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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관심 앞에서 (시편 77편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가장 큰 통로가 기도임을 압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그 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하면 하나님을 경험하리라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증언합니다. 

광야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은 부르짖었습니다. 

애굽의 군사들이 쫒아올까봐 부르짖었고, 물이 없어서 부르짖었고, 음식이 없어서 부르짖었습니다. 

언제 그들의 부르짖음이 멈춥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부르짖음은 멈추기 시작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떠나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땅에서 그들은 기도를 잊어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심 때문에 때로는 망가진 삶을 살아가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은 기도를 무디게 합니다. 기도를 하긴 하지만 간절히 매달리지 않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실망하지만 응답되지 않는 기도 때문에 위기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든 간절히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때문에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한솔이 - 몰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 발견 - 아빠 사줘.... 사달라고 사주지 않는다. 

              자꾸 떼를 쓰면 아빠 말 잘들으면 사줄께....

              그래서 한동안 말을 잘 들으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몰에 데리고 가서 그토록 사달라고 조르던 장남감을 사준다. 장난감을 얻은 한솔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한 나의 기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단 그 장난감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더 이상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장난감이 실증날 때까지 이제 장난감만 가지고 논다. 그러면 또 아들한테 실망하고 소리치게 된다. 

                     

생활 속에서 누리는 안전과 풍요로움 때문에 우리는 때로 간절함을 잃어버립니다. 

당장 가지고 있는 풍요로움과 티브이나 메스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타인의 풍성함에 대한 부러움때문에 천국의 복음을 전해도 간절히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가 복음이 처음 들어왔던 일제 식민지 때, 그리고 6.25 때, 그리고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에서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 가난한 자, 병든 자를 구하러 오신 예수의 복음은 그야말로 희망이었고 전부였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영생을 말해 보았자 영생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이두우 집사님이나 이옥희 집사님 댁에 심방가서 천국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 그 분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천국을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때에 정말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보지 못하합니다. 


성경에는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명성을 누리던 회당장 야이로는 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세로도 앓고 있던 딸의 병을 고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님앞에 나와 기도합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은 그 당시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고 어떤 누구도 자신을 구해줄 수 없음을 알았기에 예수님께 간절히 자신을 의탁합니다. 


이것이 성경 속의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일입니까? 

아니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여전히 일어나는 상황들입니다. 우리도 나 자신에게서, 우리 주변에게서 여전히 이런 저런 간절한 일들, 다급한 일들, 우리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그런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금만 눈을 들어서 주위를 살피면 이런 저런 절망적인 일들은 실례를 들지 않아도 오히려 점점 더 많아져만 갑니다. 

왜 우리가 절박함을 모르는가? 왜 간절하지 않는가? 결국은 우리가 풍요롭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엘리 선지자. 

세월호 사건... 우리나라의 현실의 모습. 


시편 77편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이런 표제를 단 시편이 62편과 77편이 있습니다. 

여두둔은 아삽과 마찬가지로 성전 찬양대의 지휘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에게 문을 지키게 하였더라>(대상 16:42).


지금 아삽이 어떤 환난을 당했는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는 자신이 깊은 어둠 가운데서 하나님을 부르짖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너무나 불안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처해있다.


여두둔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잘 나와 있지 않지만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이 77편의 내용을 근거로 여두둔의 법칙을 내용적으로 살핍니다. 

1.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1절).

여두둔이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제1법칙입니다. 자신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각자가 직접 하나님을 찾고, 손을 들고 자기의 육성으로 기도하는 일이야말로 환난 극복의 첩경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2절).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염려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 탄식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기도는 유한한 우리가 무한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만나는, 통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전심전력하여 우리의 한계를 이겨내며 하나님을 만나고자, 그 분의 음성을 듣고자하는 전인적인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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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상황이 오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 같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 간절함은 아마도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간절함은 참된 기도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은 또한 고통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데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습니다. 외면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런 절망의 표시를 이렇게 표현 합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릴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간절히 부르짖는데도 응답하지 않으실 때, 나에게 도무지 무관심한 것 같을 때

어떠하겠는가? 

피터 드 브리스 

벤 원더홉 - 십대 소녀 캐럴을 키우는 홀아비. 그런데 캐럴이 백혈병이 걸렸다. 

"절 위해 딸을 살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단 1년만 살려 주십시오. 내가 그 애에게 못해준 것, 단 1초도 허비하지 않고 잘 쓰겠습니다." 

병원으로 가 보니 딸의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기도가 응답된 것 같아 기쁨과 감사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다음날 병원을 가는 길에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주려고 케익도 사 가지고 간다. 

그런데 그 날 딸이 갑작스런 감염으로 숨을 거둡니다. 

아버지는 마치 하나님께 조롱당한 것 같아 분노한다. 

교회에 케잌을 가지고 가서 슬픔과 분노에 쌓여 십자가를 향해 케익을 던져 버린다. 

케익이 십자가 한가운데 정확히 맞고 흐러 내린다. 


다른 소설을 한 번 더 소개 해 볼까요? 

<그날 밤>이라는 유명한 고전을 남긴 엘리 비셀 이라는 사람이 쓴 작품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집단 처형장에서 쓴 재판

재판의 피고가 누군질 아는가? 하나님 

유대인의 랍비들이 하나님을 재판에 회부했다. 

증인들이 나와서 자기들이 받은 학대와 고통,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지만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고 외면하고 무관심 했던 하나님의 불성실을 증언했다. 


그 소설의 반전은 하나님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이다. 

그는 하나님은 잘못이 없으며 그저 다른 기도를 듣느라 너무 바빴고, 만약에 그 기도를 들었어도, 이미 어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늦었고 하나님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나님을 변호한다. 

그런데 그 변호인의 정체가 누구인줄 아는가? 바로 사탄이다. 


하나님께서 참으실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은 마땅히 그렇게 행동하시거나 내가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하시니까 아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공손한듯 하지만 가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를 좋아하신다. 

기꺼히 물음에 씨름해 주신다. 야곱에게처럼, 욥에게처럼....

해결되지 않는 물음을 가지고 과감히 달려드는 자들을 외면치 않으신다. 


그들의 물음에 적극적으로 답해 주신다. 

기도는 다름아닌 기쁨이던 슬픔이던 분노던...

우리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상한다. 원더홉 같은 사람처럼 분노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 분노를 하나님께 표현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다.

억누르는 것은 자기의 한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해결되지 못하면 애꿎은 남에게 그 분노가 표출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벌을 가하게 된다. 남을 해하거나 자신을 해하게 된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 해 본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불손하다 여기지만 시편의 말씀들은 우리의 기쁨 뿐만 아니라 분노, 절망 같은 감정들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늘 좋은 상태에서 기도할 필요가 없다. 좋지 않은 상태도 있는 모습 그대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도이다. 

그렇다 보면 우리는 우리 속에 감추어진 우리의 위선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위선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위선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두신다. 

씨름하지 않으면 참된 평화는 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감정을 용납할 수 있는 만큼 크고 강하고 자비로우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의 파괴를 막으신다. 


2.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라!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5절),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11절).

그렇습니다. 그 어떤 환난이 과거 이스라엘의 광야생활만 하겠습니까? 그들은 홍해 앞에서 절망했고,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쳤습니다. 또 마실 물이 없어 고통했습니다. 낮에는 무더위에, 또 밤에는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그 모든 환난을 이기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보장해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 해갈하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에어컨으로, 밤에는 불기둥 히터로 지켜주시고, 옷이 헤어지지 않게, 발이 부르트지 않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환난이 닥칠 때 이런 주의 행사를 기억하며 용기와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내가 느끼건 못느끼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3.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음을 고백하라


시편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의 기도이고 찬양이다. 

그 안에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 감사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원망도, 증오도 분노도 들어있다. 

가끔 그 분노는 하나님을 향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분노를 받아 내신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여전히 돌아오는 아들을 맞아 주신다. 


그리고 나 자신의 외식과 죄를 보게 하시고 꺠닫게 하시며 그 분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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