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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베드로전서 4장 7-11절) 


  •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쉴 수 있고 잘 수 있는 주일날 그래도 좋은 마음 먹고 은혜를 바라보며 예배드리러 나오는데, 찾는 은혜는 희박하고, 해야 할 의무와 계명들은 쏟아져 나옵니다. 처음엔 예수만 믿으라고 하더니 헌금도 내야 된다고 하고, 말씀도 읽어야 한다고 하고, 기도도 해야 한다고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아예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합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힘든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아니 상대방이 좋으면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할 것이고, 그저 그런 사람을 억지로 사랑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더니 급기야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내 몸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사랑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사랑마져도 교회 안에서는 부담처럼 느껴집니다. 


  • [마 11:28-마 11:30]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얼마나 은혜로운 말입니까? 그래서 수고하고 지친 몸, 여러가지 짐으로 고단한 몸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피곤하고 지친 사람 모아 두고 갑자기 나의 멍에를 메라 합니다. 그래도 너희들이 세상에서 메는 짐보다 내가 주는 멍에가 쉽고 가볍다고 말합니다. 화가 납니다. 

나는 지금 짐도 무거운데 교회 왔더니 멍에도 얹어 줍니다. 

마치 공짜로 선물 준다고 동네 노인들 다 불러 놓고 보았더니 물건 팔아오라는 다단계 장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교회를 보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들어도 곱게 보이질 않습니다. 은혜는 커녕 모든 것이 사기 같습니다. 

멍에를 메라는 것은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멍에만 얹어 주는 것이 아니라 소가 멍에를 메면 주인이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제 내 인생을 주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선한 목자라는 것이고 그 분꼐 그 분의 겸손함과 온유함을 배우면 어떤 말씀이라도 쉽고 가볍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짐, 세상의 가치관으로 인한 짐, 병의 짐, 육신의 짐을 벗어 던지고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서로 봉사하라고 하며 이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봉사해서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마치 연약한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든 무엇이든 빼앗아 가서 만족하는 탐욕스러운 왕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봉사하라고 하는가?


구원하셨으니 마땅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현실적으로 성도들이 봉사하지 않으면 교회라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힘드니까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봉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주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이라고 하니 봉사하면 주님이 영광받으시고 봉사 안하면 하나님은 영광 받지 않으시니 하나님은 봉사에 굶주린 분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분이고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주의 주재시요 수많은 천사들이 수종든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봉사가 없으면 불편하고 부족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교회라는 조직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것입니까? 헌금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운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것이고 봉사는 교회유지를 위해서 어쩔수 없이 내야 하는 것입니까? 

말로는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면서 결국은 교인들의 봉사와 헌금으로 유지되는 집단입니까?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신학 따로 현실 따로, 신학은, 신앙은 교회라는 조직을 위한 변명꺼리 밖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계명은, 그리고 그 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봉사라는 것은, 봉사하는 삶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가진 사랑을 함께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가진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섬김이고 봉사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하나님의 삶, 하나님이 감정,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요, 섬김이요, 봉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그 사랑의 삶, 돌봄의 삶, 봉사의 삶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짐이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자 사랑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면 돌보고, 섬기고, 나누어야 하는데 사랑이 정욕이 되고 탐욕이 되니까 주기보다 받기만 원하고, 결국은 돈을, 우상을, 게임을, 사람보다, 가족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봉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예배하고, 섬겨야지만 만족하시고 살아가시는 무의탁 노인같은 분이 아닙니다 .

그 분은 불쌍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이 없어도, 헌신이 없어도 스스로 충만하시고 만족하시며 행복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 예배하도록, 헌신하도록, 봉사하도록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알고 이 세상에 하나님 자녀답게, 하나님 닮은 삶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 읽은 본문은 베드로가 핍박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고 있는 편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30여년이 지난 AD 64년, 로마에 거대한 화재가 일어나 로마 전체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네로 황제가 이 도시를 자기 뜻대로 건설하기 위해서 일부러 화재를 내었다는 소문이 돌아 화재를 바라보면서 네로 황제가 수금을 타며 노래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흉흉했습니다. 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기독교인들입니다. 네로는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불타게 했다면서 이후 100여년간 극심한 핍박을 가하며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게 됩니다 .

이러한 때에 예수님의 수제자이자 교회의 수장이었던 베드로가 곳곳에서 핍박당하고 있는 그리스도 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 (벧전 4: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위기의 순간에 먼저 한 것은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정신차리기 위해서입니다. 파도와도 같은 고난이 다가오면 정신줄 놓치고 파도에 휩쌀리게 됩니다. 우왕좌왕 하다가 현재의 고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모든 현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 (벧전 4: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고난의 때에 기도하면서 힘쓸 것은 역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 스스로도 죄에서 멀어지며 또한 우리 주위에 퍼져 있는 죄의 영향력으로부터도 가려지게 됩니다. 사랑의 반대는 죄입니다. 죄의 반대는 사랑입니다. 


그러면서 9절부터 11절까지 봉사하는 삶, 서로 섬기는 삶,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가장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가장 기본적인 삶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삶

기도의 삶이고 사랑의 삶이고, 그것은 결국 섬김, 봉사의 삶입니다. 


  •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Each of you should use whatever gift you have received to serve others, as faithful stewards of God's grace in its various forms. 

-> 여러분 각각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남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형태의 은사를 통해서 남을 섬기도록 여러분을 은혜의 청지기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께로 남을 섬기리 위해 받은 은사를 사용하라"는 말의 번역인데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마땅히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봉사하라고만 하면 마치 안해도 될 것을 해야하는 extra 짐으로 여겨지지요.  


달란트 비유 -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사용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왜? 마땅히 사용하라고 주신 것을 사용하지 않고 묻어두었기 때문에 

왜?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되어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땋히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주셨다.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온 백성들에게 자원하라. 봉사하라. 

무엇으로? 출애굽할 때에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애굽사람들이 준 것으로....


어제 결혼식 가서 ,받은은혜 


unconditional love <-> conditional love 

sacrificial love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부부 

살아가면서 갈등이 늘 생긴다. 

그러면 화가 올라오고 싸우고 싶고 절대 용서할 수 없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감정이 지속되면 영적으로 영 불편하다. 

"이렇게 살아서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을까?" 나도 힘들고 애들도 힘들고 불행한 생각이 ....


행복하자. 행복하자. 그렇게 생각되면 용서하게 되고 용서를 빌게 되고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아니마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이 가정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아이들 양육하고, 학비 내고...가정 지출의 가장 큰 부분...

그런데 그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부모, 상식적인 부모라면 그럴 수 없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고 자녀이기에 마땅히 그 일을 한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위해 고생하면서 그것을 행복이라 말한다. 

실재로는 그것 때문에 고생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고생을 행복이라고 표현한다. 


왜? 나를 위해 살고 나 자신 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그 가족, 식구들을 위해, 사는 것이 삶의 맛을 주고 의미를 주고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조금 확장하면 저같은 목사는 교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생하는 것이 사는 맛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너희들에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선물을, 은사를, 달란트를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George Beverly Shea 의 간증 

1909년 캐나다 에서 감리교 목사의 여덟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경제 한파로 학업을 포기한 후 보험회사에서 세일즈 맨으로 일하던 중 NBC 라디오 프로에 나가  “가라 모세”를 불러 하루 아침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방송출연 제의가 쏟아지고 돈과 인기가 굴러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에게 두려움이 몰려 들었다. 갑작스레 부와 인기가 찾아오니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가 하는 두려움과 언제 떠나갈 줄 모르는 그런 박수소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찬양에 회의가 일었다. 


어느날 그는 자기 옷 주머니 속에 넣어둔 어머니의 손편지를 잃게 된다.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하던 싯구가 그이 마음을 때렸다.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어떤 것도 그것과 바꿀 수 없다"... 



잠시나마 엄청나게 짓눌렸던 쉬아에게 짧은 글이 믿음과 확신으로 그의 마음에 다가왔다. “그래, 예수님만이 나의 행복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는 즉시 그 아름다운 가사에 곡조를 붙이기 시작했다. 바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시가 음악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쉬아는 자신이 쓴 찬송 곡조를 부르며 다짐했다. “긴 시간 동안 주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주님만이 행복임을 고백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바라던 삶이었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헌신이었다. 



며칠 후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을 때 쉬아는 확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주님만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방송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일생을 통해 쉬아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결정이었다. 


 1절은 ‘세상의 부귀’보다 ‘예수님’을, 2절은 ‘세상의 명예’보다 ‘예수님’을 그리고 3절은 ‘세상의 행복’보다 ‘예수님’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찬송은 ‘세상 부귀’(1절)로 간단히 번역됐지만 영어가사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세상의 금과 은, 큰 재물, 많은 집들과 땅보다 예수님을 기뻐하겠다고 고백한다.  

1983년 74세 된 백발의 쉬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전도대회’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 후에 굵은 베이스 음성으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불렀다. 수많은 회중의 끝없는 박수에 쉬아는 다시금 고백했다.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뜨거운 박수 갈채도 예수님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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