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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질서와 안식 (창 1:1-2; 2:2-3)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 처음에, 본래, 원래.....우리 인간 세상, 온 우주의 대 전제

그가 만드셨다. 


문집사님이 잘 알다시피 교회의 꽃꽂이 및 화분관리를 거의 혼자 도맡아 합니다. 

월요일날 지방회 목사님들이 오실 때마다 현관 입구의 화분이며 꽃, 그리고 성전의 꽃꽂이를 칭찬합니다. 

한국을 가면서 그 화분 관리를 저의 아내에게 맡겼습니다. 맡기면서 어떤 화분은 일주일에 한번, 어떤 화분은 일주일에 몇번 이런식으로 화분마다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메뉴얼대로 하는대도 화분이 손을 타는지 많이 시들고 죽고 그럽니다. 

아내 뿐만 아니라 우리 이수연 집사님과 권사님들 까지 나서서 화분에 관심을 주려 하는데 도무지 잘 살지를 않았습니다. 

물을 많이 줘서 그런가, 아니면 적게 줘서 그런가.... 토요일날 청소할 때 보면 막 토의도 합니다. 


문집사님이 와서 화분을 딱 보더니 날이 더워서 그런거야. 이 땐 물을 더 주었어야해...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늘 관리하는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식물이든 처음부터 화분으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 어느 지역, 어느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화분에 옮겨서 키우는 것입니다. 조금만 물을 많이 줘도, 혹은 적게 주어도 꽃이 죽거나 마르는데, 원래 살고 있는 그 지역에서 사는 식물들은 각자가 살기에 알맞도록 태양이 비취고, 비가 와서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문집사님도 꽃을 잘 가꾸지만 하나님의 관리는 이토록 기가 막힌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달라 붙여서 화분하나 관리하기가 이토록 힘이 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데, 하나님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식물들이 살기에 알맞은 비와 햇빛을 공급하십니다. 

그야말로 전능자가 아니면 관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창조 이전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 1:2A) 


혼돈이라는 것은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kaos로, 어떤 성경에서는 formless로 번역했습니다. 

뒤엉켜 있다는 것입니다. 무질서 해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어도 물질서 하고 뒤섞여 있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혼돈은 곧 공허함,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질서가 잡혀 있지 않는 가정은 없는 가정의 역할을 못합니다. 

질서가 잡혀있지 않는 삶은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흑암의 깊음 입니다. 흑암이 깊다는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불안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시기 전, 말씀 하시기 전 세상의 모습은 이같이 무질서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만이 가득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창조가 무엇이냐, 무질서 하던 것이 질서 있게 만들어 지고, 아무런 열매 없는, 의미 없는 삶이 의미를 발견하고 목적을 찾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기의 삶의 재료가 많아도, 물질이 많고, 학식이 많고, 건강이 있어도 무질서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안한 것이고, 하나님의 손길 아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은 삶이 정리가 되고, 질서가 잡히며, 의미있고 열매 있는 삶을 살고, 평안 중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읽으면 그래서 우리 삶의 질서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자 첫째 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입니다. 흑암만 가득하던 삶에 빛을 창조하심으로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누십니다.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 가운데 빛을 주십니다. 소망을 주십니다. 


둘째 날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물과 물을 수직으로 나누어서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십니다. 그리고 궁창 위의 물을 하늘이라 부르십니다. 

 

셋째 날 하신 일은 땅의 물을 나누어서 바다와 육지로 나누십니다.  둘째 날이 물을 위 아래로 나누는 것이라면, 셋째날은 물을 수평으로 펴서 땅과 육지로 나누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율법은 다름아닌 정결예식이라 합니다. 이 목적은 거룩하라는 것인데 거룩하라는 것은 속된 것으로 부터 나뉘어서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즉 거룩은 곧 구별되고 분리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넷째날 하나님이 하신 일은 첫째날 구별하신 어둠과 빛에 해와 달과 별을 보내신 일입니다. 그래서 빛이 주관하는 낮엔 해를 두어 낮이라 하시고 밤에는 달과 별을 두어 질서를 만드십니다. 


다섯째날 하신 일은 하늘과 땅의 물에 새와 물고기를 보내사 하늘의 물에는 새를, 땅의 물에는 물고기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여섯째 하신 일은 이제 땅의 물에는 이미 물고기가 살므로 육지에서 살아가도록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날 부터 셋째 날까지 어둠과 빛을 나뉘게 하시고,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을 나뉘게 하시고, 땅과 육지를 나뉘게 하신 뒤에,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각각 나뉘어진 공간에 살아가도록, 각각의 창조물들을 파송하신 것이지요. 이것이 창조의 이야기입니다. 첫째 부터 셋째 날까지 나눔과 분리를 통해서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은 각각의 자리마다 있어야 할 것들을 있게 하셔서 그것을 보시기 좋았다, 곧 복이라 명하십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곧 복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나뉘고 분리하게 하신 다음에 그 다음에는 각각 나뉘어진 공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의 열매인 창조물들고 채워나가는 것,그래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채워 나가는 것, 이것이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온전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 안식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곧 거룩하고 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안식을 깨뜨리고 다시금 우리 삶을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몰아 넣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1. 아담과 하와

하나님이 구별하신 땅, 에덴 동산에서,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파송받아 하나님과 함께 평안을 누리던 아담과 하와에게 뱀이 접근합니다. 

그러면서 선악과를 먹게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별을 없앱니다. 

구별이 없어지니까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에덴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에덴에서 쫓겨나 일을 하는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2. 가인 

가인이 마음에 죄를 품으니까 그의 마음에 선과 악의 구분이 없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항변하면서 마땅히 해야할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그결과 안식을 잃어버리고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다시금 혼돈과 공허한 삶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3. 바벨탑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인간이 자기 이름을 내자고 모이니까 그들의 마음에 빛과 어둠의 구분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벗어나 하나님께로 오르고자 바벨탑을 짓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언어가 혼잡하게 되고 따라서 언어에 따라 혼잡하게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니까 다시금 혼돈과 공허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혼돈과 공허한 삶, 흑암이 가득한 삶을 그냥 외면치 않으십니다. 

다시금 아브라함을 택해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마치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듯, 궁창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뉘게 하듯, 그리고 땅과 육지를 나뉘게 하듯, 내가 혼란과 공허함 속에서 머물고 있는 곳에서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에 가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명한 땅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그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비로서 참 안식을 얻습니다. 


애굽에서 뒤섞여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애굽에서의 삶은 어떻습니까?  질서가 없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열매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공허한 삶입니다. 종ㅅ살이하는 인생에 안식이란 없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부터 분리해 내십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반복되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그리고 홍해를 통해 애굽사람들은 완전히 혼돈에 빠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동행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잡히고, 제도가 생기고,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주신 것이다. 


출애굽에서 안식의 의미로 주신 것이 곧 성막이다. 성전이다. 이 곳에서 영원히 너희와 내가 함께 할 것이다는 안식이 약속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는 무엇인가? 


혼돈스럽고, 공허하며, 두려움이 가득한 삶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살면서 내가 떠나야 할 곳, 떠나야 할 행동, 떠나야 할 생각은 무엇인가? 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거룩하게 분리한 그 장소, 그 행동, 그 생각 속에 무엇을 채울까?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품어야 할 생각, 내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들은 무엇일까? 를 말씀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참 안식을 약속하신다. 


신앙생활은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다. 

사탄은 무엇인가? 죄는 무엇인가? 

우리 삶에 질서를 깨뜨려서 혼돈스럽게 하고, 공허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그러한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서 떠나 

마땅히 거해야 할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신앙은 곧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다. 

떠나야 할 대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머물르라 하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떠남이 없는 신앙, 비움이 없는 신앙은 형식에 젖은 자기 만족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향하지 않는 신앙은 정체된 신앙이다. 

떠나고 머무르고 비우고 채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고 비로서 참 안식을 누리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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