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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과 기다림 (삼상 13:8-14) 


배경 (문제제기) 

사울왕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초대왕입니다. 처음에 그는 겸손한 자였고, 용맹스런 자였고, 그리고 신실한 자였습니다. 

자기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요, 그 지파에서도 가장 작읒 가문의 아들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수는 그가 왕이 된지 2년 만에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주 열세였습니다.

사울은 삼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블레셋과 전쟁을 치루려고 하는데 블레셋의 사람들은 삼만명이고 마병이 육천이고 그들의 백성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더라고 증거합니다. 

6절에 보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이 위급하고 절박하여 숨었고, 또 떨었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계속적으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떠날 것이고, 블레셋은 공격을 해 올 것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순간입니다. 

아무리 용맹스런 사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를 주셨다고 할지라도 상황은 정말로 급박합니다. 

빨리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자신을 축복하고 말씀을 주어야 하는데 사무엘은 오겠다고 약속한 시간에 오질 않습니다. 


여지까지 국가의 중대한 일은 항상 사무엘과 자신이 함께 결정하고 행했습니다. 

아니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에게 말씀해주면 사울은 백성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도 지금 오질 않는 것입니다. 

급기야 사울은 자기의 부하에게 말하여 사무엘이 오면 집례하도록 준비해 두었던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라 하여 자신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번제를 드리자 마자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도착하자 마자 사울을 훈계하면서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고 꾸짖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울의 변명이 이렇습니다.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섯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그렇지만 사무엘에게도 또한 하나님께도 사울의 이러한 변명은 하나도 통하질 않습니다. 

이것이 이토록 잘못된 일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러분이 사울의 입장이었다면 여러분은 달리 행동했겠습니까? 


무언가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을 때에 우리는 과연 기다릴 수 있을까?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할까? 


............................................

이스라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아브라함의 자손들: 하나님이 택하사 가장 연약한 자, 무력한 자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 말씀 대로 행할 때에 복의 근원이 되는 자. 

그를 통해 순종의 아들, 이삭이 나오고, 가장 불완전한 자 (장자가 될 수 없는 자, 속이는 자, 사기꾼)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된 야곱이 탄생.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에 '불완전한 나'가 온전해진다. 


사울왕이 왕이 되기 전의 이스라엘 - 사사기 시대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던 시대"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가 기준이 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시대 - 사사기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자꾸 실패를 한다. 

자꾸 전쟁에서 패한다.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책임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 확인이 된다. 

결코 사리질 것 같지 않았던 가나안의 축복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다 보니까 금방 사라지고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이 왕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백성들의 요구는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질 않고 만질수가 없으니 눈에 보이는 왕을 달라는 것이다. 

예전에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드려고 했다가 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황금 송아지로 만들어 버린 것. 

자기 들이 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상하고 자기들이 가진 것, 황금으로 만들어 버린 하나님- 황금 송아지. 

다름 아닌 우상.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이기 때문에 보이시지 않으신다.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공기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도 눈에 보이질 않지만 만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말씀이 증거하고, 하나님을 닮아 유일한 영적 존재인 우리의 영에 성령이 역사하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공기가 눈에 보이질 않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질 않는 공기를 어떻게 믿냐고 의심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이미 교육을 통해서나 실험을 통해서 너무나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실재로 실험을 해서 공기의 존재를 증명해서 그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쓰는 달력이 그분의 탄생을 증명하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증거하고,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 그분을 증거하는데도 증거가 없다고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자기가 만져봐야만, 눈으로 볼 수 있어야만 믿겠다고 한다. 

하나님을 공기보다도 못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눈에 보이는 증거만을 가지고 믿는 자들은 결국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우상숭배로, 이단으로 빠져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도 육이 아닌 영의 예배,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믿음은, 신앙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왜 말씀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그 말씀이 내 삶속에서 살아 역사하심을 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말씀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 자녀요 말씀이 성취되는 증거를 가진 자들이 증인이다. 곧 하나님 자녀는 그 말씀의 증거를 가진 자들인 것이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왕을 달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왕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대언자였던 사무엘은 백성들의 요구가 너무 어처구니 없고 화가나는데 하나님은 그래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신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을 하나님 안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자기 스스로 왕이 되어 마음대로 살다가 타락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해줄 왕을 세워 그들이 하나님 안에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하나님이 왕을 세우시되 그들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 안전장치를 하신다. 


제한된 왕정 

1) 예언자가 왕을 임명한다. 

2) 왕의 임무는 정치적, 군사적인 것인 역할을 한다. 

3) 전쟁 선포도 종교 지도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4) 왕의 통치는 하나님의 법에 근거하여야 한다. 


그뤟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를 왕으로 세우는 것이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잘 따르는 자들 왕으로 세우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심을 믿는 것이다. 


  • 사울의 실패

사울은 왜 실패했는가?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보았는가? 

1) 블레셋 군대의 숫자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자기들보다 열 배나 많은 군대... 거기에 압도당해 버렸다. 

   그런데 사사기 서에 있는 기드온고 미디안의 전쟁. 미디안 12만명을 칠 때에 처음 모인 자가 3만여명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해서 추리고 추려 300명의 군사만을 가지고 미디안을 쳤다. 

   

2) 백성들의 위급함과 절박함 때문에 숨고 떠는 것을 보았다. 

위급함과 절박한 순간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 

시편에서 보면 굴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 다윗이 위급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피신 시켰던 안전한 곳. 

절박하고 위급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을 안전히 보호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그렇게 피하게 하신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아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가? 사람들의 떠는 것을 보는가? 이것은 우리 선택의 문제이다. 

내 상황이 악화 되는 것을 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상황에서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볼 것인가? 사울은 위급함과 절박함 속에서 백성들의 떠는 것 때문에 조급한 결정을 내린다. 

고난의 때에 상황을 보면 빠지게 되는 것- 두려움과 절망, 낙망- 낙망- 마음이 떨어졌다. 절망 - 마음이 꺾였다. 근심- 마음이 무거워졌다. 

절망, 낙망, 근심을 이기는 것-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 


3) 정한 기일 (7일)이 되어도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 

누가 정한 기일인가? 내가 정한 날이 아니라 사우엘이 정한 날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날이다. 

7일은 온전한 것. 완전한 기다림이다. 

사울은 7일 째가 되자마자 사무엘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조바심이 났다. 7일이 되었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자 아얘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이 7일이 지나서 왔는가? 아니다 7일째 왔다. 

언제? 사울이 번제를 마치자마자. 

결국 그가 정한 시한에 온 것이다.

기다림은 초조한 시간이다. 조바심이 나는 시간이다. 

그런데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분명하신 말씀을 갖고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본문의 사울은 분명한 약속을 손에 쥐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자기가 기대한 순간이 지나자 그는 약속을 잃어버리고 조급함을 택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정말 하나님의 정한 때를 기다리는가? 자신이 정한 때가 지나면 약속을 잃어버리는 자가 아닌가? 

자신이 작정해 놓고 그 때까지 기다리며 기도하다가 이뤄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단정을 내리지 않습니까?


4) 사울의 예배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그러나 사울의 예배는 어떠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예배이다. 

이것만 하면 승리한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이다. 

마치 엘리의 제사장과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하자 언약궤만 가져가면 전쟁에 이기겠지하면서 전쟁터에 자기들 마음대로 언약궤를 가지고 가는 것과 같은 미신적인 행위이다. 

참된 예배가 아니라 형식적인 예배,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찬양이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이고 누룩이다. 

누룩을 제하여야 한다.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5) 사울의 변명 

사무엘이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니이까? 왕의 잘못을 지적하자 한 마디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변명한다. 하나님은 변명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 나단이 올 때까지 자기 잘못을 알지 못함. 그런데 나단이 자기 죄를 말하자 내가 범죄하였습니다 라고 고백. 그 순간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아담을 찾아왔을 때에도, 하와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고 변명함. 

변명은 합리화, 합리화하면 어떤 범죄도 희석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의 인정. 

변명이 내 죄를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회개하는 순간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결론) 

내인생을 바꾼 위대한 책 중 "하프타임" 

작전시간... 인생의 경주에서 멈추어서서 전반전을 되돌아보고 다시 계획하고 실행하는 귀중한 시간. 

짧지만 귀중한 시간.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하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 터닝 포인트 때마다 기억하게 되는 책- 하프타임. 


우리나라 월드컵의 실패

- 알제리 전에서 세골을 먹을 때까지 감독이 속수무책, 왜? 감정이입이 되어서... 바꾸어야 할 선수도 바꾸지 못하고,..

히딩크의 인터뷰- 나도 감독 초창기에 선수들과 감정이입을 너무 심하게 해서 제때에 작전을 펼 수 없었다. 

그런데 감독이란 것은 선수들의 마음과 하나되어야 할 때도 있지만 냉철하고 상황을 판단해서 작전을 세워야 한다. 

지고 있을 때나 앞서고 있을 때, 난 선수들의 마음에서 떨어져 나와 감독으로서 작전을 세운다. 

축구는 경기에서 단 한 번의 작전시간만 있다. 

그러나 권투는 매 라운드마다 작전시간이 있고 농구도 위기의 떄마다 적절히 작전시간을 부를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의 작전시간은 바로 기도이고 예배이다. 

우리의 인생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고 내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서 감독으로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고, 그 분의 말씀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은 300명의 군사만으로도 12만명의 대군을 이기시는 것이다. 

300명에게 요구한 것도 칼로 무장하고 적을 무찔르는 것이 아니라 휏불과 나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위급하고 조급한 상황에 있는가? 

작전타임을 외쳐라. 

그리고 내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의 지시를 받자. 

그 분의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자.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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