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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을 위하여)

1. "형통"의 의미

지금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에 가정 총무로 일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주인에게 인정받아 그 가정이 복을 받게 되지만, 그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대가로 이제는 보디발의 집에 있는 감옥에 갖히게 됩니다.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만사 형통"이라는 말을 씁니다. 모든 일이 뻥하고 뚫려 있듯이 평탄대로를 달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요셉의 삶의 여정을 보면 만사가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지금 보디발의 집에 매여 있는 종이고 더욱이 후반에 감옥에 갇힌 죄수입니다. 사방이 막혀있는 형국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경은 39장에서 두 번이나 걸쳐서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부릅니다. 그럼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형통의 의미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형통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요. 그 다른 개념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사방이 막혀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있고, 환경이 아무리 나빠져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흔들리지 않을 때에 형통이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 무슨 고난에서도 하나님과의 통로가 열려있는 것. 그것이 형통입니다.

 

2. 죄를 이긴 요셉.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는 요셉의 모습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아담의 모습과 대조되어 죄를 극복하는 성도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9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네임이라. -> 동산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10절)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닣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한지라. -> 사탄의 유혹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지요. 반복적, 지속적으로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공략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마치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더라는 속담처럼 끈질기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상대하지 않고 함께 있지 아니한 것이지요. 죄의 유혹이 있는 공간 자체를 피하는 것입니다.

17절)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 마치 아담이 하와에게 죄를 전가하고 하와가 뱀에게 전가하는 것처럼 죄의 특성은 변명하고 전가하는 것입니다. 의인의 방법은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지요. 죄의 결과 이젠 요셉이 아닌 보디발의 아내가 죄를 전가하고 변명하는 죄인의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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