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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 (마태복음 25장 14-31절) 


달란트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도 너무나 잘 알려진 비유입니다. 

달란트는 화폐 단위로서의 달란트가 있고 그 외에 흔히 talent라고 말하는 재능, 능력, 혹 은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 마다 그것이 돈이든 재능이든 각자에게 밎는 분량대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어떤 이는 주인으로부터 것을 장사하여 각자의 분량에 따른 열매를 남겼다는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받은 것을 가지고도 전혀 하나도 남기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남긴 자는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자"라는 칭찬을 들었고, 하나도 남기지 못한 자는 "악하고 게으른 자"라는 꾸중, 꾸중이라고 하기엔 너무 도 큰 진노와 '무익한 종'이라는 이름으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심판에 대한 메시지 입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것은 결국 지옥의 심판을 나타낼 때에 쓰는 표현입니다. . 


남긴 자가 칭찬을 받고 못남긴 자가 꾸중을 받은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데 남긴 자가 "성실하다, 잘했다"까지는 이해할 만 해도 "착하다"는 칭찬을 들을 만한가? 못남긴 자가 "게으르다"는 소리를 들을 순 있어도 그의 성품이 "악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합당한가하는 질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세상에서도 장사 잘 하여 성공한 사람은 다 착한 자들이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악한 자라는 소리이기 때문이지요. 

거기다가 그것이 돈이 되었건 재능이나 은사가 되었건 그것을 발휘하지 못한 자가 꾸중을 들을 순 있어도 그것으로 인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구원의 복음마져도 결국 "우리가 맺은 열매대로"라는 "행위 구원"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달란트 비유는 단순히 재능이나 은사를 잘 활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라고 결론 짓기에는 단순하지 않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이른바 천국의 비유장입니다. 

첫 부분에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가 나오고 달란트 비유 다음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결국 마지막 때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자로 나뉠 것을 분명히 나타내는 비유들입니다 

열처녀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결국 천국은 일상적으로 깨어있는 자, 늘 준비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일상 속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살았는가?하는 삶의 기본적인 자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천국은 어느 때에 몇월 며칠 주님이 오신다고 해서 그 장소에서 기다리는 자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자기의 삶의 일상, 삶의 현장에서 깨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 뒤 비유와 맥을 같이해서 다시 이 본문을 가지고  달란트 비유에서 나타내고 있는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 착하고 충성된 자의 삶의 자세와 악하고 게으른 자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살펴 보아야 합니다. 


14절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새 

어떤 사람은 곧 주인이요,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지금 타국에 갔다고 이야기 합니다. 타국이 어디인가요? 종들 입장에서는 타국이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로 간 것입니다. 어디입니까? 아버지 계신 하나님의 보좌 우편의 자리로 가신 것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명확히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우리는 그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그곳은 이곳과는 다른 나라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그리스도가 데려가실 영원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청지기 입니다. 단지 정해 놓은 기간동안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입니다. 

각자의 분량대로 맡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자라고 적은 양을 맡긴 것이 아닙니다. 

한 달란트는 그 당시 돈으로 6000데나리온 입니다. 그 당시 장정 하루의 일당이 바로 한 데나리온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당으로 치면 장정의 15년- 20년치의 수당이 바로 한 데나리온입니다. 일반 장정이 일년에 5만불 정도를 번다고 치면 80만불 정도가 바로 한 데나리온인 것이지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장정만 오천명 모인 그 현장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했을 때에 빌립이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6000데나리온은 장정만 5000명 되는 사람들을 30번이나 먹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입니다. 

 

그러니까 요지는 우리 모두에게 맡기신 것이 그 만큼 넉넉하게, 크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작게 맡긴 자가 없습니다. 

모두에게 크게 맡기시고, 크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크게 맡기신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 받습니다 

땅을 분배 받는 것만 해도 큰 은혜입니다. 자기 들이 세우지 않은 도시를 받고, 심지 않은 열매를 얻을 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약간의 가나안 족속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왜 남겨놓았습니다. 그들이 땅을 차지 할 때까지 관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농사짓고, 열매를 거둘 때까지 조금 더 관리하도록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들어가서 그들을 몰아내게 하셨습니다. 얻은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며 더 큰 땅과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잡힌 자가 됩니다. 그들의 우상을 섬기고 그들의 문화를 따르다가 점점 가나안 백성화가 됩니다. 그러니까 가지고 있던 땅도 빼앗기고 사사기 시대의 암울한 시대를 살게 됩니다. 

세상 가운데 가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하나님의 열매를 맺게 하셨는데 오히려 세상 속에서 살다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노예로 다시금 돌아갑니다. 


한 달란트 남긴 자를 봅시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것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재능, 은사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살았다면 과연 그는 무엇으로 산 것입니까? 

세상의 것,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서 산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주인이 왔을 때에 그가 한 변명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무슨 소리입니까?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생각한 주인은 "자기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자 하는 나쁜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열심히 해서 주인이 이득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이득보는 것이 싫어서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것이지요. 


장사하여 이득을 남긴 자들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며 주님의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구원받은 백성, 은혜 받은 백성, 하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았지만 

주인의 은혜를 모두 땅에 묻은 자는 육신적으로 게을러서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주인에 대한 불신과 편견으로 고의로 불순종하여 자기 멋대로의 삶, 탕자로서의 삶, 세상 속에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달란트 비유에서 말하는 충성과 게으름이란 결국 주인을 신뢰하고 천국에 소망 둔 삶을 사는가? 주인을 불신하고 이 땅에 소망 둔 삶을 사는가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 본문의 해석에 근거가 되는 내용의 비유가 누가복음 19장 11-27절에 나옵니다. 

눅 19:12-13)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라라.

14절)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주인을 배신할 음모를 꾸입니다. 

나중에 주인이 와서 그를 심판하면서 하는 말이 

27절)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결국 그가 왜 악한 종인가?  그는 달란트를 받을 때부터 주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신자가 왜 불신자인가? 

여러분, 만물은 하나님의 손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육체의 신비, 자연의 신비, 우주의 신비가 다 하나같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런 신비에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게으르고 심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진화론과 무신론을 주장했던 다윈이나, 마르크스, 볼테르 같은 사람들은 무신론자, 불신자로서 살았지만 결국 그들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면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남긴 자들에게 주인이 말한 것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되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좀 전에 우리는 한 달란트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 큰 은혜이고,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인지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그 큰 것을 주님은 "적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드리는 최선도 주님 앞에선 작은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오병이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교만할 이유도, 내가 무엇 했다고 으시될 이유가 없습니다. 무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중심.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분께서 주신 것을 통해 그 분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에게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큰 것을 맡기신다 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그것이 고을을 맡기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의 의미는 더 깊이 다룰 내용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분은 나에게 어떤 왕이신가? 선한 왕이신가? 나를 구하시기 위하여 이 조각목각도 같은 쓸모없는 존재에게 하늘의 귀한 것을 맡기시고 살게 하신 분, 하늘 나라로 가게 하신 분.... 아니면 그분을 알면서도 외면하며 그분께 영광돌리기 보다는 나 스스로 왕이 되어 결국 세상의 종노릇하는 그런 삶을 사는 자.


결국 하늘 나라 백성과 이 땅의 백성의 삶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엇그제 급작스레 저희 장인어른이 소천하셨습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그 분의 사랑받고 자란 딸이고 아들이었기 때문에 급작스런 죽음이 믿기지 않아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더군다나 1월에 장모님과 같이 오셔서 함께 예배하고 지낼 것을 손 꼽아 기다렸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예롭게 40년 목회를 지난 해에 은퇴하시고 1년동안 저희들에게 두 권의 책을 유산으로 남겨 주시고 홀로 가족 누구에게도 의탁하지 않고 기도하시다 하나님 곁으로 가신 모습을 기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식이라 함께 가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슬픔도 나누고 싶고 천국가는 환송도 해 드리고 싶은데 여의치 않은 환경 때문에 가슴도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장례식 풍경을 사진으로 접하고, 들으면서 우리의 슬픔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그곳은 보내는 슬픔보다는 화환부터, 모든 풍경이 그분을 더 좋은 곳, 하나님 집으로 보내는 환송잔치집이었습니다. 

화환마다 기쁨의 메시지가 가득했습니다. 

오히려 장례를 진행하면서 함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내로서, 자녀로서의 슬픔은 사라지고 사람들과 함께 환송의 찬양을 부르면서 진정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자식으로 그 분의 장례에 함께 하지 못한 설운 마음을 목사로서 우리 성도, 하늘 나라의 가족인 우리 로고스 교회 어르신 들의 상주로서 여러분 가시는 날을 환송할 수 있는 목사가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