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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한 사람 (열왕기상 3장 2-13절) 


오늘은 솔로몬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성경에 있는 인물 중 솔로몬처럼 논란이 되는 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그를 선한 자로 볼 것인가? 악한 자로 볼 것인가? 

그를 본받을 자로 볼 것인가? 닮아서는 안 될 자로 볼 것인가?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자였을까? 


그는 출생에서부터 어쩌면 그릇된 자였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게 태어난 아들. 

성경은 밧세바를 칭할 때마다 다윗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우리아의 아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의 족보를 전할 때에도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서 늘 따돌림 당하는 자녀였습니다. 같이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가장 큰 실수는 정략결혼을 통해 수많은 이방여인과 혼인하고 그 댓가로 그 여인들과 함께 수많은 우상 숭배가 행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은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구약에서 모세 다음으로 많은 성경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성경은 잠언, 전도서, 아가서인데 초대교회 영성가들에게 솔로몬의 성경은 인간의 영혼육을 위한 말씀으로 각각 읽혀지고 해석되어져 왔습니다. 

그가 남긴 성경들은 그가 과연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뜨리게 한 장본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교훈과 지혜의 말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삶에서 가장 유명한 이른바 일천번제를 통해서 그가 하나님께 이른바 지혜를 얻게 되는 장면입니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솔로몬이 왕 위에 오르자 다윗의 유언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먼저 정리합니다. 다윗이 죽고나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것은 순탄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들들이 많았고 그 중 솔로몬의 세력은 미약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정리하며 자가세력을 견고히 합니다. 


그것이 열왕기상 2장까지의 내용입니다. 

2장 마지막절 46절의 끝을 보면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급한 불을 끄자 그가 행한 것은 이른바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이른바 일천번제를 드린 것이지요. 

일천번제를 그린 날 밤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이른바 금도끼 은도끼를 연상하는 일을 벌이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지혜를 주십시오. 

네가 너를 위해 장수도, 부귀도, 원수를 멸할 힘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니 장하다. 내개 지혜도 주고, 덤으로 부도 주고 명예도 주겠다.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또한 실제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서양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가장 지혜로운 자로, 가장 부유한 자로 여겨지는 실존인물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사건을 모델로 하나님 앞에 복받기 위해서 일천번제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천일 기도를 드리듯이 천번의 헌금을 작정해서 드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나면 지혜 구하면 다른 것 다 주시니까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지혜를 원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면 다른 것 다 주시니까 구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복신앙의 대표 유발자가 일천번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일천번제 드리면 정말 감동하실까? 

아니면 그 물질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시는 것인가? 


인류 역사상 하나님께서 이토록 한꺼번에 큰 축복을 무더기로 부어 준 역사가 솔로몬 이전에도 없었고 또한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이토록 큰 축복을 부어주신 것일까?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일까? 


너무 흔하고 진부해서 흘려 지나갈 수 있는 구절이지만 성경은 솔로몬이 축복받은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상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정확한 표현은 "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말한 모든 법도와 함께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라는 표현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했다."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뭐 솔로몬 하나뿐이었나? 


성경을 샅샅이 뒤져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그 백성을 사랑하는 표현은 많지만 "누가 하나님을 사랑헀다" 라고 객관적으로 진술한 구절은 이 곳이 유일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다 뒤져 보아도 오직 한 번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의 고백으로 한 번 표현될 뿐입니다. 객관적인 서술로서 표현 된 것은 솔로몬의 이 서술 한 번 뿐입니다. 


그가 일천번제를 드린 것- 물론 그것은 천일을 드린 것이 아니라 단 번에 드린 제사지요. 

왕이니까 소 천마리 잡는 것이 얼마나 클까? 

왕이지만 금액으로 환산해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예배를 드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왜?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거룩하게 준비한 예물로서 번제를 드리고, 그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면 심판을 당하고, 두려움에 떠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은 특정한 몇몇 인물들 뿐이었습니다. 


신명기서에서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런 구절이 수십차례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순종하면 복, 불순종하면 저주....하는 인관관계의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숭배의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솔로몬은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을까? 사무엘하 12장 24-25절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삼하 12: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삼하 12: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서두에서도 말씀한 바와 같이 솔로몬에게는 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아들이라는 불륜과 죄악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녓습니다. 

그 이유로 첫 아들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탄생에서부터 죄악 가운데서 두려움 가운데 태어난 자녀였습니다. 또 죽어도 아무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났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했다. 용서헀다. 아끼셨다. 그래서 특별히 여디디야라고 애칭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왕이되기까지 솔로몬 앞에는 쟁쟁한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암논을 설명할 때도, 압살롬을 설명할 때도 그렇게 준수하고 멋있게 그들을 표현합니다. 

솔로몬은 서열상으로 보나도 왕이 될 수 없었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윗의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이스라엘의 왕 위에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사랑하셨고 솔로몬은 그 사랑에 감격해서 역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표현이 일천번제라는 예배로 나타난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경 중에 아가서는 왕과 술람미 여연의 사랑을 다룬 시 입니다. 

슬람미 여인은 아가서에 보면 왕의 사랑을 지극히 받지만 피부가 검어서 다른 여인들로부터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아가서를 해석하면서 왕은 누구고 술람미 여인은 누구일까 궁금해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이나 성서 학자들은 다윗이 말년에 얻은 마지막 부인인 아비삭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수넴여인으로서 아비삭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되며 밧세바가 다윗을 찾아가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하는 장면에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즉 다윗과 솔로몬의 왕위 계승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 목격한 여인으로 열왕기상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술람미 여인은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왕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오른 솔로몬 자신을 나타낸다라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거의 흠없는 삶을 살았던 다윗에게 어쩌면 솔로몬 이라는 자식은 자신의 죄악을 떠올리게 하는 아킬레스 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끝까지 지극히 사랑했고,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는 아름다운 영예를 얻게 됩니다. 마치 예루살렘에 거하는 많은 여인들 중에서 끼이지 못하고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가지며 포도원을 돌보는 술람미 여인의 모습은 왕실 내에서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죄악의 그림자 아래에서 열등의식을 가지며 자라왔던 솔로몬의 자화상이기도 한 듯 합니다. 


아가서는 그 노골적인 표현으로 오랫동안 교회 내에서 금서가 되기도 헀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영성가들에게는 영훈련서나 메뉴얼로서까지 여겨졌던 영적인 설서였습니다. 

솔로몬은 이 아가서를 스스로 이름 붙이기를 "Song of songs", 노래 중의 최고의 노래라고 잠언보다, 전도서보다, 어떤 시편보다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했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을 사랑헀던 솔로몬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 (왕상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 구절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과 동시에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했는데 단 이것만 빼고, "EXCEPT"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만 빼고"라고 구태여 써 놓습니다. 

이 때는 어차피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라서 구태여 쓸 필요가 없는 표현인데도 EXCEPT라는 말을 쓰면서까지 그의 산당예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왕상 11장을 다같이 펴봅시다. 

[왕상 11:1-8]

(왕상 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 11: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상 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왕상 11: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왕상 11: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왕상 11: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왕상 11: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왕상 11: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각각 다 그와 같이 산당을 짓고 몰록 제사(아이를 바치는 제사) - 몇명에게? 천명에게...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김으로 그 축복이 다 사라져버림... 

죄는 하나님을 잊는 것이 아니라 겸하여 섬기는 것이다!!!!


  • 또 지혜를 주면 이것 저것 겸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은 왜 지혜를 구했는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면 주의 영광과 내게 맡기신 양들, 형제들을 위해서... 

초점은 자기를 위해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영혼을 위한 구함이었다는 것. 

하나님을 감동시킨 또 다른 이유... 


  • 신약 시대에 이렇게 주를 사랑한 사람하면 또 오르는 세 인물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린 여인- 마리아 

벳세다- 가난한 동네, 그렇지만 주님이 오시면 늘 찾아갔던 그 집에서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나와서 주님 발 앞에 붓고 머리고 그 발을 씻김. 왜? 너무나 사랑해서... 

값으로 설명이 안되는 사건 -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걸 팔아서 다른 일에 쓰거나 아니며 발에 붓지 말고 선물해서 조금씩 쓰게 하지...

'

(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주님도 너무 감동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 사랑을 알리게 하셨다. 


  • 베드로와 요한 

"네가 날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에게 주신 말씀 " 내 양을 치라, 먹이라" 마치 솔로몬이 주의 백성들을 먹이고 치리하는 것처럼 너도 그들을 쳐라. 먹이라. 

그에게 주신 약속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너에게 줄 터이니...

[마 28:19-20]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의해서 구원받았고 은혜 받으며 그래서 예배합니다. 

그런데 우린 얼마나 그 분을 사랑하는가요?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했더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부어주셨습니다. 


지금은 안 그럴지도 모릅니다. 왜? 너무 부어 주니까 오히려 망하는구나...

그렇지만 솔로몬에게 부어 주셧던 그 마음은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정말 아낌없이 모든 것을 부어주시는 그 마음은 한결같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맡긴 것이 영혼입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사랑을 알리게 하십니다. 


솔로몬만 그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린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의 백만분의 일 만큼이라도 내가 주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분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주를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