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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기뻐하라 (골로새서 2장 6-8)

 

골로새서 - 옥중서신 중 하나 (옥중서신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보낸 편지

골로새 - 지금의 터키 지방

  • 그러면 사도 바울과 골로새교회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골 2: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과는 ‘피차 얼굴도 모르는 관계’입니다.

(골 1:7)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 7절에 보면 '에바브라'란 인물이 등장하는 데 이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바로 골로새교회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2년 동안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사역을 하는 동안, 에베소에서의 증거가 어찌나 효과적이었던지 행19:10에 보면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두 명의 골로새 출신의 사람이 바로 에바브라빌레몬이었습니다.

 

2) 에바브라와 사도바울

  •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이 에바브라가 찾아왔습니다. 에바브라’는 투옥되어 있는 바울을 만나서 골로새 교회의 상황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이때가 골로새 교회가 세워진지 약 5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서 1:23에 의하면 바울을 찾아왔다가 그만 함께 갇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몬 1: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 그래서 그랬는지 이 편지는 ‘에바브라’가 가져가지 않고 골로새로 가는 두기고 편으로 보냈습니다

(골 4:7)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골 4:8)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바울이 두기고 편으로 골로새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후는 그들에게 에바브라의 소식을 전하며 그로 인해 근심하거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디모데와 함께 갇혀 있었던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교회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3절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그러면, 바울이 무엇 때문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까요? 골로새에서 복음으로 거둔 열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절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자신이 직접 전하지는 않았지만 에바브라가 전한 복음을 듣고 열매를 맺어 자라는 성도들을 향하여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체적 열매의 내용>

그러면 복음으로 맺어 자라는 열매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이 세 가지 은혜들이 논리적인 순서로 배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과거에 기초하였고, 사랑은 현재에 속한 것이고, 소망은 미래를 품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칭찬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지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복음에 대한 믿음이고 그 예수가 부활하셔서 지금도 그들과 함께 함에 대한 믿음입니다.

복음의 열매란 바로 이러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둘째로,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삶을 보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믿음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믿음은 자연히 사랑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이론적이거나 신비적이거나 혹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은 또한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가득한 신앙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5절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복음을 듣고 나서 열매 가운데 세 번째 것은 ‘소망’이었습니다. 믿음은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을 때 소망이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소망은 귀한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 모든 희망이 단절된 세계,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서 맺는 소망은 특별합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예, ‘하늘에 쌓아 둔 소망’입니다. 곧 천국 소망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장차 부활할 것을 말씀하면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전15:19)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망이 없으면 만사가 붕괴되고 맙니다. 심지어 믿음과 사랑까지도 메말라 버립니다. 믿는 사람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상실했다는 증거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땅위에 있는 것을 보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교회와 신앙의 3대 요소입니다. 어느 한 부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항상 3요소가 함께 ‘하나’를 이루며 어우러져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사람들과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골 1: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지금까지의 열매에 그치지 아니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그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 골로새교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지만 여전히 자라나야 할 교회임은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교회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성장해 가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 - 제대로 알지 않으면 미혹된다. 그 당시의 교회들의 문제, 특별히 바울이 세운 이방인들의 교회- 율법적 유대교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적 헬라철학, 그리고 그 지방의 무속신앙

제대로 알지 않으면 문제를 잃으킨다. 우상이란 다름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면 어떻게 됩니까?

 

2. 합당한 행함과 범사에 기쁨, 모든 선한 일에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삶에 궁극적인 열매는 무엇입니까? 어떠한 상황이 와도 "모든 견딤과 오래참음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을 이기는 힘입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절망하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 여전히 사랑에 힘쓰며, 또한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읽은 2장의 본문을 살펴 봅시다.

[골 2:6-8]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당시 골로새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 로마 교회로부터의 핍박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당시의 로마인이나 헬라인들은 그들의 황제를 “주”(“큐리오스”)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황제를 숭배케 했고 황제를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황제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주”라 부르지 못하게 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외에 어떤 “주”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황제를 “주”라 칭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로마의 황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들을 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바울을 비롯하여 초대교회 지도자 200여명이 이 때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이 모든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른데서 왔습니다.

 

"예수로 나의 주로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러한 핍박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세상을 이기는 성령의 능력, 믿음의 능력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교회적인 어려움 - 그 지역의 영지주의적 헬라철학, 그리고 그 지방의 무속신앙, 그리고 유대교적 율법주의

복음에 온전히 서 있지 않으면 스며드는 혼합사상, 이방사상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이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행하되'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peripatevw’(‘페리파테오’)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어떤 특별한 행위 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본문을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생기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즉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과 한 몸이 되어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삶은 단순히 교회만 드나드는 삶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7절a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믿음에도 성장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갑자기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장성한 단계까지의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것에 비유합니다.

처음 나무를 심으면 쉽게 뽑히고, 가뭄에도 취약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뿌리를 깊이 내려야만 쉽게 뽑히지도 않고 웬만한 가뭄에도 말라죽지 않는 것입니다.

 

왜 바울은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라고 말씀합니까? 그래야만 능히 모든 핍박과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은 단순히 교회 오래 다니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몇 주 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뿌리가 깊은 좋은 밭은 어떤 밭입니까?

좋은 땅 - 듣고 받아 (파라 데코마티아) - 매우 기뻐하다. 영접하다. 환영하여 머물게 하다.

이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기뻐함으로 받아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b “...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믿음은 감사의 전제조건입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감사가 나오고,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하거나 병든 믿음의 소유자는 감사를 모릅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받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며,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만큼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냥 ‘감사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감사를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넘치게 하라”의 원어의 뜻은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뜻합니다. 풍성한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딱 받은 만큼, 생각난 만큼 인색하게 하거나 체면치레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의 환경과 처지와 입장이 어떠하든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대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의 문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되 풍성한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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