신의 권리로 인해 예수를 놓아주려고 함. 그래서 죄인 중의 괴수, 살인자 바라바와 예수를 놓고 백성들에게 다시 물음. 자신의 마음은 예수를 놓아주는 것인데 백성들의 의견을 묻어 그들 스스로 택하게 하고자 그들에게 의견을 물음.

-       여기 바라바와 예수가 있는데 내가 누구를 놓아주어야 하느냐? (마음 속으로는 바라바는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요, 예수는 죄가 없으니 당연히 예수를 놓아주리라.) 그런데 백성들의 소리는 한가지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죽여야 합니다. 소리를 지르며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아닌데, 로마의 법에도 맞지 않고, 빌라도가 바라보기에도 도저히 죽을 죄가 없는데 백성들의 소리에 의해서 죽게 내버려 둠. 민란을 막기 위해 예수라는 한 사람을 희생시킴.

-       결과: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 이에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진리보다 자신의 안정, 출세를 택하게 됨)

è  역사에서 말하는 빌라도의 후일담- 보통 총독의 임기가 5년인데 그는 10년동안 총독으로 있었다. 그러나 후에 그가 고백하길 그는 사형장으로 떠나가며 자신을 쳐다보았던 예수의 눈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괴로워했다고 함. 죽여서는 안될 사람을 죽인 가책에 시달리다가 후에 자신을 죄책에 시달리게 한 이유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리고 엄청난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게 된다. 결국 로마로부터 총독에서 물러나 본국으로 소환명령이 나서 자살을 해서 죽게 됨. -> 빌라도의 최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사도신경 만들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 지금껏 그의 이름은 저주의 이름. 유대인들: 그 피를 우리에게 돌리소서. 그 때부터 1945년도 까지 나라 없이 방황하고 핍박받는 민족. 가장 피를 많이 흘린 민족.

여러분이 그 자리에 최고의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가 되어 있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 빌라도의 자리에 여러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이자 가장 큰 인간으로서의 특권, 혹은 책임, 혹은 부담은 선택의 권리가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지이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우리 인생에서 죽일 권리도, 가장 극악한 죄인인 바라바를 살릴 권리도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은 지정의,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여 사는 존재로 만드셨다. 오직 인간만이 인격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간다. 그래서 잘 분별하여 선택하라고 지정의의 인격을 준 것이다.

지식이 옳다고 인정하고 감정이 따라가며 의지적으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라고 지식을 주시고, 그것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의지를 주시고, 그리고 행동한 것을 가지고 기뻐하고 혹은 슬퍼하도록 지정의를 가진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 두어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어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 즉 지식을 주셨다. 그 지식대로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묻는다. “왜 선악과를 먹지 않느냐?”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까 하노라.”

è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에 틈새를 만들어 버렸다. 마귀는 언제든지 틈새를 벌리고 인간의 선택을 흐리게 한다. 그런데 그 선택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같이 되고 눈이 밝아지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인격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 생겼다. 이미 감정마저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먹게 만든다.

사탄의 다른 이름- 사기꾼사기꾼의 모습: 여기에 땅을 사고 자기에게 투자하면 몇 달 있으면 돈이 얼마가 쌓이고, 재산이 얼마나 불어나며 그러면 미래가 보장되고 행복해지며….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안 하면 안되게끔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실행하고 투자하도록 한다. 그런데 며칠 지나도 소식이 없고, 투자 받은 사람은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 내가 사기 맞았구나그러나 지난 뒤에 후회해 보았다 소용이 없다. 마귀는 사기꾼이다. 마귀의 정체,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다가 저주받아 쫓겨난 자. 자기가 하나님같이 되려다 실패한 자인데 아담과 하와를 너희도 하나님같이 되리라 하고 유혹하여 사기 침. 사기꾼. 자기도 복을 누리지 못하면서 자기만 쫓아오면 복을 얻을 것이라고….

-       돈이 있어야 살어-> 예수 믿어야 산다. 돈이 있어도 불행하다고 하는데 여전히 그 유혹에 넘어지는 수 많은 사람.

-       교회는 안 다녀도 공부 잘하여야 산다-> 예수 잘 믿어야 산다. 신앙 포기하고 공부한 사람.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녀도 사회를 악하게 만드는 불행한 사람, 다른 사람마져도 불행케 하는 사람.

-       이 세상이 변하니까 문화에 맞추어서 산다. -> 말씀대로 살아야 산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끊임없이 마귀는 우리에게 사기 친다. 아담 이후 인간의 역사는 마귀의 사기의 역사이다. 우리는 뚜렷한 지식으로 마귀의 꾐을 이겨야 한다.  창세 이래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다. 말씀대로 살고, 말씀에 자신의 인격을 걸고 사는 사람은 천국이 보장되어 있고, 실패하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그 선택은 여전히 내가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사는가? 어떤 것을 의지하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고 책임이다. 그 선택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정해지는 것이다. 누구도 이 선택을 대신해 줄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한 번 허락하신 의지를 절대로 거둬가거나 박탈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의지대로 산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남의 집 구유에서 태어나셨다. 남을 위해 사셨다. 말씀을 전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낙심한 자를 위로하고 일으키며, 천국의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그런데 그 분을 극악한 바라바와 바꾸고, 어떻게 하면 죄인들을 가장 아프고 고통스럽게 죽게 할 수 있을까 고안한 십자가에서, 그것도 세 명의 죄수 중 가운데 가장 꼭대기에 달리게 하는 것, 십자가에 달리게 해 놓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망령된 지식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마귀가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에

어떤 지식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 순종하라는 것이, 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 안에 내 의지를 동원하라는 것이다. 우리를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회개하라- 너희 인격을 수정하라. 네가 의지하는 지식을 수정하고, 네가 따르는 지식을 수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라. 하나님께서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이 자기 의지로 결정하여 깨닫는 대로 선택하라고 보내셨다.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l  성경 속에는선택의 기로에 서서어느 것을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많은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i) 가인은 악을 선택합니다. – 죄의 마음이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는 마음을 다스리라. 그러나 듣지 않았다. -> 마귀의 지혜, 생각을 좇아갔다.

ii) 롯의 사위들. 롯의 아내. -> 도시를 빠져 나가라.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iii)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을 좇아 살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선택을 합니다.

iv) 야곱은 팥죽,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축복을 소원하며 선택을 합니다.

vi) 그리고 요셉은 윤리적인 삶, 믿음의 삶을 선택을 합니다.

è  이러한 선택을 했던 그들의 결말, 그 결과가 어떠하였는가?

.  

i) 히브리서11장을 보면 믿음을 따라 산 사람들에 대해서 열거하고 있다. ‘믿음으로라는 말은하나님을 선택함으로라는 말과 같다.  

ii) 신명기3019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민족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선택할 것을 요구를 한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iii) 여호수아 2415절에서 역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iv) 열왕기상1821절에서는 엘리야 선지가 백성에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마태복음713,14절에 예수님이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누가복음 1324절에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l  어떤 사람은 교회 나오고 예수 믿는 이유를 천국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마음을 좀 깨끗이 하려고, 어떤 사람은 도덕적으로 살려고, 어떤 사람은 담배 끊기 위해 다닌다고 말합니다. 고상한 것 같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어 천국 갈 믿음을 갖지 못하면 마음을 깨끗케 할 수도 없습니다. 도덕적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담배를 끊을 수 있는 능력도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천국 갈 믿음이 생길 때에 능력이 생기는 것이지 그 믿음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노아- 수많은 사람들이 사치, 쾌락, 향락, 성적인 타락, , 명예, 권세를 쫓을 때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모았음이니라.”라고 말씀 했을 때에 홀로 그 가족만이 산 꼭대기에 올라 방주를 만든다.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 하던 말씀하셨기에 따른 것이다. 

노아의 방주- 그 시대의 과학과 문명으로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 제조. 어떻게? 하나님 말씀대로 지었기 때문에 

방주에 타시오? 가족 외에 어느 누구도 타지 않는다. 그러나 짐승은 다 들어온다. ? 오직 인간에게만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방주의 문이 닫힌 후에 그 곳에 들어가려 해 보았자 그 땐 이미 늦는다.

누가 보아도 이론적으로 이해 가지 않는 노아의 행동.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

 

이미 죄악에 빠져 버린 인간, 지정의의 자유의지가 마비되어 버린 인간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죽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게 하셨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인격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격을 통해서만 인간과 교제 한다는 것이다. 오직 인간과만 교제한다는 것이다. 그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는 심장을 찢는 듯한 십자가의 고통을 가지고 오직 인간의 인격에 호소하셨다. 죄로 무너져버린 인간의 인격, 그 진실함을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이것이 새 언약이고 너를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진실을 인간이 알기 원하셨다.

예수님은 온 인생을 오직 우리를 살리려고 온 땀과 피를 쏟고, 우리의 인격에 진실함으로 들어오시려 하는데 완악한 우리 마음이 그 진실을 몰라준다. 귓 가로 그 분의 진실함을 들은 채 안 한다. 왜 그 진실함이 내 심장을 뛰게 하지 못하는가? 왜 그 은혜의 깊이를 모를까?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인생의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예수 앞에 나온다. 다른 데 기댈 곳이 없을 때, 예수께 나와서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간절히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주신다. 위로해 주시고 희망을 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를 일으켜주신다.

그런데 신앙생활 하다가 조금 힘들 때, 낙심 될 때, 내 마음대로 안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신앙을 떠나지 않는가? 더 편한 것, 더 재미있는 것, 더 쾌락을 주는 것을 위해 예수를 포기하고 다른 것을 선택하지 않는가? 우리가 제일 힘들 때에 날 붙들어 준 예수께서 내가 조금 힘들다고, 어렵다고 그 분을 포기하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얼마나 서운할까? 예수님의 그 진실을 몰라줄 때, 얼마나 섭섭하실까? 은혜를 안다면 어떻게 불순종이 나오고, 게으름이 나오는가? 하나님을 서운하게 하면,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내가 그것을 부인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내게 인격을 주었다는 것, 그것을 통해 나와 상대해 주시겠다고 하는데 그 인격을 가지고 그 분의 진실함을 몰라준다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주님, 사랑합니다. 내가 생명을 다해 주를 따르겠습니다. 절대로 주를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죽을 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진실함이 없다. 우리 인간의 감정은 그런 것이다. 우리 신앙엔 진실함이 무너져 버렸다. 내가 주님의 그 은혜를 안다면 어찌 불순종이 나올 수 있고, 어찌 헛된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주님을 포기할 수 있는가? 성령이 부어지지 않으면 내 안에 진실함을 찾을 수 없다. 내 안에는 예수님의 진실을 감당할 진실이 없다. 오직 예수님의 마음이 나에게 부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의 진실함이 회복할 수 없다. 회개한다는 것은 주님, 나 좀 진실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진실함을 좀 알게 해달라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성도여 주님의 은혜를 압시다. 주님의 진실을 좀 압시다.

성령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지정의가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 분의 뜻을 묻고, 그 분의 감정에 민감하며, 그 분의 의지대로 나를 따라가게 하는 것이다. 항상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나중에 천국에서 주님 만날 때에, 내가 가장 힘들 때에 내 사정 알고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께, 내가 힘들 때에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의리를 지켰습니다. 마음과 마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