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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12-18절 (참 지혜가 무엇이냐?) 


[전 1:12-전 1:18]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흔히 솔로몬 하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주셔서 부와 명예와 권세를 다 가졌지만 그것을 낭비하고 그릇 사용하여 인생에서 실패한 자로서 간단히 생각해버리기 쉽습니다. 솔로몬 하면 생각하는 것은 300명의 후궁과 700여명의 첩, 총 1000여명의 아내를 두어 삼손이 들릴라라는 이방여인에 의해서 그의 능력을 빼앗긴 것처럼 1000여명의 이방여인들과 그들이 들여온 우상들로 그의 지혜조차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떤 설교가들은 솔로몬을 탕자의 비유에서의 둘째 아들에 빗대기도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소유인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흥청 망청 써버리고 이젠 뼈져린 실패와 후회 속에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탕자의 마음과 전도서의 솔로몬의 마음을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가 전쟁보다는 혼인을 통한 외교를 통해 산당이 지어지고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지역에 만연해 진 것은 솔로몬의 큰 실책이고 잘못된 것이지만 그가 여인들의 품 안에서 국가의 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살았다는 것은 역사적인 기록을 보나 열왕기상이나 전도서기록을 보아도 잘못된 이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도서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여인들의 치마폭 속에서 허랑방탕하게 삶을 산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전도서를 계속적으로 나누면 알겠지만 그는 정말 부지런하게 그에게 주어진 지혜를 통해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기를 원했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도, 사람들에게도 그에게 주어진 지혜의 결과들을 정리하고 알리는 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폈다"고 증거합니다. 

그는 적어도 자기 능력을 믿고 대충 살다간 사람은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혜를 통해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더 알려고, 더 남기려고 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그가 생각하는 지혜와 나중에 깨닫게 된 지혜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우여곡절 끝에 왕 위에 오른 자입니다. 

그는 서열로서 보면 절대 왕 위에 오를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열 아홉 명의 아들 중에 열 번째의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다가 압살롬에게 죽고 압살롬은 다윗을 반역하다가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압살롬 밑의 아도니야는 다윗이 죽은 뒤 왕이 되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솔로몬에 의해 죽게 됩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잘 알듯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로부터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밧세바의 아들 중에서도 솔로몬 위로 시므아, 소밥, 나단이라는 세 명의 형들이 더 있었습니다. 

그는 전체 아들들 중에서도, 밧세바의 아들들 중에서도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자였지만 역시 인간적인 서열이 아니라 중심으로 인정받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다윗의 후계자가 됩니다. 


그러니 그가 왕이 될 때에 그의 마음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이른바 일천번제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나타나 그에게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솔로몬이 구한 것이 지혜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 말씀하면 듣는 마음입니다.  

[왕상 3:7-3:9]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나서야 될 때와 들어갈 때를 알지 못합니다. 분별력이 없습니다)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 듣는 마음-왜? 남의 얘기 안들으려 하기 때문...또 말하는 표면 뒤에 숨겨진 의도를, 그 사람의 마음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 우리의 말은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수하기를,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를....

지금 솔로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의 왕권의 확립. 그는 신분적으로 결합이 있고, 어리기 때문...

장수한다는 것은 그가 왕위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자기의 안전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한다면 그가 당연히 구해야 할 것은 자기 안전과 보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구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그들을 잘 치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는 권세를 구한 것도, 힘을 구한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백성들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분별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이 기도를 들으시고 무엇이라 하시냐면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 3:10) 주를 기쁘시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자기의 안전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어린 아이라면서 겸손한 가운데 백성을 위한 마음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이 이야기를 금도끼 은도끼 전설처럼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정직하게 쇠도끼를 구하니까 금도끼 은도끼도 받은 것처럼 지혜를 구하면 부귀영화도 따라오는 구나...철저히 자기 이익, 계산적으로 지혜를 구할 때가 많습니다. 


ex) 어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어릴적부터 기도합니다. 솔로몬의 기사를 읽고 다른 것 구하지 않고 오직 지혜 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셨는지 아이가 정말 지혜롭게 컸습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남다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정말 무엇을 생각하는지, 의도하는지를 척척 꾑니다. 그런데 보니까 너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니까...항상 피곤합니다. 늘 손해보고 희생합니다. 정말 지혜 달라했더니 지혜만 주셨습니다. 좀 자기 잇속도 차리고 성공좀 했으면 좋겠는데 밤낮 남의 얘기 들어주다가 자기 것은 다 놓쳐 버립니다.  어머니가 보다 못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혹시 잊으신 것 없으십니까? 지혜 달라 했으면 부귀 영화도 같이 주셔야지 왜 반만 주십니까?" 


신앙 생활 오래 해도 심보가 못나면 안됩니다. 사람이 먼저 되야 합니다. 자꾸 자기 이익, 욕심만 채우려 하니까 신앙도 안 성숙하고 교회도 비난 받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백성들을 잘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한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가장 첫째는 사랑인데 사랑은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헤어지고 이혼합니까? 결국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갈라섭니다.

세상의 사랑이 왜 온전하지 못한 사랑입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좋아야 하고, 자기가 만족해야 하고....성경은 그런 것을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왕상 4:29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듣는 마음, 분별력을 구한 솔로몬에게 응답으로 주신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를 구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구했는데 주신 것이 지혜요, 넓은 마음입니다. 

 

 이 때 넓은 마음으로 번역된 말은 이해심입니다. 영어로는 "Breath of Understanding"입니다. 

 무엇이든 보고나 듣고나 읽으면 이해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결과 그는 잠언 삼천 가지, 천 다섯 편의 노래...

왕상 4장 33절에 보면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그러니까 그에게 지혜를 주셨는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듣는 마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젊은 마음, 이해심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에게 다가온 지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이해심으로 인해 솔로몬의 왕국은 당시 팔레스틴 지역의 최강국이 됩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의 지혜를 구합니다.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읽을 때마다 다 이해되고, 사람들이 말을 하면 그 속 의도를 정확히 꽤 뚫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여러분, 행복하시겠습니까? 

영적 능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면 그의 문제가 느껴지고, 신유의 능력이 있어서 그의 아픔이, 고통이 느껴지신다면 여러분 행복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은 이 지혜를 가지고 나라가 부해지고 그도 지상 최대의 부귀 영화를 누렸지만...

"이는 괴로운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것을 주신 것은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라고 탄식합니다. 

쉴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 한분이 탄식을 하는데 어릴적 부터 하도 부모님들이 의대 의대 해서 의사가 되었는데, 의사 마누라는 돈 잘 벌어줘서 좋을지 모르지만 의사 당사나는 아주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유명해지면 질수록 몇달치 스케줄이 가득 차있고, 집에서 쉬다가도 급한 환자 오면 나가야 하고...쉬고 싶어도 대기하고 있는 환자 생각하면 한 명이라도 더 수술해야 하고...


더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고칠 수 있는 병 보다 여전히 못 고치는 병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진단이 나와도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을 만날 때는 의사로서 정말 절망스럽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고백도 그와 같습니다. 

"구부러진 것이 보여도 내 힘으로 펼 수 없고 모자란 것을 채울 수도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이해하고 알아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세상 이치에 바르고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이 있어도 결론은 헛되다. 

지혜가 많으면 번되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도 더 많아진다. 

아얘 모르면 고민을 안 할 텐데...알아서 더 고민되고....

솔로몬의 한탄이 느껴지십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잘못된 것입니까? 

지혜를 구하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가 읽은 12절에서 18절에서 솔로몬은 자기 지혜의 대상을 철저히 하늘 아래, 해 아래의 세계에 두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대상은 오직 이 세상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의 것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늘로 부터 받은 능력, 은혜, 믿음이 많아도 이 땅에만 소망 두고 관심 두고 살면 결과는 결국 헛됩니다. 

앞으로 그 헛됨의 내용을 더 자세히 살피겠지만...

조금만 더 가지면, 더 배우면, 더 커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만족함이, 평안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지혜의 핵심을 깨닫고 쓴 것이 바로 잠언입니다. 

여러분, 물론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이 이 세상에만 맞추어져 있다면 남는 것은 곧 허무이고 바람입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결국 이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결론 

너는 청년의 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13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결국 지혜의 시작과 근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얻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세상의 힘을 다 얻었지만 그의 삶은 행복함이 없었습니다. 

왜? 세상의 칭찬과 영광은 얻었어도 너무 바쁘고 고단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참회록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지혜의 허무함을 보여줍니다.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영화로운 자녀가 됩니다. 무엇이 참 지혜입니까? 이해 하면 좋지만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까? 솔로몬의 삶이 더 행복했습니까? 

다윗은 솔로몬보다 지혜가 없을지 몰랐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듣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더 큰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점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참 지혜입니까?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분을 경외하는 것... 이것이 참 지혜요, 생명인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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