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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후에 누리는 영광 (창 50:15-21) 


다른 사람으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다든지, 나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내고 다닌다든지, 인생의 고난 가운데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 관계로 인한 고난입니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불평을 들어야 했고,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욥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온 친구들 때문에 괴로와했고, 아벨은 자신의 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람들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인해 받는 고난은 곧 삶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요셉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야곱의 열 두 형제들 가운데 끝에서 두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특히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요셉을 편애했고 야곱의 편애는 형제들의 시기를 불러왔습니다. 급기야 형제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떨어뜨려 죽게 하려하다가 상인들에 의해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형들에 의해 요셉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땅에, 그것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주인의 아내의 요혹을 피하여다가 강간범으로 몰려 감옥에까지 가게 됩니다. 

이런 인생이 실제적으로 주어진다면 부당한 시련앞에 절망하고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상처 투성이의 삶입니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이 대개의 인생일 것입니다. 

그런데 먼 훗날 요셉이 형들을 만나 이야기 할 때를 보면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 50: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쉽게 표현하면 이런 말입니다. "형님들은 악의를 가지고 그 일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어 내 삶과 형님들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삶에 유익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어떻게 요셉은 어렵고 힘든 상처 투성이의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뭐 쉽게 한 마디로 말하면 그의 신앙이 그를 지켰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신앙이 있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지요.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상황들을 뎐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첫 째, 요셉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을 보시며, 우리를 보살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도와달라고, 구해 달라고, 그 기도의 이면에는 "하나님, 왜 내 인생을 보시지 않습니까? 왜 날 보살펴 주시지 않습니까?"하는 생각이 스며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이야기에는 그가 중대한 위기를 맞은 후에나 고난을 당한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구절이 반복해서 등장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이 구절이 요셉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다섯번이나 본문에 등장합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을 때에도 하난미은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옳은 것을 선택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억지로 그 분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그릇된 길로 가다가 일을 일으키고 나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탓인양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악과를 먹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도, 왜 우리에게 선악과를 주셔서, 왜 우리를 광야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왜 하필이면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게 하셔서...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셔서.... 

하나님은 그 분이 하시지도 않은 많은 일에 대해 비난을 받으십니다. 

어떤 대형 교회 목사님이 세월호 사건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는데 마찬가지로 우리는 커다란 사건이나 비극, 문제나 위기가 닥치면 이런 말들을 하면서 영적인 사람인 양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야.." 때론 그런 믿음 속에는 마치 하나님이 인간의 고난을 계획하시면서 즐거워하는 분으로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라고 기도를 하지요. 그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는 완전하게 이루어 지지만 땅에서는 때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지만 또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로 선택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제한하시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때론 나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잘못된 선택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당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의도적으로 요셉을 헤치려고 선택합니다. 그것은 죄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막지 않으시고 허용하십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결과를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실수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저지른 모든 죄악을 취하여 그것들을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때로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때로 나를 괴롭히는 자들의 의도적인 죄악으로 이곳 저곳에서 패배하고 다닐 때에도 하나님은 결국 이기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쁜 상황들을 취하시어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에도 최종적인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거의 죽을 뻔했고, 노예로 팔려갔고, 강간범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인생은 점점 더 밑으로 향해서 추락해 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은 그 비극들을 주관하셔서 어느 순간에서부터 방향을 바꾸시고 그 모든 것들로부터 유익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바로의 오른팔과 같은 사람을 사귑니다. 그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 요셉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늦었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때에 그를 불러 바로의 앞에 세웁니다. 바로와의 한 번의 만남으로 인해 그는 애굽의 총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 뿐만 아니라 인근 모든 나라에까지 기근의 고통으로부터 도움을 주는 돕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현재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두 보시지만 또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우리의 자유 의지를 막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제한하지 않고 역사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릴 때, 그분은 우리의 의도적이지 않은 잘못된 선택, 혹은 나를 괴롭히는 자들의 의도적인 죄들까지도 사용하여 최종적으로 유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형님들은 나를 헤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선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요셉이 비록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도 그 모든 역경을 끝까지 견뎌냈기 때문입니다. 


첫째,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마라. 

어쩌면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지금 이 순간 어려움 가운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환경의 희생양이 되고 힘겨운 처지에 놓여있을 수도 있습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잘못된 선택의결과를 치루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첫 번째 주의할 것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나 힘겨운 일이 닥쳐도 자기 연민에 빠지면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드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자존심이 밑바닥에 닿을 때면 자신을 비난하고 깎아내려 결국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하게 합니다. 

요셉은 자신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한 위기는 자기 잘못 때문이 아니었고, 그저 자기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고 이겨내기 위해 힘썼습니다. 

만약 지금 시련을 만나 의기소침해진 마음으로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 걸까?"하고 묻고 있다면 모든 결정을 내려 두고 말씀과 기도로 그 상황을 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기 연민에 빠져 낙심하고 있으면 "떠나고 싶고, 바꾸고 싶고, 피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한 감정은 신뢰할 수 없는 감정이다. 초점은 흐려지고 생각은 비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요셉은 자신의 삶이 전체적으로 잘못되고 있을 때에도 절대로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위치와 형들의 위치가 바뀌어 형들이 요셉에게 곡식을 구하러 왔을 때에도 요셉은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을 용서했고,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요셉은 모든 판단과 심판을 주님께 맡겼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을 믿으며 자신의 영적 생활을 지속해 나갔다. 


우리는 일이 잘못되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분인 주님을 멀리하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게 허락하셨나요?" 하며 마치 하나님의 잘못인양 반기를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 이 문제를 맡겨 주세요."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 믿는 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롼경을 사용할 때, 하나님은 그 환경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개발시키신다. 그 분은 십자가를 부활로 변화시키기를 기뻐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힘의 근원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모든 것이 선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며 하나님의 뜻이 그로 인해 지연되거나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쁜 것들을 선하게 바꾸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그것을 취하셔서 우리 삶 가운데 선한 것으로 나타나도록 사용하신다. 그래서 더 큰 영광을 드러내신다. 죽음인 줄 알았던 십자가가 영광의 부활임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겪는 문제보다 큰 분이시다.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것은 힘들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뒤돌아 보게 될 때에 우리의 눈이 열리고 하나님이 그 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게 하실 것이다. 그 상황이 결국 나에게 이렇게 유익했음을 보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요셉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나에게 선하게 바꾸셨소. 당신을 나르 무너뜨리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나를 발전시켰습니다. 나를 더 강하고 성숙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 분이 항상 나를 폭풍 가운데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 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신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꼐 맡기고 그 분께 내 삶에 일하시도록 내어 드릴 때에 하나님은 그 모든 일들을 선하게 바꾸신다. 


세월호: 원래 어떤 거친 바다에서도 좌초되지 않고 평형을 복원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답니다. 

그 설계의 핵심은 선박 밑바닥의 평형수 입니다. 이 평형수가 가득 채워져 있으면 배는 항상 평형을 유지하고 배가 잠시 기울다라도 오뚝이처럼 따시 평형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세월호는 이 다른 화물들을 싣기 위해 이 평형수를 팍 줄였답니다. 결국 돈이 되는 것을 추구하다가 평형을 잃고 좌초한 것이지요.  

내 몸의 평형수가 떨어지면 우리 또한 좌초하게 됩니다. 병은 다름 아닌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병균이 침입했을 때에 몸이 저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짜증이 나고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건강하면, 몸의 평형수가 가득 채워져 있으면 무엇이 와도, 무엇을 해도 문제가 되자 읺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평형수를 채우시겠습니까? 여러분의 평형수는 무엇입니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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