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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이로다 (신명기 33:29) 


(신 33: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오늘 읽은 33장의 바로 전 장에 마지막절 32장 52절의 말씀을 보면 

(신 32:52)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의 120년 인생의 끝자락에 주어진 청천 벽력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

모세의 인생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인생의 여정이었습니다. 

전반부 40년을 애굽의 왕자로 살면서 애굽의 문물과 학문을 익힙니다. 나중의 그의 배움은 애굽을 대적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왕자로 살았지만 그는 왕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달리 말해 세상에 뜻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중반부 40년은 광야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애굽이 왕자로서 모든 권세와 영화를 누렸던 모세가 광야에서 한낱 목동이 되어 40년을 살았습니다. 

가족 외에는 인적도 드문 곳에서 점점 무능해지는 자신을 느끼고 무력해지는 자신을 견뎌야 했습니다. 철저한 자기 비움, ,자기 부인의 시간이 바로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이란 기간이었습니다 .

어쩌면 이 기간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그 수 많은 백성들을 거느리고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광야에서의 지루한 40년을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후반부 40년은 드라마틱함과 지루한 고난의 시간이 중첩되는 시간입니다 .

이젠 늙어 쓸모없어져 버렸다는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던 애굽의 바로왕에게 10가지 재앙을 선포하며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해냅니다. 

세상에서의 고난을 통해 세상 욕망과 희망을 끊고 하나님의 지시하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노예에서 스스로 나오질 못합니다. 

그래서 열가지 재앙을 보게 하시며 세상에서의 정을 끊게 하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이제 애굽에의 동경을 끊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세례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금방 도달할 것 같았던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신앙생활의 목표가 쉽게 도달되지 않습니다. 

사막의 뜨거움과 밤의 차가움은 하나님의 인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 발 자욱도 내딛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십계명을 받고 또 성막을 짓게 하십니다. 

자기 맘 대로 살던 자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모이고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갑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성전이 되어 가는 삶입니다. 그것이 곧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먹고 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항상 배고파 합니다 .

애굽을 향한 갈망이 끊어질 듯 하는데 끊어지지 않고 불평이 나올 때마다 애굽을 들먹입니다. 

어차피 애굽에서 종노릇 하였던 자들이 마치 애굽을 다 소유했던 사람들처럼 호기를 부리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주시는데 하나님 주신 것을 지겨워하고 지루해하고 맛없어 합니다 


하여튼 모세는 이들을 이끌고 드디어 가나안 땅이 훤히 보이는 모압평지 느보산에 다다르게 됩니다

거기서 듣는 소리가 "내가 이스라엘에 주는 땅을 바라보기는 하겠지만 들어가지는 못하리라."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분이 어떨까요? 

여러분이 가나안이 훤히 보이는 땅에서 이러한 음성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하겠습니까? 

막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을까요? 

아니 써먹을땐 언제고 이렇게 내치시는가? 보여주지나 말지 보게만 하고 못들어가게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별 별 생각이 다 날 것 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음성을 듣고 온 이스라엘 지파를 소집합니다. 

르우벤지파부터 해서 각 지파별로 축복하기 시작합니다. 각 지파마다 하나님이 하신 일과 앞으로 베푸실 일들을 알려주고 마음껏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마지막에 온 지파,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씀이 바로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신 33: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 말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세 자신이 고백이기도 합니다. 

난 행복한 사람이로다. 나 같이 하나님이 구원을 얻은 백성이 누구인가?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행복한 사람입니까? 


언젠가 제가 읽은 책 중에 "꾸빼씨이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

이 책은 한 정신과 의사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꾸빼씨는 파리 중심가 한복판 한국으로 치면 강남 중앙에 진료실을 가지고 있는 아주 유능한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파리는 세계의 어느 도시들보다 풍요로우면서도 동시에 정신과 병원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합니다.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고플 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병에 걸려 몸이 아프게 되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본인도 직장이 있으며, 원할 때마다 영화나 외식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짜로 마음에 병이 들어서 스스로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하다가 꾸빼씨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꾸빼씨는 그들에게 때로는 신경 안정제나 우울증 치료제 같은 약물을 처방하거나 심리요법을 통해 그들을 진단하고 처방하곤 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꾸빼씨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들은 왜 불행할까? 그들 중 대부분은 사악한 부모를 만난것도 아니고, 외적으로 불행할 껀덕지가 거의 없어 보이는 데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찾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정말로 행복을 원하지만 가질 수가 없어서 찾아온 사람들... 

그가 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약물 몇개, 그리고 심리치료...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은 그것이 저들에게 정말 행복을 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죠. 

그리고 본인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나는 저들을 치료할 수 있는가?" 

그런 고민 끝에 어느날 갑자기 병원을 정리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납니다. 

도대체 행복은 어디 있는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 

그래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행복에 겨운 사람들을 만나 꼬박꼬박 메모하며 기록한 것을 출판한 책이 바로 꾸빼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가짐으로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도 모으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고 권력을 가지려고 하고 지식을 습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다 가진다고 해도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부자이면서도, 똑똑하면서도, 권력가이면서도 행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오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또 쾌락을 중요한 행복의 조건으로 삼지만 쾌락은 잘 생각해보면 중독성이고 점점 더 심한 쾌락을 요구하며 결국에는 사람들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쾌락에는 절제가 사라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행복조건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있으면 행복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주어지면 정말 행복하시겠습니까? 금방 또 실증을 느끼진 않을까요? 

또 무엇이 없으면 행복하시겠습니까? 

자신이 연약함, 질병, 미워하는 사람이 옆에 없으면 행복하시겠습니까? 

또 다른 불평거리들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혹시 늘 그렇게 무엇이 있었으면, 아니면 무엇이 없었다면...하면서 불행하게 살아오진 않으셨습니까? 


성경에서 행복을 대표하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에덴"이라는 뜻은 행복과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이 행복을 잃어버린 이유는 선악과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마음이 선악과에 꽂이자 에덴의 모든 행복과 기쁨이 다 쓸모없어져 버렸습니다. 

선악과만 먹으면....하다가 결국 에덴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미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삶이 주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유능한 장군이었고 용사였고,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윗을 주목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저 놈만 없다면..."

이후의 삶은 우리가 너무 잘 알듯이 모든 에너지를 다윗을 제거하는데 소모합니다. 

왕의 일도 잊어버리고 왕으로서의 품격도, 능력도 다 상실합니다. 

한 사람을 시기하다가 결국 스스로 생명을 끊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장 불행하게 생각 할 수 있을 그 때에 자기가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그리고 또 자신에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이 구원을 받았는가?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선포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짐으로서 행복을 취하려고 한다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다 주어가면서 그 분의 삶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 분의 일생은 피곤한 삶이었습니다. 공생애 동안 그분은 하루종일 돌아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자신이 만든, 그러나 자신을 배반하고 죄의 길로 빠진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행복이었습니다. 자신을 대신해서 우리를 통하여 나머지 복음의 사역을 완성하시고자 한 그 희생이 바로 그 분의 행복이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비록 그 아픔으로 통곡의 기도를 드리시기도 했지만 그 십자가 상의 고통이 예수님의 행복의 완성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한 마디 말은 예수님의 인생의 목적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목회자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한 나이 많은 목사님이 말씀을 전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 분 교회에는 성도가 거의 없습니다 .

그리고 그 분은 지금 암투병 중에 계십니다 .

옆에서 볼 때 저 분은 어떻게 사실까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떄론 거동하기도 힘들어하시면서도 그래도 악기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십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

"아프고 나서야, 없어지고 보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겠습니다."

그 전엔 못느꼈는데 지금은 하늘만 바라보아도 감격스럽습니다. 풀한포기가 새로워 보입니다. 

아이들 뛰어노는 모습, 자녀들 크는 모습, 이렇게 후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저에겐 너무나 소중한 행복한 삶의 시간입니다. 


그런 그 분의 말씀이 참 가슴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

무엇이 없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 우리를 창조할 때부터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행복은 그렇게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이미 임한 것이고 또한 더욱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한 사람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예배이고 교회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있을 자리를 가리켜 줍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떠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줍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 중에도 파도 중에도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행복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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