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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마 28:17-20절) 


지난 주 "전지하시다"는 말씀에 이어 오늘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God is almighty, 히브리어로는 엘샤다이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판토크라토르라고 발음을 합니다. 


전능. 

이 말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전능하다는 말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능이라는 말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 역시 전쟁에서 패하여 죽습니다. 

진시왕이 만리장성을 짓고 불로초를 구해 먹을 정도로 그 권세가 하늘을 찔렀지만 그에게도 전능하다는 말은 쓸 수 없습니다. 

전능이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곧 실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파도를 잠잠케 하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를 본 사람들은 "저가 누구이기에 이같은 일을 행하는가?"하고 감탄하였습니다. 

그는 바다를 갈라 육지를 내게 하고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백성을 인도하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백성을 먹이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백성을 먹입니다. 

전능이라는 말은 상상 할 수 없는 어떤 큰 일을 행하는 것에 머무르는 말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 없다. 불가능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전능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구절은 창 17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창 17: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자식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젠 육체적으로 불가능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인간으로는 불가능하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하십니다. 

신약에 보면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의 탄생을 알립니다.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묻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증거하는 것이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장에서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하면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말씀하면 이루어지는 능력, 원하면 이루어지는 능력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전능하신 분이시다. 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그 분께 주셨으므로...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여러분은 불가능이 없는 삶을 사십니까? 


성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 왜 하나님을 믿는데 그 분의 전능하심을 누리지 못하는가? 

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리라 하신 분이 그토록 오래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체하고 계시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분을 믿는 우리의 무능력한 삶은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듭니다. 

아니 성경을 보아도 성경은 한편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다가도 그 분을 믿지만 전혀 전능하지 않은, 오히려 세상에 치이고 밟히고, 빼앗기고, 죽임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무능한 삶을 보여 줍니다. 

  •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들이 무능력한 삶을 살고 있는가? 


믿음이 없어서인가? 때가 안되서 인가? 기도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특별한 때에만 어쩌다 한번 보여주는 그런 기적의 사건인가? 


38년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에서 날마다 나와서 물이 동함을 기다리듯이 우리는 어쩌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살고 있는 38년된 병자들은 아닌가? 


17,8세기 과학혁명의 시대 - 하나님은 창조하셨지만 사람들의 역사에 관여하지 않으신다. 시계처럼 완전하게 스스로 작동하도록 만들어 놓고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시고 관망하시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지 말고 과학기술을 연마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38년된 병자의 소망처럼 끈질기게 구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기적을 보여주시는가? 

아니면 마르크스와 같은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는 그런 일어나지도 않을 기적을 희망하게 하면서 대중을 속이고 있는 사기 집단은 아닌가? 


  •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 처해 있는 인간의 딜레마에 대해서 하나의 답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주신 이른바 "Great Commision" 대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17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 겉으로는 똑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경배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가 헛것을 보나, 누가 예수 흉내를 내는 것 아닌가? 여전히 의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 가만히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면 누구든지 주님이 행하신 손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기도해왔던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고 내 마음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습니다. 

보지 못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보아도 의심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권세가, 전능하심이 주님께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권세를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가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자에게 그 권세를 가진 자가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 하나 살펴야 할 중요한 명령이지만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뜻(사명)을 이루는 자에게 그 권능을 가진 자가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더 살피기 위해서 예수님의 삶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성육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는 그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바 되었고 그 분이 곧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곧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전능하신 능력을 아무때나 막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그 전능하신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이루실 때에만 사용하십니다. 


그 구원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가난한 자에게 희망을 주고, 천국의 복음을 증거하고...

치유하시고, 가르치시고, 제자 삼으시는 구원의 사역입니다. 


그 외의 일에서는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쓰지 않습니다. 

40일을 금식하고 사탄이 나타나 돌로 떡을 만들어서 배고픔을 면하라고 유혹 할때에도 그는 능력이 없어서 떡을 먹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무관한 일이기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쓰지 않습니다. 

(눅 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을 가졌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 머리 둘 곳 조차 없이 사명을 따라 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의 역사 가운데서 소개 될 때 역시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나타낼 때에 증거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사건은 구원의 민족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 것도 예수를 통한 구원의 사역을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게 능력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가 비천에 처해도 풍부에 처해도 교만해지거나 비굴해지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족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 만약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임한다면 우리는 그 능력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불가능이 없는 권세, 불가능이 없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까? 


지금 대한민국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 국가를 위한 절대 권력이 한 개인과 그와 관계된 몇몇의 사람들에게 잘못 사용되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통령이 왜 탄핵의 위기에 처해있습니까? 

국가와 국민을 위하라고 위임해준 권력과 힘을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이 대통령의 이름을 빌려 자신과 자신의 딸을 위해서 국가권력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 재벌들을 모아 금품을 모으고, 자기 입맛에 안맞는 사람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나서지 못하게 만들고....


한 국가의 힘을 자격없는 개인이 잘못 사용했을 때에도 이와같이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 닥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때에 발생할 일들은 얼마나 클까 상상할 수 조차 없습니다. 


너무 큰 비약이고 과장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큰 위험이 없는 지극히 사소한 일들입니까? 

때때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축복으로 인해 타락하고 이단이 되고, 스스로 높아지고 교주가 되고, 자기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신 사명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사명

가서, 제자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그 사명을 위해 살고 기도하면 전능하신 주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무능력한 삶을 살아갑니까? 

세상에 치여,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삶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 없이 하루 하루 치여 살아가기에 어떤 능력도 기쁨도 잃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대개의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합니까? 

자신을 위해, 결국 직장, 건강, 구하는 것들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하는 자기 욕구를 위함입니다. 


[마 6:31-34]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가운데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을 구하고 살아가기 보다 우리의 염려거리를 위해 구하고 기도하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 염려는 아무리 해결해도 또 생겨나고 또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염려를 없애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 구원이 되고 빛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병든 자에게 소망을 주고,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파송된 하늘나라 공무원입니다. 

그 직임을 충실히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살아 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보장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직분을 망각하고 세상에서 나 자신이 높아짐과 영화만을 위해서 주님 주신 능력을 부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부패한 공무원이요 성경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게으른 자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위해 구하는 자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난 정말 충실한 일꾼인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일꾼인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