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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막 8:33-38)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16장으로 이루어진 마가복음의 정확한 중간지점으로서 마가복음 신학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전까지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예수님의 관심의 초점이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신 사역이었습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말씀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유대인의 땅에서 5천명을, 이방인의 지역에서 4천명을 먹이십니다. 폭풍우를 잠잠케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빌립보 가이사랴 지역을 지나가십니다. 이 구절은 여러번 설교를 통해 말씀 드린 장면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인 카이샤르에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이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명명한 도시입니다.  

황제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황제의 이름에 걸맞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원형경기장이 있어야 하고, 신전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크고 대리석로 치장한 화려한 신전이 있는 곳에서 주님은 초라한 옷을 입고 제자들에게두가지를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세상의 가장 강력한 권력이 있는 곳. 세상 사람들이 가장 소망하는 모든 것이 있는 그 한복판에서 주님은 네가 믿는 주님이 세상 그 어떤 권력과 화려함보다 더 큰 분이심을, 하나님이 세상의 왕과 어떻게 다른 분이심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는 그리스도라는 말.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입니다"하는 이 고백은 이후 교회의 사명과 고백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신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다릅니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짖누르고 다스리는 나라, 부정과 부패를 일삼아도 돈만 있으면, 권력만 있으면 적당히 넘어가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동기든 다 허용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우리 안에 선한 양심을 일어나게 하시고,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의 주인인 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고백하는 곳. 그곳이 교회의 정체성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고백한 것입니다. 

세상의 왕, 세상의 왕의 신전 앞에서 "예수가 나의 왕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자기의 가야 할 길을 처음으로 공개하십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십자가와 부활의 길" 입니다.  

왜 예수가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가야 합니까? 바로 십자가와 부활, 고난과 죽음의 길, 수치과 모욕의 길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만이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죄를 씻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바로 조금전에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똑같은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마태복음 16장 22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 마옵소서: 십자가의 길로 가지 마세요. 왜 메시야가 십자가를 지려 합니까? 구약시대 하나님처럼 대적들을 무찌르고, 기적으로 놀라게 하고, 꼼짝못하도록 항복하게 하세요.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주님 십자가 못지게 막을 것입니다. 

붙들고 항변했다. 주님을 꽊 움켜 쥐고 항변했다.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자신이 메시야라고 불렀던 예수를 움켜 쥐고, 꾸짖기까지 하는 이 마음.  

십자가와 부활을 가로막는 이 마음. 

도저히 평소의 제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 마음. 


십자가를 피하고 고난을 피하고 좁은 문을 피하고 넓은 길, 편한 길, 높임 받는 길, 칭찬받고 대우 받기만을 바라는 마음. 

결국 가이사랴 빌립보, 또 다른 왕국, 제국, 세상의 왕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 세상과 별 다를 바 없는 그런 마음. 


33절: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어디에서 돌이키신 것인가? 베드로와 마주보고 있다가, 지금 갑자기 뒤를 돌아 다른 제자들을 보시고 그리고 제자들을 꾸짖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베드로를 꾸짖는 말이기도 하지만 정작 듣기를 원하시는 대상은 제자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33b)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일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지고 부활하는 일입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사람의 일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남들 다 가는 넓은 길로 가고 싶은 마음 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힘으로, 지식으로, 능력으로 뽐내고 자랑하고 높아지고 대우 받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34절 이제는 그 분을 따르는 무리와 제자,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자에게 예수 뿐만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그 길로 가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예외없이, 나를 따르는 자 모두...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자기를 부인하고(자기 이익, 자기 이기심, 자기 욕망)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 짐, 부담, 모욕, 수치)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무슨 소리입니까? 자기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자기 목숨처럼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존심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외식이고 겉치례입니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 백부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구원얻는 믿음, 은혜 받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구원 얻기 위해서 자존심 버리고 구원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리라"하는 주님의 매정한 말씀에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맞아요 주님, 제가 참 개처럼 여김을 당해도 마땅하지만 개들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십니까? "가라 네 믿음이 크도다" 합격! 


자기 십자가 할 때 마다 떠오르는 사람, 구레네 시몬 

(막 15: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이 십자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자원하는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지워진 십자가

우리는 자원하는 십자가에 익숙합니다. 힘들지만 내가 원해서, 어렵지만 내가 선택해서... 

그런데 시몬이 진 십자가는 억지로 지워진 십자가, 떠밀려서 나에게 온 십자가, 그렇지만 피할 수 없어서 마지 못해 지는 십자가...


2. 대가나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십자가

시몬은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저 길 지나다가 로마 병사에 의해 십자가를 졌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질 때에 이런 생각 얼마나 하는지 모릅니다. 이거 힘들지만 잘 지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시몬은 전혀 그런 기대함 없이 그 십자가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지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니라 Business입니다. 왜 회사에 나가서 피곤해도, 아파도, 하기 싫어도 일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 대가가 있기 때문에.... 그건 비지니스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잘못 교육하고 있는 것이 이거 하면 복준다. 이거하면 이렇게 된다. 

십자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비지니스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도 손해볼 일 전혀 안하려고 합니다. 


3. 주님이 당한 수치와 모욕을 똑같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 모여있던 군중들: 제자들은 도망가있거나 숨어있고 오직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군중. 어쩌면 시몬도 예수를 욕하면서 서있다가 병사들에게 끌려왔을 지도 모른다. 
  • 십자가를 들면서 욕을 하는 입장에서 욕을 듣는 입장으로 
  • 아무런 위로나 대가 없이 당하는 그런 수치감. 모욕


그니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억지로, 아무런 위로 없이, 수치를 당하면서 지어야 하는 십자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6절) 

신앙생활 하면서 십자가 안지고 칭찬과 명예와 성공과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가져도 정작 구원이 없으면 무엇이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예수가 지신,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워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면....


지난 주에 박사 논문을 통과하신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논문도 교수들의 격찬을 받으면서 미국과 한국에서 출판이야기도 교수가 먼저 제안하고 할 정도로 실력있고 학식이 뛰어나신 분.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한국 교회를 위해 어떻게 하고....그런 거창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가끔 목사라는 직분을 담당하면서 제가 지고 있는 십자가를 부끄럽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언제? 

세상적인 기준 앞에 설 때에... 

연봉으로 직업을 평가하고 교인수로 목회를 평가할 때. 

위축당하고 소심해질 때가 있어요. 

연봉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교인수가 목회의 전부인양 자꾸 그런데서 자유하려고 해도 그런 말을 듣고 대우를 받을 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럽게도 영향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가이사랴 빌립보 황제의 신전 앞에 서 있는 제자들처럼 성공을 자랑하는 세상의 위용 앞에서 자신이 초라해 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 장인어른 은퇴하시고 여기 저기 아프시고 할 때에 자식된 도리도 다 하지 못하는 자녀

자녀의 아픈 곳을 마음껏 치료해주지 못하는 부모. 

아내의 생일날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남편,

성도님들을 만나고 심방할 때마다 대접하지 못하는 목사... 


내가 가는 길이 맞나...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일까?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한 교회에서 식당봉사에 대한 갈등을 토로하며 한국에서 여행오신 권사님께 고출을 토로하니까 "우리 교회는 서로 식당봉사 안한다고 해서 아얘 사설업체에게 맡겼어요." 

희생없는 신앙생활, 헌신 없는 예배 

예배는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희생. 

왜?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위로받고, 힘을 얻으니까...

참 예배는 주일 날 드리는 한 시간의 예배가 아니라 우리 삶을 통해서 우리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그리고 주일 날 예배를 통해서 감사하고 회복하고 충만하여져서 돌아가는 것이다. 

예배 드린다고 표현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공급받는다. 

그런데 얘기 하다보면 마치 예배가 자신이 드리는 최선의 희생이고 헌신인양....


새벽예배 시간이 끝나면 간단히 아침식사 하고 교회 청소.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토요일 날 새벽예배 드리는 성도님 수가 확 줄었습니다. 

이수연 집사님 화장실 청소, 이귀자 권사님 강대상 청소, 제가 청소기 돌리고 바닥 닦고....

그것을 보기가 넘 딱하다. 

그래서 언젠가 부턴가 토요일날 청소를 안하고 간다. 

나중에 아무도 없을 때에 혼자 청소한다. 

성도들 누구를 보아도 딱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부담 안주고 내가 하려고 한다. 

그것이 목자의 심정이다. 

힘들게 일주일 일하고 토요일 하루 푹 자는 사람들에게 억지로라도 끌어서 나오라는 말 차마 못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목숨을 위해 천하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구원에서 멀어지면 어떡하는가? 

자기가 손해보고 힘들어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 구원을 이룬다. 그래야 구원을 이룬다.

이제 무더운 여름도 지나고 아이들은 새 학기가 시작된다. 

우리 교회도 9월부터는 새로운 그룹으로 성경 공부가 시작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글학교가 시작된다.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 개인들에게 어떤 부담이나 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자원하는 심령이 있을수도 있지만 자원하지 않고 억지로 맡기워진 십자가가 주어질 수도 있다. 

기억하자.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자존심 내려놓고, 자기 이기심 내려놓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때로는 억지로 맡기워진, 달가와하지 않는, 피하고 싶은 일들이 주어져도 

나를 따르라. 

주님이 하셨듯이 나도 주님따라 순종하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 로고스 성도들이 되자.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