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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 18-26절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적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은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성경은 그러한 영이신 하나님을 본 자들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주위에서도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등 그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Ish (인간) + 라흐 (보다) + (하나님, 하나님을 대면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긴 야곱에게 주신 이름이 이 "이스라엘"입니다. 그 뜻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되어 있지만 문자적인 이스라엘의 의미는 '하나님을 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해서 야곱이 본 것은 하나님 그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를 보고 겨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를 보고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고 하니까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온 모세입니다. 모세를 설명할 때에 성경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본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 33:11a)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

 

그런데 그 앞 절에 보면 모세가 대면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기둥"이었습니다

그리고 18절에 간절한 소망을 담아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이것은 하나님을 더 가까이, 친밀히, 자세히 보고자 하는 모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울 베푼다" 말씀하시며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라고 하면서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지날 때에 모세를 반석 틈에 두고 그의 등을 보이십니다. 등을 보였다고 번역된 이 구절은 하나님의 흔적을 남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석 위에 세워 하나님을 보게 한 것은 신약적 관점에서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흔적을 대한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하냐면 출애굽기 3429~33절에 보면 모세의 얼굴에도 밝은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두려워서 그의 얼굴을 쳐다 보지 못하여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반 백성들이 모세의 빛 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 여러 증언들을 살피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를 대면했거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나 빛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거나, 혹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대면한 것"을 말합니다

음성이라는 것은 "언어"를 통해 그 분과 대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이렇게 증언합니다

(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빌립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럼 믿겠습니다"하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냐면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반문합니다

 

  • 그러니까 하나님은 "첫 째, 영이시므로 우리가 볼 수 없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시기 위해서 때로는 천사로, 때로는 구름이나 빛 가운데서 음성으로, 언어로 다가오신다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신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접적인 통로를 거쳐서라도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들의 공통정인 반응은 무엇인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후에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놀라는 장면이나 

·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보좌와 주의 옷자락과 천사들을 보며 한 탄식 

(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         사도요한 

(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왜 하나님의 대면하여 본 자는 죽는다고 여겼을까? 왜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 자마다 두려워떨었을까요

그 분의 거룩함 앞에 비춰진 우리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그 분 앞에 대면하게 설 때에 그것이 음성이든, 흔적이든, 다른 사물을 통해서든 하나님을 대면한 자의 첫 일성은 두려움, 나로 죽게 되었다는 것, 나를 떠나소서...오늘 읽은 본문처럼

직접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못하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면서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 서 있었다고 전합니다

?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숨겨진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일어나는 사건... 중생

중생 할 때 함께 일어나는 사건...회개

그런데 그 회개가 그냥 내가 한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그런 회개가 아니라 성령께서 내 안에서 내 죄를 드러나게 하는 사건... 

내가 무심코 살아왔던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더럽고 무섭고 그리고 내 안에 가득했었는지....그런 것들이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내 입술을 통해서 낱낱이 고백되어 지는 것

나 뿐만 아니라 중생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성령의 역사 

내 안의 영이 본질적으로 탄식하게 되는 사건 

"내가 저지른 죄가 죽을 만큼의 죄구나. 아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구나..." 

 

시내산에서 음성으로 다가오신 말씀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을 통해서 언어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언어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영광의 증거들,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 가운데서 울려 퍼졌습니다

그 분의 임재가 드러나자 백성들은 두려워 멀리 떨어 졌고, 모세는 가까이 갔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자 모세를 통해서 듣겠다고 아우성칩니다. 직접 들으면 죽을것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직접 하나님을 보고자했던 백성들이 오히려 스스로 간접적으로만 하나님을 뵈올 것을 소원합니다

 

21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를 앞에 두고 상반된 두 반응을 전합니다

( 20: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장소를 흑암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빛이 아니라 흑암으로 표현했을까? 다가가면 갈수록 하나님은 신비로서 우리의 모든 감각과 생각과 이성을 벗어나시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밝게 빛나실 때도 있지만 어떨 땐 가까이 가면 갈 수록 더 모르겠을 때가 있습니다. 영성의 전통에서도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긍정신학과 부정신학, 빛의 신학과 구름의 신학 두갈래 전통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상반된 두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눈으로 보고, 만지고, 대면할 수 있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손으로 만져서 내가 지니고, 내 감각의 확실함 가운데 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비겨서 은이나 금이나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하는 것이라고 경계합니다

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일까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무엇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 

우상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왜? 숭배하기 위해서...그런데 그 숭배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Fan이냐 제자냐? 

우상하면 영어로는 idol- 우리 문화에서는 청소년 들이 좋아하는 가수...

일단 가수의 팬이 되면 청소년들은 그 가수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모든 노래를 듣고 따라부르며, 외우기도 합니다. 콘서트를 찾아가며,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집을 방문하여 그 얼굴을 보고자 합니다. 

온 집안에 그 사진을 붙여놓고 자기의 모든 정성을 쏟습니다. 

그것이 우상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늘 우상과 팬의 관계이지 일대 일의 인격적인 관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외워도 우리가 그 가수 자체를 닮을 수 없고, 그와 함께 살 수도 없고, 그와 동행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우상은 우상으로서 서 있는 것이고 우상의 팬은 그 우상을 위해 정성을 다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가까운 관계에 들어가려 하면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순한 팬으로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그 분과 함께 살라는 것입니다. 

그 분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분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팬을 넘어 자녀가 되고, 신부가 되고,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가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분명 역사상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성육하신 하나님으로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지만 그 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역사상의 예수를 바라보려 하지 않고 자기들이 꾸며내는 예수, 백인이며, 잘생긴, 훤칠한 예수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성경의 계시와는 전혀다른 예수의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말씀조차도 그것이 물건으로 우상이 되지 않도록 돌판을 치우고, 원본을 없애고, 오직 성령으로 인한 말씀의 현존을 사람들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그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꾸만 영이 아닌 물질로 만들려고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황금을 가지고 화려한 어떤 것을 통해 하나님처럼 만들려고 하고, 자신이 하나님이라 하는 사람들을 더욱 붙잡으려고 합니다

 

이만희 같은 사람, 문선명 같은 사람....4천쌍 합동결혼)

자신이 하나님, 자칭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붙드려고 합니다

말두 안되는 사람이 자기를 예수라 하는 데도 볼 수 있는 하나님을 붙잡으려 하는 자들은 그런 말두 안되는 자를 하나님으로 받듭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은 무시하고 외면하고 냉대합니다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를 비겨서 나를 우상으로 만들지 말고

흙으로 제단을 쌓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4절과 25절에 보면 제사를 드릴 제단을 쌓을 때는, 토단을 쌓거나, 다듬지 않는 돌로 쌓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토단은 흙으로 만든 제단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너 자신이 흙과 같은 미천한 존재임을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듬지 않는 돌로 제단을 쌓으라는 말씀 역시도, 하나님 앞에 의식적으로 꾸미지 솔직한 모습으로 나와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6절에는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단을 만들 때 층계를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층계는 인간의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체가 드러난다는 말은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오려 하면 그것이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이 될거라는 말씀입니다. 즉 인간의 교만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십니다.

 

·         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가

(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바로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또 하나님이 너희를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게 하심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여기에 시험한다는 말은 넘어트린다는 말이 아니라 단련시키고 훈련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범죄하지 않도록 단련시킨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두려움 가운데 떨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함게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냐면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분이지만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말씀으로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현존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숭배를 받으시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십니다. 우리에게 팬십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fellowship, family-ship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분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