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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전과 후 (창세기 1장 1-3절) 


지난 주 인가요? 박성진 교수라는 분이 중소 벤처 기업부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자격 불합격으로 의견이 모아져 결국 후보를 자진 사퇴를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불합격으로 판정된 이유가 무엇이었냐 하면 그가 과학기술적 사고를 바탕으로 기업들을 선도해야할 중소기업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창조과학 신봉자이자 적극적인 활동가이기 때문이다는 이유였습니다. 

창조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나자 박성진 후보자는 "나는 창조론을 믿는 것이지 창조 과학을 믿는 것이 아니다"고 변명을 했지만 그는 창조과학회에서 이사까지 역임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력이 소개되면서 자신의 이력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고 믿느냐?"라는 질문에 지구나이는 지식적인 나이와 신앙적인 나이가 다르다고 설명하면서 지식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신앙적으로 믿는다는 답변을 해서 주위를 또한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창조론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라는 말들을 하거나 기독교 전체를 폄화하는 말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금을 내는 것을 연기해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이나 교회의 성명까지 더해져 기독교 인은 국회의원을 시켜서는 안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적인 관심이 되는 이러한 논란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혹은 변호하거나 해야할 교회들이 이번 사건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론과 창조과학이 어떻게 다른지, 지구 6000년천 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무엇인지...어느 누구도 이번 논란에 끼어 들려 하지 않습니다. 


창조론과 창조과학은 다릅니다. 창조론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창세기 1장 1절의 선언과 성경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만 창조과학은 성경은 진리이므로 성경의 모든 내용은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입증가능의 문제입니다. 

위키피디아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창조과학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창조과학은 통일교와 제7일 안식교에서 기원한, 극보수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적 신앙 혹은 근본주의 이슬람 신앙에 기초하여 과학을 받아들이는 종교적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사례이자 사이비과학이며, 세부 분류로는 쓰레기과학에 해당한다.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 할만한 학문적 가치나 과학적 방법을 거친 논문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보통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축자영감설에 입각하여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가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주장은 극보수주의계열의 근본주의를 제외하고 기독교전반에서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신앙입니다. 그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라는 것은 비물질, 비형상, 그래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과학적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신앙적, 혹은 철학적으로는 다가갈 수 있을지 몰라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너 귀신을 믿어?" 하면 믿는 사람도 있고 안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귀신을 믿는 사람은 귀신을 체험했거나,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귀신의 역사, 무당이 굿하는 모습이라던가 점 보았던 일이 사실이 된다던가 하는 간접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귀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영적인 존재이기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증거하기에 창조를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것이지요. 


진리- 신앙적인 진리는 과학적으로도 진리여야 한다? 

꽃씨를 키우는 과학자의 시각과 시인의 시각, 언어의 차이. 과학자는 진리이고 시인은 거짓을 이야기하는가? 아닙니다. 둘 다 자기의 입장에서의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학자의 시각에서 시인의 표현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고, 시인의 입장에서 과학자들의 표현은 전혀 미학적인, 심미적인 가치가 없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입장,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은혜 받았어...성령께서 역사하셨어...하는데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입니까?


지구 6천년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지구의 나이가 6000천년이라고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구 6000년설의 근거는 창세기나 마태복음 1장, 그 외 성경 전반에 나와있는 족보를 따져 보니까 6000년쯤 되더라는 성경의 족보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일 동안의 창조에 대해서도 이 6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아담과 하와를 해석하면서도 이를 구체적인 개인으로 볼 것인가? 왜? 아담의 뜻이 남자, 혹은 인류, 하와의 뜻이 여자의 의미기 때문에 이것은 구체적인 개인이라기 보다는 인류를 설명한 언어이다는 주장이 제기 되기 때문이지요. 성경에 나와 있는 족보도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설명하기 위한 선택적인 족보이지 모든 세대를 포함한 족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문맥 안에 감추어진, 생략되어 있는 내용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신 책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인간에게 다가오시고,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갈지를 드러낸 책입니다. 

어느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에 흐르는 진심을 읽으려고 하지 않고 말 한 마디 마다 그 말을 증명해봐라. 과학적으로 증명해 봐라. 한다면 그 편지의 본심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한국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합니까? 

몇몇의 대형 교회들이 창조과학회를 뒷받침하며 후원하고 있고, 그런 교회들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열며, 마치 한국 교회 전체가 창조과학회를 지지하는 것처럼 활동하다가 할 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나마 저도 여기에 관심이 전혀 없다가 작년에 신앙과 과학 세미나를 통해 이런 내용들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창세기는 영어로는 Genesis, 첫 시작, 기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는 우주의 시작, 인류의 시작, 가정의 시작, 죄의 시작, 확장(죄-> 살인 -> 심판), 문명의 시작, 예배의 시작, 믿음의 시작, 이스라엘의 시작이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는 전체 50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부터 11장까지는 그 중에서도 원역사라고 하고, 12부터는 아브라함이 나오면서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기 위한 족장사가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읽은 창세기 1장 1-3절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의 전후가 설명이 됩니다. 


  1. 창조 이전의 세계 (혼돈, 카오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 1:2A) 


혼돈이라는 것은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kaos로, 어떤 성경에서는 formless로 번역했습니다. 

뒤엉켜 있다는 것입니다. 무질서 해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허하다는 것은 "empty" 하다, 즉 nothing,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흘려 가면서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말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혼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있긴 있는데, 아주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있어서 무질서 하다는 것이고, 공허라는 것은 아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창조 이전의 세계를 묘사하면서 혼돈하고 공허했다고 설명합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창조: "ex nihilo" create -> made from nothing이냐 made from something이냐를 두고의 논쟁. 

성경에서 창조는 하나님께만 쓰는 단어. 왜? 그는 없는 것에서부터 만들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데 한편으로 인간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흙이라는 재료로서 사람을 지으심... 그런데 이 때도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기록.... 그러니까 두 가지 관점이 다 소개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어도 물질서 하고 뒤섞여 있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혼돈은 곧 공허함,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질서가 잡혀 있지 않는 가정은 없는 가정의 역할을 못합니다. 

질서가 잡혀있지 않는 삶은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흑암의 깊음 입니다. 흑암이 깊다는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불안함이라는 것입니다. 

거식증, 안먹어도 늘 배불러 있는 것 같은 포만감. 

폭식증, 먹어도 먹어도 늘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것은 무언가 뻥 뚫려 있다....알 수 없는 흑암이 중간에 가득 채워져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손을 대시기 전, 말씀 하시기 전 세상의 모습은 이같이 무질서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만이 가득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창조가 무엇이냐, 무질서 하던 것이 질서 있게 만들어 지고, 아무런 열매 없는, 의미 없는 삶이 의미를 발견하고 목적을 찾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기의 삶의 재료가 많아도, 물질이 많고, 학식이 많고, 건강이 있어도 무질서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안한 것이고, 하나님의 손길 아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은 삶이 정리가 되고, 질서가 잡히며, 의미있

고 열매 있는 삶을 살고, 평안 중에 거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기의 삶의 재료가 많아도, 물질이 많고, 학식이 많고, 건강이 있어도 무질서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안한 것이고, 하나님의 손길 아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은 삶이 정리가 되고, 질서가 잡히며, 의미있고 열매 있는 삶을 살고, 평안 중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읽으면 그래서 우리 삶의 질서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 날: 빛과 어둠 

둘째 날: 수직적 구분 - 물과 물을 수직으로 나누어서 궁창위의 물(하늘) 과 궁창 아래의 물(바다)  

셋째 날: 수평적 구분 - 땅의 물을 나누어서 바다와 육지 


넷째날- 태양과 달과 별을 첫째날의 장소에

다섯째 날 - 하늘 위의 물에 새를 궁창 아래의 물에 물고기를 

여섯째 날 - 육지에 동물과 마지막으로 사람을.... 


그러니까 첫째 날 부터 셋째 날까지 어둠과 빛을 나뉘게 하시고,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을 나뉘게 하시고, 땅과 육지를 나뉘게 하신 뒤에,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각각 나뉘어진 공간에 살아가도록, 각각의 창조물들을 파송하신 것이지요. 이것이 창조의 이야기입니다. 첫째 부터 셋째 날까지 나눔과 분리를 통해서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은 각각의 자리마다 있어야 할 것들을 있게 하셔서 그것을 보시기 좋았다, 곧 복이라 명하십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곧 복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나뉘고 분리하게 하신 다음에 그 다음에는 각각 나뉘어진 공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의 열매인 창조물들고 채워나가는 것,그래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채워 나가는 것, 이것이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온전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 안식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곧 거룩하고 복된 것입니다.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율법은 다름아닌 정결예식이라 합니다. 이 목적은 거룩하라는 것인데 거룩하라는 것은 속된 것으로 부터 나뉘어서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즉 거룩은 곧 구별되고 분리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죄 

아담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분을 없앰. (마땅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게 함)  

가인 - 선악의 구분을 없앰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함) 

바벨탑 - 하늘과 땅의 경계를 없앰. (언어가 혼잡) -> 혼돈과 공허...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혼돈과 공허한 삶, 흑암이 가득한 삶을 그냥 외면치 않으십니다. 

다시금 아브라함을 택해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마치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듯, 궁창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뉘게 하듯, 그리고 땅과 육지를 나뉘게 하듯, 내가 혼란과 공허함 속에서 머물고 있는 곳에서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에 가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명한 땅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그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비로서 참 안식을 얻습니다. 


애굽에서 뒤섞여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애굽에서의 삶은 어떻습니까?  질서가 없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열매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공허한 삶입니다. 종ㅅ살이하는 인생에 안식이란 없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부터 분리해 내십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반복되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그리고 홍해를 통해 애굽사람들은 완전히 혼돈에 빠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동행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잡히고, 제도가 생기고,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주신 것입니다. 

혼돈과 공허가 우리 삶을 채울 때마다 주신 것 - 말씀... 

창조의 말씀


빛이 있으라. 

선악과를 먹지 말라. 

방주를 지어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거듭나라. 

성령을 받으라. 

나를 믿어라... 


출애굽에서 안식의 의미로 주신 것이 곧 성막이다. 성전이다. 이 곳에서 영원히 너희와 내가 함께 할 것이다는 안식이 약속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는 무엇인가? 


혼돈스럽고, 공허하며, 두려움이 가득한 삶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살면서 내가 떠나야 할 곳, 떠나야 할 행동, 떠나야 할 생각은 무엇인가? 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거룩하게 분리한 그 장소, 그 행동, 그 생각 속에 무엇을 채울까?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품어야 할 생각, 내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들은 무엇일까? 를 말씀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참 안식을 약속하신다. 


신앙생활은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다. 

사탄은 무엇인가? 죄는 무엇인가? 

우리 삶에 질서를 깨뜨려서 혼돈스럽게 하고, 공허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그러한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서 떠나 

마땅히 거해야 할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신앙은 곧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다. 

떠나야 할 대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머물르라 하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떠남이 없는 신앙, 비움이 없는 신앙은 형식에 젖은 자기 만족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향하지 않는 신앙은 정체된 신앙이다. 

떠나고 머무르고 비우고 채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고 비로서 참 안식을 누리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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