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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32:7-출 32: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묵상

  1. 자기 뜻대로 드린 예배의 결과는 결국 우상숭배였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보다는 불안한 자기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자기를 위한 예배였으며 자기 방법, 자기 위안, 자기 목적을 위한 예배였습니다. 그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닌 애굽에서 섬기던 , 송아지였습니다. 우리도 말씀이 없는 예배,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예배와 기도는 결국 하나님 아닌, 내가 만들어낸, 내가 익숙해져 있는 신께 드리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더욱이 우리 민족처럼 불교, 유교, 샤머니즘에 오랜 역사를 통해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이 없는 예배는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의 묵상과 순종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없이 형식적,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위험한 것입니다.

 

  1. 죄의 결과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인도해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상 자기 백성이라 부르지 않고 " 백성, 그들.."이라는 타인으로 취급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혈연이나 지연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말씀에서 떠난 그들은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목이 뻣뻣하다는 것은 사막의 나귀를 연상케 합니다. 나귀에게 멍에를 메기 위해서는 목을 숙여야 합니다. 그러나 목이 뻣뻣한 나귀에게는 멍에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말씀의 멍에, 순종의 멍에를 지는 것입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은 멍에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1. 모세의 중보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백성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복받야지 하나님 영광이지요 하는 식의 중심적인, 교만한 기도가 아닙니다. 천하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목도하고 경험하고 있는데 우리를 죽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시는구나 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당할 것을 하나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말씀을 의지한 기도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십니다.

 

  1. 하나님의 뜻은 불변하고 하나님의 주관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시는 장면이 가끔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뜻을 돌이키십니까? 전적으로 회개할 때에 돌이키십니다. (요나와 니느웨)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항상 구원에 있고 돌이키심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와 같이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부르짖음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간절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고 간절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동역하시길 원합니다. 모세와 같은 간절한 중보자가 있을 때에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의 중보자이시고 모든 백성이 구원의 소식을 들을 때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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