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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장 1-23절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1절) 

  •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유대인의 신앙의 대표자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 그들이 믿음의 근거로 삼고 있는 권위를 가지고 와서... 

  • 그런데 그들이 올 때 마다 제자들을 편치 못하다. 갈등이 발생한다. 끊임없이 지적하고 잔소리 하고 꾸중한다. 
  • 아무리 실력있고 권위있고,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도 곁에 올때 마다 이렇게 지적하고 꾸짖으면 편하지 못하디. 늘 긴장한다. 평안이 없고...
  • 왜 그들은 그렇게 지적하고 꾸짖을까? 사랑일까? 사랑해서일까?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서일꺼다.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 거다. 자기들은 예루살렘에서 왔는데 갈릴리에서 온 것들이 어디서....하면서 비교하며 만족하는 것이다. 
  • 신약성경에 이들이 등장하면 곧 갈등이 시작된다. 지적하고 음모를 꾸미고 모의하고 꾸짖고 죽인다. 
  •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은 평안을 앗아간다. 


모래시계 찍으면서 국민배우가 된 여배우가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얼마나 까탈스럽게 했겠습니까? 자기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일부러 불어를 써가면서 대화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교양인양 으시댄 것이지요.  교양있다고 하지만 중학생들이 소위 왕따 시키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가족애니 사랑이니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여배우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집안에 시집을 갔지만 뛰쳐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전통이라는 것을 봅시다. 

그들이 지적한 것은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가리켜 자기들의 전통을 어겼다고 말합니다. 

씻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몸을 씻건 마음을 씻건 씻음으로 우리는 깨끗해 집니다. 

더군다나 당시 팔레스틴 지방은 사막지방입니다. 모래와 먼지가 많아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면 손이나 발까지도 씻어야 하는 것이 문화였습니다. 이것은 위생과 관련된 삶의 문화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생적인 문화가 소위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규례가 되었습니다. 규례가 되었다는 것은 곧 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화가 규례가 되니까 단지 씻지 않은 손이 "부정한 손"이 되었습니다.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와 함께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죄인들에게 복음을, 병자들을 치유하고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쉬면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런 그들을 보면서 죄인이라 정죄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은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권면하는 것도 유익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아무리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아무리 좋은 습관도 남에게는 불편하고 맞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만약 이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했다면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루종일 얼마나 힘들었나요? 그래도 손씼지 않고 그리 급하게 먹으면 채할 수도 있고 건강에도 않좋으니 손씻고 천천히 드시지요." 하면 그야말로 분위기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뭐라 말합니까?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습니까?" 


모여들었다가....(1절) - 그들이 모여들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처음부터 트집잡고 정죄하기 위해 예수께로 모여든 것일까요? 

아닙니다. 처음엔 그들도 예수가 누군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인지 혹 하는 심정에서 예수께로 온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본지라. (2절) - 무엇을 보았는가? 그들과 다름을... 그들의 기대와 다름을 본 것이다. 

묻되, 어찌하여...(5절) 지금 그들은 선지자, 혹은 메시야 되신 예수를 보러 왔다. 그런데 그들이 대하는 예수는 장로보다 못한 예수이다. 전통안에 갇혀진 예수이다. 자기의 기대와 다르니까 왔어도 참된 것을 보지 못하고 그릇된 점만 바라보다가 책망받는다. 


그러니까 그들은 결국 제자가 되지 못하고 무리가 되어 떠돌다가 예수를 떠난다.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 

누구를 경배하는가? 예수인가, 장로인가? 

전통을 지키려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도다. 


그 예로 든 것이 고르반 

고르반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 헌신) 

일단 하나님께 바쳤다고 하면 누구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런데 많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자기의 것을 고르반이라고 해 놓고 부모를 모시지도 않고 옛날 고려장 하듯 부양의 의미조차 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작 하나님께도 온전히 바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전통은 굳어진 습관을 말한다. 그것은 까딱하면 죽은 습관이 되기 쉽다. 

몸에는 너무 편해졌지만 더 이상 나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더러운 것인지를 모르는 자들. 

더러운 손으로 먹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리가 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14절, 17절) 

다시 불러 이르시되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 회개하라. 들어라.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왜 그들을 떠났을까? 더 이상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먼저 예수를 떠난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 집으로 들어온다. 

똑같이 모르는 자들이지만 모르는 것이 있어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예수와 함께 한다. 그리고 묻는다. 

따지는 것이 아니라 (5절처럼) 겸손히 예수님의 지혜를 묻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산 믿음을 참된 행함이 있다. 

그러나 행함이 있다고 해서 다 산 믿음 또한 아니다. 행함이 있어도 죽은 믿음, 거짓 믿음이 있다. 그것이 곧 외식이다. 

속은 더러운데 안더러운 척 하는 것...그것이 곧 바리새인, 서기관, 무리들의 신앙이었다. 

예수님을 보러 왔지만 결국 자기 기준, 자기 시각에 안 맞으니까 정죄하고, 욕하고 떠나는 것이다. 


육신의 더러움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자기 마음 속의 더러움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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