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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제목: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본문: 왕하 21:1-23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나 사건들은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델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으로 주셔서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고 올바른 역사의 예를 따르라고 주신 역사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성경의 역사를 우리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성령님께 묻고 분별하여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말씀이고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고 그 분의 인도하심이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제 3대 왕 아사의 아들이다. 아사는 그의 부친 아비얌이나 대개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를 하였던 다른 이스라엘 왕들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삶을 살았다. Ehgks 그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나서 처음으로 종교 개혁을 행한 인물이었다.

[왕상 15:13-14]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는 태후의 위를 폐위시키는 등 강력한 개혁 의지를 실천했다. 그는 41년 동안 왕위에 앉아 유다를 통치하였는데 그의 선한 삶은 여호사밧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오랫동안 왕위에 있던 부친 아사 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여호사밧이 남왕국 유다의 제 4대 왕으로 등극했다. 왕위에 오를 때 그의 나이는 35세였으며 그때 북 왕국 이스라엘에는 아합이 왕이 된 지 4년째 되었던 때이다. 아합은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 선지자 때의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여겨지는 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비대해진 북왕국 이스라엘을 견제하는 일이었다. 그는 국경에 위치한 성읍들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의 부친 아사 왕이 정복한 에브라임 지역에 강력한 수비대를 투입하고 견고한 국고성을 건축하였다

여호사밧은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바알들은 복수로서 유일하신 하나님과 대조되는 모든 이방 우상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을 철저히 지켰으며, 계명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사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우상 숭배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무서운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은 하나님을 섬기느냐 우상을 숭배하느냐의 문제에서 결정되었다. 여호사밧은 우상 숭배를 금지하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겼고 백성들도 그렇게 하도록 지도하였다.

l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섬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로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사를 게을리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늘 그들이 우상을 숭배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필요에 맞는 우상을 섬겼던 것이다. 인간 편에서 보면 우상을 섬긴다는 말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드렸고, 기도를 하였고, 말씀을 가까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상도 겸하여 섬긴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예배를 하여도 두 마음을 가진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여호사밧이 백성들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죄악의 요소들을 제거 해야 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은 유다 나라 안에 있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거하였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금하시되 그것들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이를 위반하거나 무시하는 자에 대해서는 벌을 내려 그 죄를 갚겠다고 하셨다. 여호사밧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상들을 유다 땅에서 제거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행하는 가증한 행위, 남색을 일삼는 성적으로 문란한 자들도 몰아내었다.  

여호사밧은 백성들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해 소극적으로는 우상을 제거하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에 방백들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는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는 모든 개혁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레위 사람, 제사장, 방백들을 세워 각 성읍을 순회하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는 백성에 대한 율법 교육이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전체적인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여호사밧은 한 성읍도 빠짐없이 모든 성읍에 거하는 사람들을 율법으로 교육시키게 함으로써 모든 백성을 회개시키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였다.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았고 그 길로 나아갔다.

l  한 목사님과의 대화: 한국의 중대형교회에서 오랜 기간 목회하시던 분-> 답답해 하시며 신학생들이나 신학자들은 올바른 목회만을 생각하고 배우는데, 교회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어떻게 목회를 성공시키냐이다. 바른 목회와 성공하는 목회는 다르다. 신학교에서도 더 실질적으로 목회를 성공하는 법, 큰 교회를 이룰 수 있는 법을 가르치고 토론해야 한다. ->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è  맞다, 바른 목회와 큰 목회, 속된 말로 해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목회를 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만약 당신이 교회를 새로 개척하거나 새로 부임한 목사라 한다면, 당신은 바른 목회에 초점을 맞추겠는가? 큰 목회, 성공하는 목회에 초점을 맞추겠는가? 물론 바른 목회가 성공하는 목회로 이어지고, 큰 목회를 하면서 바른 목회를 하면 가장 좋은 것이겠지만,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교회를 연구하면서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둘이 같이 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요구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è  내려놓음,” “같이 걷기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이 저희 신학교에 오셔서 한국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간증-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앞날이 보장된 삶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은 무엇인가 기도하다가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족과 같이 몽골 선교사로 떠난다. 그런 그의 삶의 이야기를 하며 간증하며 자기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내려 놓으라고 간증하며 말씀을 끝내었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마침 기도하면서 우리도 내려 놓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선교사님처럼 하버드 대학도 가고, 서울대도 가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됩시다.” 하면서 기도해서 가슴이 탁 막히고 막막해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선 교회가 안정되고 큰 교회가 되어야 큰 일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처음 시작부터 바로 하지 않으면 나중 되어서는 더욱 고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 이야기를 하면서 생활이 좀 안정되고 여유가 있으면 헌금 내고 십일조 내야지 하고 이야기 하지만 1000원 있을 때 10월 십일조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큰 돈이 들어와도 정직히 내어 놓지 못한다. 그런 신앙 생활 속에 온전한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 현재의 많은 목회자들- 누구도 돈 이야기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헌금생활 재대로 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렇다가 언제 이야기 하느냐? 성도가 제대로 헌금 생활 안 하는 것은 결국 목회자의 책임이고 그렇게 목회자가 성도가 바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니까 실재로 교회 재정이 어려워진다. 교회 재정이 어려워지면 그 때서야 어렵게 헌금 이야기를 한다. 그렇니까 성도들이 생각이 아~ 우리가 헌금 안 하면 교회가 어려워지는구나. 우리가 헌금해서 교회와 목사가 먹고 사는구나 하면서 자기 헌금이 교회 운영이나, 목회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내는 것으로 느끼며 생각하기 시작한다. 목회자가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고백을 드리고, 우리 삶의 모든 공급처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헌금을 단순히 교회와 목사를 먹여 살리는 품삯처럼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신앙생활의 매사가 마찬가지다.

한국- 선진국인가? 개발 도상국인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나라.

OECD- 살만한 나라들이 가입한 곳.

다른 지수는 평이한데 한국이 1등하는 것-> 자살률, 이혼률, 교통사고, 부정부패지수,

가장 최근에 조사한 웃어른에 대한 존경지수-> 끝에서 두 번 째…

è  왜 이렇게 되었나? 누구의 책임인가? 교회의 책임 아닌가?

많은 성도와 목회자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본다. 개혁해야 한다. 세계 최대 규모 50개 교회 중에 절반이 한국에 있다. 지금 유럽의 길로 가고 있다. 그 화려한 성전들이 이슬람교의 교회로 다 바뀌어 가고 있다.

그래서 젊은 목회자로서, 신학자로서 저의 책임은 기존 교회의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해서 잘된 것은 받아들여 더욱 힘쓰고 잘못된 것은 과감히 버리고 고쳐야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이 힘들면서 조심스럽고 어렵다. 그 기준은 항상 말씀일 수밖에 없다.

말씀, 전통, 문화-> 신앙의 통로...좋은 전통은 받아들이지만 (술문화, 담배문화, 이단에 대한 경각심(문선명), 성적인 보수성) -> 그것보다 우선인 것은 항상 말씀이다. 전통이 말씀보다 앞서서 타락한 것이 가톨릭이고 그래서 개신교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개혁자이다. 항상 말씀에 빗대어서 자신을 개혁하고 자신을 개혁함으로서 내 식구, 내 친구, 내가 속한 공동체를 개혁해 나가는 것이다. 개신교가 영어로 무엇인가? Protestant-> protest 저항하다. 개혁하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자신을 개혁하지 않는 성도는 죽은 성도이다. 개혁은 신앙적인 용어로 하면 회심이고, 변화이고, 성결의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은 전쟁터이다. 끊임없이 죄와 편견으로 물들어 있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고, 잘못된 전통과 싸워야 하고, 그리고 그런 가치관과 전통에 젖어 있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말씀에 서 있지 못하면 결코 이 싸움에서 버티지 못한다.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장엄했던 전쟁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어떤 사람이 와서 지금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자손들, 3개국 연합군이 쳐들어 온다고 알려 준다. 모압과 암몬이 어떤 민족인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 할 때에 아내가 뒤를 돌아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된다. 그래서 빠져 나온 두 딸이 동굴에서 거하다가 베필이 없으므로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이 모압과 암몬이다. 마온도 암몬 족속의 일파다. 다시 말하면 무엇이냐? 다같이 아브라함의 일가, 신앙의 뿌리가 있었던 일가이지만 근친에 의해, 죄악에 의해 태어난 자손이 바로 모압과 암몬, 그들이 지금 연합하여 여호사밧에게 쳐들어 오는 것이다.

다윗 시대부터 유다에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던 모압과 암몬이었지만 여호사밧 통치 말기에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다에 침공해 들어왔다. 여호사밧은 유능한 통치자였다. 그리고 그는 종교 개혁을 단행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중대한 실책이 있었다. 그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가까워진 것입니다. 정략 결혼도 하였고 아합의 요구에 따라 아람과의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 일 후에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침략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 자손이 아람에서부터 왕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움에 싸였다. 그는 이 전쟁이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훌륭한 신앙을 가진 자로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며 그는 전쟁의 소문을 듣자 마자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였다. 여호사밧은 이 위기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으로 알고 그분께 구원을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였다.

여호사밧의 전쟁은 우리가 인생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 줍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나의 영적 전투에서 적이 누구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가 알 것 같지만 시제 인생에서 내 영적 전투의 적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적을 나를 반대하는 사람, 나를 못살게 하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에 있어서 우리 신앙생활의 적은 우리 자신일 경우가 많다. 우리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반응이다.

지금 여호사밧을 쳐들어 온 적은 표면적으로는 모압과 암몬이다. 이들은 잘못된 신앙인, 세상적인 신앙인, 음란한 신앙인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들이 쳐들어 왔을 때에 아합왕과 화친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삼은 자신의 죄악을 보았다. 그래서 3절에 나온 여호사밧의 두려움은 자기의 죄악에서 나온 것이다. 신앙 안에 온전히 있으면 두렵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두렵지 않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우리 자신이다. 여호사밧은 전쟁이 나자 자신의 죄를 알았다. 자신의 죄악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모압과 암몬을 향해서만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두려웠지만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낯을 향하고 간구하고 온 백성과 함께 금식을 선포한다. 오직 자신을 구원할 분은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그 분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모압과 암몬이 쳐들어왔는데, 여호사밧은 그들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한다.

6절부터 13절까지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모압과 암몬을 다스리는 것도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8-9: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적에 성소에 나와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의 영적 원리: 자신의 처지와 부족함을 솔직히 주님께 아뢰라.

(대하 20:12)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è  우리는 입술로는 주님 도와주세요 하면서 여전히 우리 스스로 살 방도를 찾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날 안 도와 주신다고 하며 원망한다. 위기의 상황에 정말 하나님만 의지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 외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방법에 의존하는 것. 그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è  불행히도 대개의 경우 우리는 마지막 수단으로 기도를 하고 기다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l  하나님의 응답

[대하 20:15-대하 20:17]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하나님이 하셔도 우리가 할 일은 그들에게 내려가고 맞서고 만나는 것이다. 이것에도 용기와 담대함과 믿음이 필요하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신앙에서 흐트러지지 말고 삶에 성실히 임하며)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삶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l  여호사밧의 응답

(21절)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미리 찬양대를 뽑아서 감사드린다. 부대 선두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노래할 백성들을 선택했다. 승리하기 전에 믿음으로 찬양하는 법을 가리켜 주신다.

상상해보라. 산 정상에서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다른 산 정상을 본다. 다른 쪽에서는 세 나라 군대가 모여서 이스라엘을 쳐부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장면에서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찬양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모두 나와서 선두에 서라.” 이스라엘 군대는 성가대를 선두에 세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적진을 향하여 진군해 나간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을 할 때 취했던 전쟁방식.

(20)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목사로서 제일 두려운 것- 신앙과 삶은 다르구나. 현실과 신앙은 다르구나.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눈감아주고, 그냥 이 땅에서 가족들과 같이 평화롭게 사는 것…. 그런 목사가 될까 두렵다.

지금도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기도한다. 나 자신을 이기는 것도 힘들지만 성도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날 지키실 것이다. 세상의 전통과 가치관을 분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말씀을 통해서 내가 배워야 할 전통이 무엇인지, 내가 따르지 말아야 할 전통이 무엇인지 분별할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 내 성도들이 날 믿어주지 못하고, 오해하고, 떠날 때…. 목사는 성도에게 외면 당할 때, 사명의 의미를 상실한다. 여호사밧이 그 말을 하는 것 같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러분과 함께 라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제 말을 믿어주는 성도님들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 하나 되어 정말 교회다운 교회, 예배다운 예배를 만들어가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는 그런 로고스 교회를 세우자.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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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수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10 12:15

    삶에 어려움이 날 삼킬것같은 순간에 생각 합니다
    주님에 십자가를....
    그리고 선포합니다 이세상은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임을....
    주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교회에 주신 약속에 말씀이 있기에 선포하며 갑니다
    말씀을 듣는내내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목사님 화이팅!!! 나도 화이팅!!! 우리교회도 화이팅!!!

  2. 소리벼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10 14:26 신고

    "이 세상은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고백이 가슴에 남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세상을 이갈 수가 없고 말씀이 거하면 세상도 하나님꼐서 다스리시는 활동무대임을... 우리 모두 힘냅시다!!

  3. 문미경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11 17:37

    여호와를 신뢰하라.

    헌금 십일조 물질적인것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자신을 다시한번
    성찰하게 한 말씀....감사합니다.
    너무나 현실적인 생각에 적당히 세상과
    타협도 해야 하고 물질도 눈에 보이는것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꺼라 들어도
    눈에 보이는 현실이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곤 했습니다. 단번에 바뀌지 않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듣도록 노력하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