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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강 영성학교 제 1 기 총정리   



이제 우리는 12주 동안에 기독교 영성의 대략의 역사와 실천 등에 대해 다루고 배워 왔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기억하시며 함께 생각하고 나누어 봅시다. 

  1. 지금은 어느 때보다 영성이 강조되고 활발하게 이야기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영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영성을 배우고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초기 교회의 성도들에 있어서 신앙적인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는 성서, 예배, 공동체(교회)를 통해서였다. 이 때의 영성과 지금 자신의 신앙, 혹은 현대 교회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1. 초기 교회의 영성은 순교의 영성-> 수덕적(금욕적) 영성-> 수도원적 영성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발전에 있어서 중심이 되었던 정신은 무엇인가? 이 때의 신앙의 형태와 지금의 형태, 혹은 목적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1. 그레고리 닛사는 기독교란 "신성을 닮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세계로 나가는 것을 구원의 과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결국 육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이 알고 익숙해져 있는 삶으로부터 점점 더 무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른바 "부정 신학"을 주장했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편견을 다 제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은 세계, 보이지 않는 곳에 보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당신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편견을 깨어 나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는가? 


  1. 초대 교회 교부 중의 하나인 마카리우스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삶은 고난 속에 주님의 낮아지심에 참여하여 그의 뒤를 쫓는 제자의 삶이며 그 삶 속에서 참 신자는 나그네와 이방인처럼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초탈함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가난과 고난을 겸손과 인내로 겪으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제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살고 있는가? 


  1. 중세의 타락한 교회의 역사 중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프란시스코를 이끈 두 가지 말씀은 "가서 폐허가 된 내 집(교회)를 고쳐라!"는 말씀과 마 10:9-11의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는 말씀이었고 그 말씀을 토대로 이른바 "자원하는 가난"을 중심으로 한 가난의 영성을 주창했다. 그의 영성이 현대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1. 전쟁과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이상이 죽어간 중세의 후기에 노리치의 줄리안은 환시를 통해 "어머니 하나님"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희망의 영성"을 제시했다. 우리가 가진 신앙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혹시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1. 마틴 루터,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의 영성과 가톨릭 영성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인가? (구원의 방법과 성화) 개신교 영성에 있어서 가장 핵심의 주제는 무엇인가? 


  1. 요한 웨슬레는 지나치게 교리 중심이었던 개신교 영성의 흐름에 있어서 가톨릭의 "거룩한 삶"의 영성과 개신교의 "믿음(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전통을 하나로 묶는 시도를 하였다. 이것은 개신교의 본 정신을 살리며 삶의 변화를 이끌게 하는 개신교 영성의 중요한 모델을 제시한다. 그의 영성의 중심에 소그룹 운동이 있다. 소그룹이 영성의 발전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엇인가? 


  1. 가장 기억에 남는 기도의 방법, 실천은 무엇이었는가? 


11. 한국교회의 영성 

한국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부흥과 성장을 이룬 나라이다. 선교사 파송에 있어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고 있고, 성도 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세계에서 가장 큰 50대 교회 중 20개이상의 교회가 한국교회이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도수를 자랑하는 교회 역시 한국의 교회이다. 그럼 한국교회의 영성이라 말할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 기도의 강조 : 새벽기도, 철야기도, 통성기도, 기도원 운동
  • 말씀의 강조 : 설교와 성경공부 
  • 선교의 강조 
  • 물량주의 
  • 세속주의와 결탁한 신비주의   
  • 신앙과 삶의 부조화 (주일중심, 건물중심, 성직자 중심)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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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11.06 05:15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초탈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