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2020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한 왕을 보았다. (사무엘상 16장 1-13절) 


작년 말에 올해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무엘상을 택하게 된 이유... 

시편과 함께 다윗의 삶과 영성을 깊이있게 살펴보고자 하는 갈망때문에. 

이제 2017년 전반기를 지나고 7월이 되어서야 사무엘상 18번째 강해로서 다윗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을 살펴 본 후에 몇 가지 구절을 깊이있게 들여다 보고, 그 다음 이 사건과 구절들이 우리에게 어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역사적 배경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 그 명령을 준행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회개하지 않고, 거짓으로 변명으로 자기의 잘못을 감추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 이새의 마을로 보내어 이스라엘의 새 왕을 뽑게 하신다. 

사무엘이 도착하자 베들레헴은 긴장이 흐른다. 

사울을 꾸짖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자 사무엘이 이름없는 마을에 온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읍 장로들이 떨며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4절) 

하나님의 진로와 심판이 두려웠던 장로들을 안심시키고 사무엘은 하나님께 함께 제사하자. 예배하자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모으로 특별히 이새의 아들들을 살피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예배에 참여했지만 사무엘의 관심은 오직 이새의 아들들에게 가 있었다. 

엘리압에서부터 아비나답, 삼마, 그 뒤의 모든 아들들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 유명한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7절) 하시면서 사무엘에게 응답하지 않으신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초대받지 못했던 막내 다윗을 불러오게 한 후에 그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한다. 


2. 말씀 들여다 보기 

  • 내가 그를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으니...(1절) 


사울의 실패 - 

그는 겸손한 자였다. 성실한 자였다. 그리고 충성된 자였다. 용기있는 자였다. 

한 마디로 해서 왕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자였다. 

그런데 왕이라는 타이틀이 그의 자질을 다 감추어 버렸다. 자리가 그를 망쳤다. 

왕이라는 자리로 말미암아 그는 겸손한 자대신 사무엘의 영적인 자리를 탐하는 교만한 자가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과 백성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자가 되었고, 자기의 속 마음을 숨기는 거짓된 자가 되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 구약에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메시야,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라 불렀다. 

기름부음을 받는 자는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왕, 선지자, 제사장. 

신학적인 용어로 이 세가지 부류를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왕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이다. 

선지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백성을 인도하는 자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들의 죄를 예배를 통해 사하도록 하는 중보자였다. 


결론적으로 기름부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나타내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귀로 듣고 눈으로 보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하나님께는 인간의 기도를 말씀드리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울은 이 역할을 망각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려 하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 했다. 

하나님께 백성의 소리를 전하고 백성의 죄를 회개하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 마저도 백성에게 돌리는 자가 되었다. 그것 하나로서 그의 기름부은 자로서의 역할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 이새의 아들 중에 한 왕을 보았다. (1절 후반) 

누구도 다윗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조차, 그의 형제들에게 조차 다윗은 주목받지 못한 자였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서 왕의 모습을 보았다. 메시야, 그리스도의 역할을 잘 감당할 기름부은 자로서 합당한 그의 존재를 보았다. 

그 특성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다리 역할, 메신저 역할, 통로역할을 가장 잘 담당할 수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시편 23편 - 목동으로서 경험한 하나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만족했고 충만했고 풍요했다) 

그가 나를 푸른 풀 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는 롯 처럼 좋은 땅, 좋은 것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게 좋은 땅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이다. 그 땅을 그는 쉼이 있는 땅, 안식의 땅으로 불렀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안식을 준다. 평안을 준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한다. 그 인도하심으로 날마다 새로와지는 경험을 한다.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가운데 때로 자기가 부족해도 자기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뢰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는 때로 인생의 고난이 와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능히 이기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했다.)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미 그는 기름부은 자였다. 그를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고 그를 통해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거하면... 산다는 것은 함께 거한다는 것.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동행하는 것) 


거룩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꾸밈이 없다는 말이다. 첨가되지 않은, 인공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께 사람의 모습 그대로 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다. 

왜 그런 사람이 중요한가? 죄를 지은 인간은 자꾸만 자기를 포장하고 가리고 숨기고 외식하기 때문이다. 

외식하는 자들을 주님은 독사의 자식, 죄의 자식, 사탄의 자식이라 부르셨다. 

사울은 외식하는 자가 되어버렸다. 

다윗은 목동일 때나 왕일 때나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였다. 사람들 앞에서도 그대로였다.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었다. 기름부음 받기에 합당한 자였다. 


  •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12절) 

이것은 언뜻 보면  7절의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외로를 아름답다고 칭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지목하기 전에 누구도, 사무엘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를 데리고 오자 비로서 그의 존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감추었던 그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씨의 시처럼 하나님의 안목을 통해 그의 존재가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이다. 감추었던 존재가 꽃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감추었던 우리 존재를 드러내 주신다. 숨겨졌던 우리 아름다움을 피어나게 하신다. 

나를 부정하고 더럽게 생각했던 나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해 주신다. 

ex) 피부병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던 나를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게 하셨다.


  •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11절) 

여기서 막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카탄"이라는 말은 the youngest, the least, 

가장 적은, 혹은 가장 작은, 하찮은, 중요하지 않은...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사람들 대다수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업신여기는, 그런 존재이다. 

그의 존재가 하찮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가 하는 일이 정말 하찮은 일이라는 의미도 된다. 

하나님이 왕으로 부르시는 자는 이런 하찮은 자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그 어린아이, 하찮은 존재가 바로 막내라고 번역된 카탄이라는 말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쳐주지 않는 양을 지키는 일, 그렇지만 그 양을 지키는 자들이 가장 먼저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접하고 전하게 된다. 가장 작은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충실히 행했던 그 자를 하나님은 가장 큰 일을 감당하는 왕으로 부르셨다. 

사울이 자기 스스로를 왕으로 여기고 사무엘보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우선하자 하나님은 그를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셨다. 

하늘나라의 왕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가장 작은 자이다. 


3. 적용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쓰신다. 하찮은 자를, 연약한 자를, 작고, 적은 것을 쓰신다. 

그런 자를 왕으로 부르시고 기름부은 자를 만들어 주신다. 

이것은 단지 작은 자를 크게 만들어 주신다는 성공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 앞에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야기 할 수 있수 있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큰 전문적인, 능력있는 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자들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포장되고, 과장되고, 왜곡되어지는 하나님이 될 수 있고, 그들이 드리는 중보기도는 외식적인, 자기 합리화와 변명에 일관한 그릇된 중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외에는 중보자가 필요없다. 성령 외에는 참 선생이 필요없다. 

내가 목사로서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도같은 목사, 목사 같은 성도는 우리가 주 안에서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것을 부인하고 무언가 특별한 목사를 기대하는 성도는 종교라는 물건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일 뿐이다. 

좋은 상품이 나오면 열광하면서 달려들지만 거기에 하자가 발견되면 반품하고, 항의하고, 언제나 손님으로서 왕노릇 하려고 하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언제나 신상품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종교의 소비자일 뿐이다. 


이런 성도를 기대하는 교회와 목사는 종교라는 포장된 물건을 파는 상인일 뿐이다. 

끊임없이 소비자의 입맛대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출시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비싼 가격을 요구하면서 소비자가 가진 돈과 시간과 마음을 빼앗으려 하는 악독 기업주일 뿐이다. 


다윗은 구약에만 600번이상, 신약에서 60번이상 그 이름이 나타난다. 

영어권에서 가장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름이 다윗과 요한이다. 

흔하디 흔한 이름, 가장 하찮은 이름. 그 이름을 하나님은 왕으로 부르셨다. 


다윗은 성경의 인물 중 가장 자세히 다룬 인물이다. 

그런데 다윗의 일생을 보면 거기엔 어떠한 기적의 일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브라함처럼 100세의 나이에 아이를 갖는 이야기도, 홍해를 가르는 이야기도, 태양을 멈추는 사건도, 불이 나와 우상과 적을 뿌찌르는 일도, 하다못해 병자들을 치유하는 일도, 어떤 신비한 기록도 다윗의 삶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의 일생은 실패의 연속, 기다림의 연속, 방황의 연속, 때로는 유혹에 넘어가고, 죄에 괴로와하면서, 자식때문에 걱정하고, 우정을 나누며, 춤추고, 울고, 슬퍼하고, 때로는 증오하면서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담은 가장 평범한 삶을 보여준다. 

그는 가장 평범한 인생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 모두가 다윗이고 다윗이 될 수 있다. 

가장 거룩한 영성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신령한 것에 잠겨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장 평범하고 일상으로 가득찬 것이 가장 깊고 거룩한 영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도 하나님과 사무엘 사이에서 있었던 기름부음의 사건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새도, 아니 다윗 마저도 사무엘이 행한 것이 어떤 의미의 일인지 알지 못하고 사무엘은 그 자리를 떠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사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한 왕을 찾으신다. 

한영혼을 찾아 아무도 모르게 기름부어 주신다. 성령을 부어 주신다. 


세상을 보며 타이틀에, 성도수에, 성공을 표현하는 세상 앞에서 때때로 초라해지지만 다윗의 영성은 가장 작은 나를, 가장 연약한 우리 로고스 교회를 왕으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세워주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