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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2 (열왕기상 3장 16-28)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른바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누가복음 15장의 두 아들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나누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비유를 기억하면서 둘째 아들을 나가도록 내버려두는 아버지의 모습에 관하여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이 비유가 두 부류의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결국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우리가 살펴 볼 신학적인, 혹은 실재 신앙적인 문제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분깃을 요구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내 몫"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지금도 무엇인가를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기도- 대화

간구- 들어달라고 구하는 것

중보- 남을 위해 구하는 것

 

하다못해 예배드리러 와서 "은혜"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잘못 된 것 아닙니다. 제 자녀가 학교에서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부모에게 요구하듯이 자녀에게는 아버지께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함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가 바로 서 있을 때 이지요.

그 분깃 만을 요구하며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 한다면 아버지는 그것을 더 이상 들어줄 이유도, 근거도 없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 나 복주어서 내 맘대로 살게 해 주세요."하는 기도를 어찌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구하여서 들어주었더니 더 이상 하나님 필요없어서 떠나버리는 것 -

사사기서의 교훈이요, 유럽, 미국,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까지 펼쳐지고 있는 잘못된 신앙의 역사

 

더군다나 이 아버지는 분명 복을 주어 내보내보았자 아버지 품을 떠난 그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여 결국 세상에 기생하는, 짐승같은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내보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 품 떠나서 어디 한 번 혼 좀 놔봐라!" 하는 모습이지 사랑의 모습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앗수르의 포로가 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가만 내 버려 두시는 하나님.

그래서 17, 18세기의 하나님에 대한 상

창조하시고 심판 때까지 내버려 두시고 간섭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말라기 선지자 이후 - 400여년간 어떤 말씀도 들려지지 않는 이야기.

하나님은 우리가 죄 지을 때 간섭하지 않으시는가? 손대시지 않으시는가?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떠날 때에 손 대실 수 없는가? 손대시지 않으시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판결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서 아버지의 지혜,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묵상해보도록 합시다.

 

열왕기상 3장에 나온 솔로몬의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를 유명하게 한 일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촛점이 솔로몬의 판결에 맞추어져 있지요. 그리고 성경은 이 판결의 일화를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 기독교 공동체는 구약의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제 구약의 말씀을 필요없고 예수님의 말씀, 사도들의 말씀만을 들을 것인가하고 고민하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리더들은 그리스도를 해석의 틀로 삼고 모든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영성가들과 심지어 후대의 종교개혁자들까지도 무엇이라고까지 주장하였냐면 "성경의 모든 사건과 설교들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고 까지 했으며, 성경의 각각의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다면 그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고까지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솔로몬의 재판에 등장하는 이 사건 역시, 성경이 자세히 다루고 있는 이유는 결국 그리스도를 향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솔로몬의 재판을 다시 들여다 봅시다. 또한 솔로몬의 지혜가 세상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그의 지혜가 결국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경륜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는 과연 무엇입니까?

 

  • 솔로몬의 재판 (왕상 3:16-28)
  1. 이 재판에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왕, 산 자의 어머니, 죽은 자의 어머니, 그리고 살아있는 한 아이.
  2. 간략한 내용: 한 집에 두 창기가 함께 살고 있고 사흘 차이로 아이를 낳는다. 그 중 한 아이가 죽자 죽은 아이의 엄마가 죽은 아이를 산 아이와 바꿔치기해서 지금 서로 자기가 산 자의 어머니라고 재판을 걸어온 것.
  3. 왕: 왕되신 하나님 산 자의 어머니: 예수 그리스도 죽은 자의 어머니 : 사탄 산 자: 모든 인간, 혹은 그리스도인.

 

    • 왜 두 창기라고 표현했을까?

창기: 몸을 판 자, 자기 위치를 잃어버린 자, 가장 낮은 위치에 처한 자

사탄: 천사에서 타락하여 땅으로 떨어진 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자

 

    • 아이의 부모가 바뀌다.

원래 우리 인간은 그 소속이 사탄이 아닌 그리스도께 속해 있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과 속임수로 말미암아 사탄이 우리를 다스리게 되었다. 우리의 소속이 산 자에서 죽은 자가 된 것이다.

 

    • 칼을 가져오라: 하나님의 공의, 심판

아이를 둘로 쪼개라는 엄위한 명령 앞에 산 자의 어머니는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죽은 자의 어머니는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사탄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분열과 파괴와 함께 공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권리, 아니 그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포기한다.

당시의 재판 - 칼을 가져오라는 왕의 심판 (최후의 판결)- 타협의 여지가 없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거짓이 탄로나는 자가 죽든, 그 둘이 아니면 아이가 죽어야 했다.

어머니가 선택한 것은 그저 아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포기한 것이다.

 

그 때 그 어미의 심정을 설명하는 말이 무엇인가?

 

26절: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왜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예수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포기하셨다.

자기의 옳음도, 하늘보좌도, 사람들의 기대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우리를 살리셨다.

 

  •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 하나님의 공의

모든 것을 지켜본 왕이 아이를 살리려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어미의 모습을 보며 공의로운 판결을 한다. 왜? 참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기 때문이다. 참 신과 거짓 신이 어디서 나뉘는가? 참 목자와 거짓 목자가 어디서 분별되는가?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가? 아니면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하지만 결국 자신의 잇속만을 채릴 것인가?

 

십자가를 통한 사랑의 확인을 통해 사탄의 거짓이 판명되었다. 이제 누가 죽게 되었는가? 사탄의 정체가 탄로나고 그는 심판받아 죽게 된 것이다.

 

28절: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솔로몬의 지혜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머문 것이다.

 

이 본문을 설명한 한 주석에서 이 때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한 산 자의 어머니의 모습과 분깃을 얻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결국 동일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연결시킨다.

 

왜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아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가?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자기 권위의 치명적인 손상이요, 자기 재산의 손해요, 무엇보다도 아들을 잃어버리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아들이 죽게 되는 것 보다 자기가 손해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빼앗기는 것을 감수하는 어머니의 불붙는 마음과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 허랑방탕한 것을 알면서도 보낼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바알과 앗세라로, 앗수르의 포로가 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결코 어디 한 번 나를 떠나면 어떻게 되나"하면서 우리의 실패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다. 집 나간 자식을 잊어버리고 다시 평온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무감각한 아버지도 아니다.

 

아들이 나가자만자 한 날도 마음을 놓치 않으면서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며, 또 기다리며 잃어버린 아들을 향한 불붙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십자가의 마음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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