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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길을 예비 하는 자 (마가복음 1:1-8) 


예수의 나심이 왕궁이 아닌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굿간에서 조용히 나셨듯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본격적인 사역은 세례 요한이라는 자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광야에서의 선포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뒤에도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자라고 계셨지만 그는 그의 때가 올때까지 철저히 가리워진 존재였습니다. 

그의 작정하신 때가 올 때까지 그는 계셨지만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비로서 나타납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 분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때는 어떤 때입니까? 출애굽의 시작은 하나님의 때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출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 한 마디로 하면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보고 듣고 알고...)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 믿는 자에게 특별히 주신 소통의 통로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룁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시니까 다 알아서 해 주실 것 아니냐?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국과 지옥이 나뉘어질 근거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지만 우리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2. 또한 하나님은 모세의 교만함이 꺾이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우리의 방법을 고집하면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방법대로 신앙생활 할 거라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방법 안으로 들어오길 바라십니다. 

교만을 내어놓고 고집을 내어 놓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을 자라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지만 애굽 사람 단 한 사람만을 죽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 그는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됩니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바로의 앞에 가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백만 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내보내라고 합니다. 철저한 순종 없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발상인지 모릅니다. 


3. 아말렉의 죄악이 관영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다스리는 분이지만 동시에 상황을 기다리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면서도 절대로 공의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공의 가운에서 땅이 아말렉을 토해 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순식간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 부터 탈출시키십니다. 


그리스도의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때가 찰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먼저 광야에서 예비하는 자가 움직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사가랴 입니다. 사가랴는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 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성전에서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처럼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고 예배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살지 않던 유대 광야에서 빈들에서 외치는 자였습니다. 

이스리엘 민족이 애굽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듯이 세례 요한의 외침도 하늘을 향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향한 이 외침이 성전의 어떤 예배 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심령을 움직였습니다. 

하늘을 향한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가 외치자 사람들의 심령이 움직였습니다. 

교만한 자는 회개하고 열등감에 상처로 모난 사람은 부드러워졌습니다. 험한 인생 중에서 화병에 걸리고 가시덤불처럼 예민한 사람도 평지처럼 순탄해 졌습니다. 

그렇게 예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이 말씀을 정확히 예언한 이사야 40장의 말씀. 

(사 40:3)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사 40: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사 40: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유다가 멸망한 뒤 예루살렘에 기거하던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와 50여년이 지난 시점. 

패배의식과 열등의식, 다시금 노예의식에 젖어 살던 그들.. 

어느 것 하나 희망을 가질 것 없는 그런 시절... 


이스라엘과 잡혀 온 땅 사이에는 골짜기와 언덕과 사막이 가로 막혀 있는 자포자기의 나날들...차라리 바벨론에서 이렇게 살다 죽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던 때에.. 


(사 40:1)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2)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신 사건-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자기 형편을 보면 전혀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그런 상황. 

그 때 임한 하나님의 때. 

그들의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모든 죄가 사하여 졌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길을 만들어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게 하듯이...

길이 없는 중에 길을 만들라는 명령... 


마치 5천명이 모인 곳에서 지쳐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 말에 움직이고 반응하는 자!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역사하신다. 

이미 하나님의 때가 임했다. 

이미 주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 말씀에 반응하는 자를 통해서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절기- 그 때의 사건을 지금 재현하라는 의미. (유월절. 수장절...칠칠절...) 

똑같이 그 때의 음식을 먹고, 그 때의 옷을 입고, 때로 금식하며, 떄로 먹고 즐거워하며 그 때의 감격을 함께 나누며 다시 경험하라는 것. 


성탄절은 원래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이 아니다

성경은 언제 예수님이 죽었는가는 나오지만 언제 태어났는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가장 큰 절기가 되었는가? 


로마의 식민지를 살았던 이스라엘.... 

예수가 죽고선 모진 핍박과 순교를 당해야만 했던 수 많은 사람들... 

현실은 전혀 변할 것 같지 않던 그 때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 


식민지를 삼은 나라의 소수가 믿는 종교를 로마 제국이 국교로 인정한 것이다. 


그 당시 로마사람들이 가장 큰 축제로 여겼던 태양신 숭배의 날. 

처음엔 그 절기를 없애려고 노력하다가 축제 문화가 사라지지 않자 태양신을 섬기는 대신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로 삼아 축제하자! 


그래서 그들의 땅과 신을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선포하자!하며 

Christ Mass - 로마 제일의 우상 숭배 날을 예수의 예배날로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성탄절은 예수를 믿으나 안 믿으나 전쟁 중이나 모든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든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의 날, 기쁨의 날, 회복의 날로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공휴일은 아니지만 17세기 명나라 때부터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고 심지어 이슬람 국가에서조차도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행사를 허락한다고 합니다. 기독교국가가 아닌 국가에서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축제의 날로 기념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이단들이 크리스마스는 잘못 되었다고 지키면 안된다고 하는데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은 축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즐거운 날이라도 그 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세상사람들 처럼 흥에 겨워 흥청망청 준비하지는 말아야 한다. 


화려한 성전이 아닌 광야 가운데서. - 삶의 고난 가운데서 

축제가 아닌 회개로서, 겸손함으로, 나를 깨끗이 하는 정결함으로

그리고 검소함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어제 오전에 해외 토픽에 실린 동영상을 보았는데...

집에서 키우던 개를 이웃에 맡기고 2년만에 자기 집으로 돌아온 딸과 아빠...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마자 이웃에서부터 개가 달려나와서 펄쩍 펄쩍 뛰며...

핥고 소리지르다가 급기야 기절까지 하는 개... 


뭐 저러냐...하다가 

내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기달려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큰 외삼촌... 


그런데...개에게 위안을 받지 말고... 우리가 성도로서 주일날 하나님의 집에 올 때마다 주님을 그렇게 기다리고. 또한 주님은 그러한 나를 기다리고....

우리 성도들끼리 서로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반기며...인사하며 포옹하고... 

그런 감격이 있는 교회. 기다림이 있는 교회... 

이런 교회가 바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 기다리는 자. 그의 때와 함께 하는 자가 아닐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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