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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2장 12-26절

지혜자나 우매자나...


이스라엘의 첫 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사울입니다. 성경은 사울을 가리켜 이스라엘 중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고, 그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했다(삼상 9:2)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9장에 보면 그가 왕이 되기 전의 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암나귀를 잃고 사울에게 찾아오라고 말합니다. 

사울이 사환을 데리고 암나귀를 찾아나서는데 그냥 대충 찾는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땅에서 시작해서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술 땅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찾아나섭니다. 

 

사울이 암나귀를 찾지 못하고 술 땅까지 이르렀을 때에 사울이 사환에게 말합니다.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그는 암나귀를 찾는 데에 최선을 다하다가 실패하자 이제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이렇다가 나마저 아버지의 근심이 될까 두려워하였다고 증거합니다. 

그는 암나귀를 찾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자신을 걱정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다른 그 어떤 능력보다 하나님께서 보신 왕으로서의 자격이었는지 모릅니다. 

왜 백성들이 왕을 원했습니까? 

사무엘이 늙고 그의 뒤를 이을 아들들이 아버지와 같지 않고 뇌물을 받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자 그들을 인도해 줄, 그들을 지켜줄, 인도자를 구했던 것입니다. 

왕의 사명은 백성을 인도하는 것, 더군다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여 하나님과 그들의 중재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질 않고, 보여도 두려워서 가까이 하지 못하니까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줄 대리자, agent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사울의 시작은, 왕의 되기 전, 그의 삶은 이런 왕의 목적에 합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도 그는 양을 돌보는 자였습니다.

왕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어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안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울의 마음 속에 겸손함과 은혜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 대리인에서 '자기 땅, 자기 가족, 자기 왕국'을 앞세우는 그야말로 스스로 왕이 된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왕으로 삼으신 것이 하나님이요, 자기에게 능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일진데, 마치 이제 이스라엘이 자기 것인양 스스로 왕이 된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기운 것이 하나님이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미래도, 사명도, 평안할 수 있었을 텐데, 맡기운 것이 자기 것이 된 순간, 그 평안이 깨어진 것입니다. 


(삼상 20: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이제 사울왕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도,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도 아닌 자기 나라, 자기 왕국을 지키는 데로 집중합니다.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이젠 죄없는 자를 죽이고자 합니다. 백성를 살리려 왕아로 세워진 자가 이젠 자기를 위하여 결국 남을 죽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그는 자기가 왕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결국 자기도 죽고, 요나단도 죽게 만들고, 자기 나라만 남기워서 자기가 그토록 미워했던 다윗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흔히들 우리 신앙인을 가리켜 "청지기"라는 말을 합니다. 맡기운 자라는 말입니다. 관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자녀도, 일도, 돈도, 심지어 나 자신 까지도 우리는 영생을 살기 전, 잠시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청지기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평안 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맡은 자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내 것이라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내가 가진 돈, 내가 꽉 쥐고 내 마음대로 쓰고 싶고, 내 육신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굴리면서 마음껏 즐기고 싶습니다. 

런데 하나님이 내게 맡긴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것이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 여겼던 자녀가 내 마음을 떠나고, 내것이라 여겼던 돈이 내 품에서 떠나고, 내것이라 여겼던 내 몸까지 내 마음대로 안되고 쇠약해지고 예전같지 않고 내 몸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을 다 떠나 보내고 홀로 남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처음 하나님께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백성들의 마음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자 이젠 누구의 소리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소리에만 매달립니다. 

자기가 맡은 본분을 잃어버리고 자기 지혜에 스스로 매료되어 자기 인생을 자기 지혜의 시험터가 되게 합니다. 


처음엔 자기가 원한 것마다 이루고, 마음 먹은 것마다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만족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다 한들, 자기 한계성을 넘어설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제한이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높아져도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혜로워도, 날씨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내가 나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실수없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지혜자가 더 많이 보고, 많이 안다 해도 자기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다 바꿀 수 없습니다. 

비가 오면 맞아야 하고, 감기오면 걸려야 하고, 해가 지나면 나이를 먹어야 합니다. 나이들면 이가 상하고, 눈이 흐려지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을 몸으로 견뎌야 합니다. 

지혜자라고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했던 솔로몬도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냥 아는 것을 그는 생각하고 연구해서 안 것입니다. 


살다보면 다 알게 되는 삶의 여정을 그는 연구해서 , 공부해서, 테스트 해보아서 알았으니, 그의 수고가 얼마나 헛된 것입니까? 


솔로몬이 탄식 합니다.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다." 


또 그가 괴로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어도 이제 늙으면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그 물려줄 자가 자기보다 낳을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큰 지혜를 받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이후에 오는 자기 후계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자기를 능가할 수 없다.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것이 자부심이고 교만함의 원천이었는데, 자기의 업적을, 유업을 남기고 가려니까 이제 이것보다 서글픈 일이 없습니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못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좋은 것 다 주고서라도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왜 불행한 세대라고 합니까? 이제 부모보다 못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미래가 언제 열릴지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근데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내 수고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내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해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남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솔로몬이 결국 밤 낮 안 가리고 수고 하여 이룩한 모든 것을 수고치 아니한 자에게 넘겨주고 그 미래가 불확실하니 헛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왕된 삶을 사는 자의 끝, 바로 허무한 삶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끝절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삶의 어느 현장에서든지 그가 계시고 그를 의지 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 

이런 자에게 지혜 지식 뿐 아니라 삶의 희락,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이백만을 이끌고 가나안 바로 앞에 와서 최후를 맞이 합니다. 가나안을 앞두고 그는 자기의 모든 권한을 여호수아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모세가 억울했을까요? 아니요. 그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고 기쁘게 자기의 다음 일을 여호수아에게 물려줍니다. 

여호수아가 능력이 있는지, 자기만큼 할지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명령했기에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여호수아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보다 더 못 미더울 후계자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딴소리 하며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다투며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는 모두는 도망하고 배반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전혀 실망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그들에게 맡깁니다. 

너희는 나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 그대로 이 제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무엇이 모세의 마음을, 예수의 마음을 이렇게 평안케 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를, 베드로를 믿었다면 절대로 안심하고, 평안할 수 없을 텐데,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은 부족해도, 연약해도, 믿고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청지기 마음을 가진 자는 자기 같은 부족한 자도 하나님께서 맡기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열심으로, 이렇게 살았듯이, 자기 자녀, 자기 후손, 자기 후배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루실 것을 믿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와 안 믿는 자의 삶의 차이요, 결과입니다. 

자기가 왕 된 자와, 청지기, 맡은 자의 삶의 차이요,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으시겠습니까?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