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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서명 (에베소서 1장 13-14절) 


미국의 한 젊은이가 프랑스의 파리를 여행하다가 한 허름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 500불을 주고 진주 목걸이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오래되고 낡아 색깔은 다 바랬지만, 진주목걸이에 장식되어 있는 장식품이, 그의 눈길을 끌어, 얼마냐고 물었더니, 500달러를 내라고 했습니다. 조금 비쌌지만 장식품이 마음에 들어 큰 맘 먹고, 사서 미국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있고 있다가 목걸이의 줄을 새로 갈아 선물하기 위해서 보석상에 들렸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이 진주는 한 얼마쯤 할 것 같아요? 했더니 진주를 유심히 살피다가 이거 어디서 샀냐? 얼마를 주고 샀냐 등 꼬치 꼬치 묻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는 파리의 골동품 가게에서 500불을 주고 샀다고 했더니 보석상 주인튼 "사실은 내가 이런 종류의 진주를 좀 구하고 있었는데 제가 값을 좀 쳐드릴테니 나에게 좀 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그만치 이천불을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깜짝 놀랐으나 이거는 선물을 주려고 산 것이니 팔 수 없다고 딱 잡아떼고 가려고 하니까 꼭 좀 팔라고 하면서 글쎄 만불까지도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꾸 가격을 올려 팔라고 하니 젊은이는 좀 이상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딱 잡았떼고 보석상을 나왔습니다. 

다음날 젊은이는 꽤 유명한 믿을 수 있는 보석 감정사를 찾아가 진주의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감정사는 처음에 눈으로 그것을 살펴보다가  돋보기로, 나중에는 현미경으로 그것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하더니 뜻밖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사실 이 진주 자체는 그저 평범한 진주입니다. 그런데 여기를 자세히 보십시오." 

자세히 보니 진주에 깨알만큼 작은 글씨로 '사랑하는 조세핀에게' 하고 써 있고 그 밑에 서명한 싸인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나폴레옹 대왕이 그가 평생동안 가장 사랑했던 아내 조세핀에게 주었던 진주 목걸이였던 것입니다. "이 진주목걸이 자체만으로는 불과 몇 십 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적혀 있는 글씨와, 친필 사인 때문에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간다."고 했습니다. 보석 값보다는 거기에 적힌 글 값이, 훨씬 더 비쌉니다. 


오늘 읽은 본문 에베소서 1장 절을 보면 

(엡 1: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인치심, 바로 하나님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이 서명이 새겨져 있습니까? 바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는 자'는 성령의 인치심, 하나님이 서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따라해 보십시다. "나는 하나님이 서명을 받은 자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바울은 롬8:9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14장에 보면 짐승의 이름표와 하나님이 이름표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짐승의 이름표라는 말은 잘 아는데 하나님이 이름표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계 14:1)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계 14:11)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또한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3)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계 9:4)"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기다리시고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과 같은 만물을 보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치신 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요, 택한 자들이 다 인치심을 받기 까지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윤리적으로 완벽하게 살고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의 출생 학교, 직업, 연봉 등 각자 자기들만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의 가치를 매깁니다. 

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같은 사람인데도 쩔쩔매며 받들기도 합니다 .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하나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은 편지를 쓰거나, 계약서를 만들 때 또는 중요한 문서를 만들 때 사용되는 도장을 의미합니다. 

(단 6:16-17)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인을 친다는 것은 변경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도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파수꾼이 굳게 지키고 인을 처서 봉했습니다(마27:66).

‘인’은 내용을 안전하게 보장하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살펴보면, 먼저 진리의 말씀, 구원 복음을 ①듣고, 예수님 안에서 ②믿고 약속의 성령으로 ③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은 바뀔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사탄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그 순간부터 성령님께서 우리의 고백에 도장을 찍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변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우리를 구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 크신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인침은 우리의 소속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인친다’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소유권입니다.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왕과 백성들 앞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예언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아나돗에 있는 숙부의 땅을 사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증인들 앞에서 증서를 쓰고, 그 증서에 인봉한 후, 돈을 지불함으로 이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증서를 쓰고 인을 봉함으로 땅의 소유권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곳은 다 느부갓네살 왕이 소유해도 예레미야가 인봉한 이 땅 만큼은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인은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롬 8: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에 속한 자녀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셋째, 성령의 인침은 우리가 받을 기업의 보증서가 되십니다.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며, 이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기업’은 헬라어로 ‘상속’ 또는 ‘유산’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게 될 유산(기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치는 나자신의 직업이나, 학벌이나, 가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늘 나라를 상속으로 보장 받을 수 있는 것, 우리 안에 성령이 우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3:16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바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귀해서 성전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삶을 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엡 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내가 예수님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인정하려고도, 들으려고도, 순종하려고도 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는 자가 됩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동행하심과 그 역사하심에 대해 더욱 민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는 대로 성령님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의 마음 밭을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 안에 거룩한 소원이 일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적으로 내 안에서 생각나고 반복되며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을 받았다는 중생에서 시작해서 성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외면하고 근심시키게 되면 어떻습니까?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릅니다. 

-기도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바쁘다고요?

-섬기고 싶으나 시간이 없다고 요?

-성경을 더 알고 싶으나 바쁘다고요?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나 바쁘다고요?

-주일예배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더 이상을 할 수 없다구요? 

-성도의 교제가 번거롭고 거추장스럽다고요?


이런 것 하나 하나가 왜 우리 안에 고민되기 시작하는가? 바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 들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둠 속에 거하던 우리를 이제 빛의 자녀로 옮겨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룩한 갈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 끝에 지고, 실패하고, 포기하고 넘어지면 결국 성령의 거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렴님은 다른 발로 보혜사입니다.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도 늘 다른 길로, 자기 눈에 드는 것만 행동하고 보던 제자들이 성령이 거하심으로 이젠 악한 생각에서부터 보호하고, 우리에게 계속적인 은혜를 부어 주시고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놀라운 일들이 초대교회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은사님이 지금 집에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을 집에 앉혀놓고 마음껏 나가서 놀고 즐기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그 분과 앉아서 그 분을 기쁘게 하고, 그분과 대화하며 계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으면 우리 안에 계속적인 깨달음이 있고, 변하며 열매맺는 역사들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나 자신의 변화를 예고 합니다. 기쁨으로 받아 들이고 성령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열매가 나옵니다. 확증입니다. 교회에서, 공동체에서 교제하세요. 섬기세요. 이게 성장입니다. 온전한 교제는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서 역사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주신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의 임하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자라며 성령의 역사를 맛보도록 인도하신 안전한 장소가 교회입니다.  

믿음은 혼자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머리 되신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에서 믿음이 성장합니다.

교회를 떠나서 혼자 설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결코 교회를 떠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와 다양한 은사 가운데서도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경험합니다. 성령의 역사의 완성은 교회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DL 무디 목사님은 "하나님의 성령 없이 크리스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폐 없이 숨을 쉬려하고, 눈 없이 보려하며, 귀 없이 들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인정하시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셔서, 구원을 보증하시고,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소유), 우리 기업의 보증까지 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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