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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너머 부활로 (창세기 22장 1-12절)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치는 사건 - 아브라함 신앙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사건을 두고서야 비로서 아브라함의 본심, 중심, 진실을 알았다! 


아브라함을 처음에 부르실 때에 하신 약속- 네가 복이 되리라. 

복의 내용 : 땅과 자손: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의 기본 전제- 자손, 자녀


그 다음부터의 믿음의 여정 -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아브라함의 시행착오와 하나님의 역사 

15장 - 엘리에셀 

1절)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 너의 상급이니이다. (나는 보호자요 공급자이다) 

2절: 주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 다른 것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자식이 없습니다. 

3절: 주께서 나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4절: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 예수가 하나님의 상속자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거듭났기 때문이다. 


16장 - 하갈 

  • "네 몸에서 날 자" 를 이루기 위한 인간적인 꼼 수 
  •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네 몸은 아브라함 하나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을 말한다. 
  • 결국 하갈로 말미암아 역사 상 가장 길고 깊은 갈등의 원인 제공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있는 사람: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 

악인: 자기 꾀로 살아가는 자 

아브라함 : 자기 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자. 


17장 - 할례를 행하며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남. 

21장 - 이삭의 출생,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함 

팔 일 -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상직적 표현. 안식 후 첫날 - 부활의 날.  새 역사의 시작의 날 


그런데 22장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대로 주셨던, 은혜로 주셨던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 구절에서 하나님에게 실망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드러내놓고 실망하던 내면적으로 갈등하면서 여러가지 이유를 찾는다. 아얘 주질 말지 주었다 빼았는 것이 어디있느냐 하는 생각을 갖는다. 


전통적 해석의 예 


1.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순수한 마음을 위한 테스트이다. 어떠한 말씀에도 순종할 수 있는가? 

너무 가혹한 테스트가 아닌가? 그는 거짓으로 테스트하시는 분이 아니지 않는가? 


2. 하나님의 목적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과의 단절 

  • 당시의 모든 이방 종교의 의식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 인육 제사 

-> 자기 자식을 바치는 것을 신에 대한 가장 큰 헌신이요, 마음의 표시로서 생각

그래서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의 생각이라는 해석

하나님은 그러한 당시 종교적 그릇된 의식을 말씀으로 막으신 것이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에서 성행하던 인육 제사에 분노하시는 하나님!  아벨에서부터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에서 완성된 어린양의 제사를 아브라함을 통해 확립하는 것이다. 


3. 아브라함 동시대의 사람이라 여겨지던 욥을 통해 아브라함의 시험을 해석 

(욥 1:21)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99세때 아브라함의 모든 능력이 끊어진 후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받았다. 은혜로 받았다는 것은 내 의가 하나도 없이 하나님이 주셨다. 그렇다면 다시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그것을 내 것이라고 말하면서 거절할 이유가 되는가? 

  • 우리의 신앙: 은혜로 받았다고 하면서 내 것인양 허세를 부린다. 다시 달라고 하시면 내것이니까 안된다고 하고, 이미 준 것을 왜 다시 가져가느냐고 한탄. 모든 만물, 자식도 포함...


  • 청지기: 인간에게 맡기신 것, 위임하신 것, 내 몸마져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내 것, 내 소유는 없다. 단지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은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게 잘 관리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달라하면 내 것이라 안 된다고 한다. 감정이 상한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님이 옳지만 내 감정은 안 된다고 한다. 


여기에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과 복의 존재로서의 신앙인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이 의미를 알기 위해서 모리아산에서 이루어진 또 다른 사건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다윗 

다윗의 범죄: 하나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백성들의 수를 계수한 것... 


역대상 21장 :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의지함...

-> 백성의 계수는 오직 전쟁 때에, 하나님이 명하실 때에만 행함. 

다윗의 계수-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되나를 계수 (자기 의와 자기 과시

평생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다윗이 노년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기 시작. 

하나님께 의지하기 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의지하게 됨.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지고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의지하게 됨. 

-> 하나님은 다윗과 그 나라에 온역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순간에 7만 명이 죽음을 맞이함.. 


실수도 하지만 돌이킬 수 있는 믿음...

(대상 21:18)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명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대상 21:22)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대상 21:23)오르난이 다윗에게 고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의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대상 21:24)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고

(대상 21:26)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는 교만으로 인해 죄를 지었으나 죄로부터 회개하고 다시금 믿음을 고백한 장소가 바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다. 피의 댓가를 지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간 장소 


(대하 3: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리고 이 곳에 세워진 것이 교회이다. 

교회는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온전히 이루는 곳이다. 

하나님 처럼 되고자 하는 죄,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 여기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곳이 교회이다. 


3. 예수 그리스도 

최초의 성전이 솔로몬에 의해 모리아산 위에 건축되었다. 그 곳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의 장소가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고 헤롯성전이 다시 지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을 찾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러 찾아왔다. 


[요 2:15-16]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하나님께 와서 죄용서 받고 은혜를 체험하며 깊이 하나님을 예배하던 예배의 장소가 예수의 때에 은혜의 장소를 돈 바꾸는 사람들이 넘치는 장소로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집이 장사하는 집이 되어 버렸다. 


그렇면서 예수께서는 그 성전의 의미, 예배의 참 의미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요 2:1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21)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하신 이 말씀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신다. 


왜 십자가와 부활이 필요했는가? 

성전이 장사하는 곳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장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deal 한다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믿을테니 복달라는 것이고, 헌금 낼 테니 병고쳐 달라는 것이다. 

거기엔 은혜도 없고, 하나님의 전능하심도 없다. 

자기의 행위로 인해 댓가를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장사하는 믿음이다. 


장사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내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것은 이제 내 것이 된다. 더 이상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악한 왕이다. 하나님이라 할 지라도 용납할 수 없다. 

탕자는 마치 자기가 당당한 권리가 있는 것 처럼 "내게 분깃을 달라"고 요구한다. 

내가 그 동안 아버지를 위해 살았으니 내게 분깃을 달라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로 향하는 예수를 향해 하나는 왼편에 오른편에 자리를 달라고 요구한다.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챙겨달라는 것이다. 

거기엔 은혜가 없고 오직 댓가만 있다. 

모두가 장사하는 신앙이다. 


다시 욥과 아브라함으로 돌아가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요구하는 하나님은 절대로 불합리한 분이 아니다. 

그 분께는 이삭에 대한 당연한 권리가 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의 통로로 삼으시기 위해 맡기신 것이다. 이삭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 (창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이 이삭 대신에 어린양을 준비할 것을 알았을까? 정말 알았다면 이삭을 죽이고자 한 것은 시늉이지 실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도 테스트를 위한 거짓말이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장면도 어린양이 있을 것을 알면서 행하는 거짓행세이다. 


그러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는 이삭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삭이 복이 아니라 자신이 복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아식이 없어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한 그는 복이고 복되게 살 것이고 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이삭을 바쳐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또 다른 이삭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어떻게 부모가 되가지고 그럴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보다 더 완전한 아버지시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의 이끄심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너머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하시는 자신의 시간을 넘은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고 그 하나님을 인정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곳으로, 가장 좋은 분께 맡기는 것이다. 


복 때문에 넘어지는 신앙인들...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

지혜를 얻은 솔로몬의 타락

로마의 공인을 받은 교회의 타락 

세계 유래없는 축복은 받은 한국 교회의 타락... 


자식의 대학 진학, 취업, 결혼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그런데 그 자식이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결혼하자 급격히 신앙이 무너져 버린....신앙의 목적을 잃고 방향도 잃고...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던 아내..그런데 남편이 구원받자 그 남편이 하나님이 되어 신앙의 자존감을 잃어버린 아내... 


(창 22:12)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나타낸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 목적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이삭이 신앙의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오르난의 타작마당의 다윗의 신앙 여정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성전의 시작이 되고, 예수의 십자가는 부활의 시작이 된다. 


내가 복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로 받는 어떤 복도 내 신앙여정의 끝이 될 수 없다는 고백이다. 

내가 하나님께로 받는 어떤 복도 내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시작이요, 난 그 부활의 신앙을 위해 끊임없이 옛 복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 때문에 넘어지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복을 장사하고자 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통해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부활의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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