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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막힌 담을 허뭄 (엡 2: 14-22절) 


얼마 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땅에서 공화당이 오바마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나라 전체가 셧다운이 되는 기가 막힌 일이 발생하더니 요 며칠 전에는 천주교 정의 사회구현단에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미사를 드린 것이 뉴스에 나오면서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정부패 정권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한쪽에서는 국가 전복을 노리는 빨갱이 세력이라며 신부들에게도 북한 추종자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셧다운과 같은 사건이 우리나라에도 임박해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도, 이념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남쪽은 또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있고, 지역별로도 갈라져 있고, 또한 세대별로도 갈라져 있습니다. 나라가 혼란할 때일 수

록 점점 중도층은 사라져 버립니다. 양쪽 극단이 대치되면서 사회적인 혼란이 심화되는 것입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가 빨리 평화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평화를 갈구하고, 희망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소망도 평화도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평화는 잠깐 머무는 것이며, 희망 역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평화도 행복도 고갈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사회가 창조되었던 때, 에덴동산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인 평화 그 자체였으며 담이 없고, 불신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세상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교제했고, 인간은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으며 만물을 다스리고 그들에게 비전을 주며 살았습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서로 돕는 베필로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습니다. 

평화가 깨어지고, 행복이 사라지고, 소망이 필요하게 된 것은 죄의 결과였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평화가 깨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옷을 입어 서로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또한 바위 뒤에 자신을 가림으로써, 무슨 말입니까? 돌처럼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피하게 됩니다. 

평화의 땅,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서로 시기하여 형제끼리 살인을 저지르는 파괴자가 되고, 바벨탑을 지어 하나님의 자리를 꾀차고자 하는 교만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니까 이제 끼리 끼리 말이 맞는 사람하고만 어울리며 말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 담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 모든 담이 바로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간의 깊은 불신의 담,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죄의 깊은 담, 육신적인 정욕과 영적인 갈급함이 동시에 존재하며 분열된 자아의 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인해 무너지고 화목하게 되고, 평화가 오고 화해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이방인과 유대인의 담 


에베소 교회는 계시록에 나와있는 교회중 첫 번째 소개된 교회로 이스라엘 밖의 아시아 땅에 있는 이방땅의 교회였습니다. 

11절 12절에 보면 예수를 믿기 전 이들 이방인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할례 받지 아니한 무리요,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이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언약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이고, 따라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죄에 빠진 인간,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향한 유대인들의 소외는 매우 철저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매우 경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지옥 불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오시기전까지 이방인들은 유대인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까지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 의식과 율법으로 거룩하다는 우월 의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개 같이 취급하고 상종하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을 외골수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진 악독한 족속으로 낙인을 찍어 놓았던 것입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았던 것이죠. 


본문 14절에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중간에 막힌 담"이 있음을 말합니다유대인과 이방인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중간에 막힌 담으로 인해 철저히 막혀 있었고, 말 그대로 원수지간이었습니다. .  

중간에 막힌 담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둘레에는 제사장들의 뜰이 있었고, 뜰 동편에 유대인들의 뜰(유대인 남성을 위한)이 있고, 그리고 조금 더 가서 여인들의 뜰(유대인 여성을 위한)이 있었습니다. 이 세 뜰은 모두 동일한 높이에 있는 뜰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다섯 계단 내려오면 벽이 하나 있고, 벽의 다른 한쪽으로 다시 열네 계단을 내려가면 다른 벽이 또 하나가 있는데, 그 너머가 바로 이방인들의 바깥뜰이었습니다(마26:69). 높이가 1.5미터 가량인 돌로 쌓은 이 벽에는 헬라어와 라틴어로 곳곳에 "이 벽을 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결코 성전 지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은 감히 이스라엘의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갈 수 조차 없었습니다. 오직 뜰만 왔다갔다 할 뿐이었죠. 


이러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오랜 반목과 질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로 묶어지는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엡 2: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는 결코 영원한 반목과 원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사람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 자기와 맞이 않는 사람, 그냥 안 보면 그만 입니다. 억지로 상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피로 인해서 먼 자도 가깝게 대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식이 부모 말을 안들으면 '넌 이제 내 자식 아니다...'하면서 자식을 혼내기도 합니다. 부모가 자기에게 서운하게 하면 '난 분명 친아들이 아닐꺼야' 하면서 때로 가출을 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그렇게 관계를 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때로 서운하고, 때로 보기 싫어도 결국 볼 수 밖에 없는 존재고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성도들은 역시 하나님 나라의 가족들입니다. 

신분이 다르고, 출생지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달라도 결국은 천국에서 함께 해야할 식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담을 헐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 

또 우리 믿는 자들은 왜 담을 헐고 화평해야 합니까? 

엡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둘이 되었습니까? 왜 서로 원수가 됩니까? 왜 중간에 담이 막게 되었습니까? 

15절에 보면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이 그들을 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성령이 없는 법조문으로 된 율법은 그 시각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집니다. 똑같은 법도 재판관에 따라서, 변호사에 따라서, 검사에 따라서 그 법의 해석과 적용이 달라집니다. 결국 법조문으로 된 율법은 나에게는 의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고 상대방에는 죄를 지적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내 시각에 따라서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니까 서로 적이 되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해서, 내가 신앙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그것이 내 의가 되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 화평케 하는 자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자가 됩니다. 

십자가로 담을 허물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율법으로 상대방을 보지 말고 십자가 앞에 내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봉사, 헌신, 기부, 예배, 다 무슨 말입니까? 나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희생하고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이 희생을 통해서 둘이 아닌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야 한 성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된 두 사람이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과도 화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결국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물고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교회- 담이 없는 건물 

 스가랴 2:4-5)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되 

  •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이제 구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게 될 하나님의 나라 
  • 성곽없는 성읍: 벽이 없는, 담이 없는, 누구나가 올 수 있는, 목마른 자들은 누구나가 올 수 있는 그 곳. 가난한 자, 억눌린 자, 병든자, 모든 죄인들이 거할 수 있는 처소 
  •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불로 둘러싼,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임재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이다. 
  •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원수가 서로 화목하고,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 
  • 사도: 시몬(열성당원) 과 마태 (세리, 매국노) 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툼이 없는 제자의 직을 수행함. 
  • 선지자: 남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요나와 같이 니느웨를 회개하라고 외치는 선지자.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툼이 없고, 원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믿음 안에서


그런 믿음이 모여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21절)- 성전은 계속해서 지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을 통해서 계속해서 담을 허물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화목, 화평을 선포하는 것이다. 

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고후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성경에 나타나 있는 화해의 이야기 

  • 창33:3,4에 야곱과 에서가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 창45:1-5에 요셉과 그의 형들이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단과 정통의 구분) 

이단은 자꾸 분리되려 한다.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정통은 화목하게 하는 자다. 무조건 화목하게 하는 것은 다원주의지만 십자가의 방법으로, 예수의 보혈로서, 희생하며, 헌신하고, 회개하며, 원수에게로 나아가는 것, 십자가의 은혜로 둘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정통이고, 복음이고, 십자가의 진리이다. 


2013년 마지막 달입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담이 있습니까? 

무너지지 않는 담으로 인해서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계속해서 걸림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그 분의 십자가의 피가 이미 모든 죄의 담, 불신의 담, 분열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분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평화의 사도가 되어서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직장에, 교회 공동체 안에 담을 헐고 평안으로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만이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땅과 우리 조국 대한 민국의 분열의 담, 불신의 담, 지역감정과 이념갈등, 남북과 좌우로 분열된 모든 담을 허물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내 안의 담을 무너뜨리고 내 가정의 담을 무너뜨리고, 내 교회의 담을 무너뜨리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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