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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 (창 3:15-16) 


태초에, 그러니까 인류의 가장 처음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창 1:28)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물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처음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자격이었

 

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으로 죄에 빠진 인간에게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던 땅, 에덴에서 그들을 쫓아내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룹들로 하여금 그것을 지키게 하시며,  땅에 충만하여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대신, 그들의 근원이 되는 땅을 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사람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시면서 동시에 그들과 완전히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지요 . 

그래서 이른 바 원 복음이라고 하는 창 3:15절의 여자의 후손을 통해 사탄의 세력이 멸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런데 15절의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전할 말씀의 키워드가 됩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지금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시면서 그 방법으로 임신하는 방법을 통해서 그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지식을 낳는 것을 하나님의 약속을 얻기 위한 사명이고, 약속을 받기 위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였습니다. 

자,  말씀을 다시 보면 자식을 낳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즉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여자는 남편을 원해야 하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려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여자를 다스리라고 하지 않고 먼저 여자로 하여금 남편을 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여자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려야 합니다. 여자가 간절히 남편을 찾고 원하고 다가가야 합니다. 지금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영적인 잘못을 저지른 인간이 먼저 와서 하나님을 찾아야 하지요. 그런데 죄에 빠진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원하지도 않습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정결을 지키는 것으로 지켰습니다. 인간 편에서 영적인 정결함을 위한 통로가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재적으로 율법을 통해서 정결함을 지켰느냐? 일단 마음이 부패해진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원한다하나 그것이 지속되지도 못했을 뿐더러 로마서 말씀을 보면 인간의 부패성이 극에 달해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유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1)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현실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남편이 아내를 몹시 사랑해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안의 모든 것을 함께 누렸지요. 그런데 어느날 아주 프로급의 제비가 나타나서 여인을 꼬드겼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남편을 피하고 숨기고 비밀도 많아지고 더 이상 남편과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내쫓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내쫓은 것이지요? 왜? 가만 나두면 가정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제비가 아내만 꼬신 것이 아니라 집 안의 모든 것을 다 거덜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쫓아내면서도 아내가 돌아오면 맞을 준비를 합니다. 나가서 세상의 무서움을 맛보고 탕자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면 돌아오겠지 하는데 제비한테도 버림받고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점점 아내의 삶이 망가져 가는 것을 쳐다보는 남편의 모습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대변한 구절이 호세아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호세아 1:2) 

호세아는 그 이름이 여호수아, 여호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그 의미가 "구원, 구원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보내어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합니다. 고멜이 음란한 여인으므로 결혼할 자격도 없고 또 결혼을 해도 자꾸만 가출을 합니다. 집에 붙잡아 두면 또 세상으로 나가 세상과 벗하면서 음란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그런 아내를 호세아를 보내어 계속 찾아다니게 합니다. 


(호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왜 그러느냐? 

[호 2:19-20]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러니까 에덴 동산을 쫓아내실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구원을 약속하시면서 "너희가 남편을 원하고, 남편이 너희를 다스리면....생명의 얻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원하지도 찾지도, 잘못했다고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보냄 같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구원의 역사를 "스스로 잉태하지 못하는 인간을 찾아오셔서 잉태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볼 수 있지요. 성경도 그것을 증거합니다. 

(시 113:9)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원하지 않던 자들로 하여금 그분께서 찾아오셔서 집에 거하게 하시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지요. 


자, 성경에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으로 대표적으로 나오는 여인들이 대략 5-6명 됩니다. 그들의 역사를 보면 곧 구원의 역사를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누가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있지요. 창세기 11장 아브라함의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성경은 사라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창 11: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이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땅으로 가라"(창 12:1) 말씀하시지요. 달리 말하면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여 잉태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손수 찾아가셔서 아의 집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1에는 사라의 축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는 무엇입니까? 본인에게 생명을 잉태할 능력이 없는 줄을 알았지만 자기를 부르신 분은 신실하시고 성취하시는 분,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고 믿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단산하였던 사래는 어떻게 되느냐? 단 한 사람의 어미도 될 수 없었던 자가 믿음으로 열국의 어미가 됩니다. 


그 다음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역시 잉태치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리브가와 40세에 결혼하였습니다. 이들은 결혼하고도 20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창 25: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리브가는 어떻게 임신하였습니까? 그의 남편 이삭이 아내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 (창 25:23)하시면서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동이를 자녀로 주셨습니다. 


그 다음 야곱의 사랑하는 처 라헬 역시 잉태치 못하므로 그 괴로움이 심히 심하였습니다. 

[창 30:1-2]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여기서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 나오는데 자기가 임신하지 못하니까 라헬이 야곱에게 무엇이라 불평하냐면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리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하면서 떼를 씁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그녀에게 임신하게 하게 하는 것도, 못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내가 어찌 하나님을 대신하냐 하면서 곧 하나님만이 그녀를 잉태시킬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라헬은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생명을 얻으려하지요. 야곱에게 협박하기도 하고 그것도 안되니까 이제 자기의 시녀인 빌하를 들여보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에게 생명과 기쁨을 주었는가? 오히려 하녀로부터도 멸시 받고 나중에 그들로 인해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그토록 시기하던 레아와 레아의 하녀에게도 애가 태어나는데 혼자만 못가져서 한이 쌓이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주십니다. 

(창 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래서 요셉과 나중에 베냐민을 낳게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 이것 저것을 다 동원해봐도 안돼던 것이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시고 생각하시니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 


창세기를 넘어가서 사사기에 보면 또 다른 잉태치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삼손의 부모, 마노아와 그 아내입니다. 마노아는 휴식, 안식의 뜻입니다.   

(삿 13: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네가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아들을 낳으면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하면서 삼손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는 약속을 먼저주고 그리고 계명을 줍니다. "말씀의 순종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지요. 

그런데 그 기사에서 좀 특이한 것은 특별히 여인들이 임신하지 않을 때는 여인들의 이름을 씁니다. 이전의 사래나 리브가, 라헬도 그렇고 앞으로 살펴볼 한나나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다 여인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여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그 남편 마노아의 이름만 계속적으로 표기합니다.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천사가 두 번씩이나 마노아가 없을 때 그의 아내에게 나타나는 것이지요. 

처음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아들을 약속하니까 마노아가 그 천사가 다시 와서 그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지를 묻습니다. 

(삿 13: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그래서 두 번째 나타났는데도 그 때 역시 마노아가 그의 아내와 함께 있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천사가 나타나서 아내가 급히 마노아에게 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다고 전하니까 마노아가 아내와 함께 그 하나님의 사자를 쫓아가서 만나게 되지요.

우리는 아내와 함께 있지 않아서 변괴를 당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아담이지요. 아담이 하와와 함께 있지 않을 때에 하와는 뱀을 만나서 유혹을 받게 되고 자기가 범한 선악과를 아담에게 갖다 주니까 아담은 묻지도 않고 아내의 뜻대로 선악과를 먹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 집니다. 함께 있지 않아서 인류에게 죄가 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가정이 깨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마노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두 번씩이나 천사가 나타났으나 아내와 함께 있지 아니한 마노아의 행적을 기록합니다. 그렇지만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또 다시 기도하고, 쫓아가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되지요. 아담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삶을 가르킵니다. 주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도 순종하지 않는 삶이지요. 그런데 마노아의 기록을 통해서 그러한 잘못을 지적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함으로 사사기의 중심인물 삼손을 태어나게 합니다. 그러면서 삼손이 태어나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말씀하시지요. 머리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머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주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순종입니다. 


사사기를 넘어 왕정으로 가기 전 구약에서 또 다른 잉태치 못하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입니다. 

(삼상 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한나의 남편은 엘가나로 그 의미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한나는 "은혜"라는 의미이지요. 그러니까 그 부부의 의미를 합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그런데 은혜라는 의미의 한나에게 자녀가 없습니다. 다른 어느 것이 있어도 자녀가 없으니까 기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한나가 무엇이라고 기도하냐면 

(삼상 1:11)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기도합니다. 삼손에게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명령해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 한나가 자원하여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은 무슨 의미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머리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주님으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육체적인 머리는 손대지 않았지만 블레셋을 쳐부셔야 할 사명을 띄고 사사가 된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고 술에 취해 방탕하다가 머리카락마저 짤리고 맙니다. 머리되신 하나님께 또 다시 범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나가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범치 않으려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나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요, 돌이키는 기도요, 약속의 기도입니다. 내가 또 다시 같은 죄에 빠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태어난 자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마지막 사시이자 첫번째 선지자 사무엘입니다. 그를 통해서 다윗왕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제 신약으로 넘어와서 예수님이 태어나기 직전 우리는 또다른 잉태치 못하는 여인을 만납니다. 바로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입니다. 

그의 남편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사가랴 였습니다. 사가랴는 그 의미가 "여호와의 기억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해서 은혜를 받은 자가 누구였나요? 바로 라헬이었습니다. 아비야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사무엘의 차남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무엘에 이어서 제사장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머리 삼아 살아 간것이 아니라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급기야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게 됩니다.  

(눅 1: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엘리사벳의 의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입니다. 

그들 부부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지만 아비야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1: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눅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그러면서 엘리사벳과 친척지간인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전 천사 가브라엘이 마리아에게 찾아와 예수의 나실 것을 예언하면서 무엇이라고 하면 

[눅 1:31-33]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무엇이라 증언하냐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보다 큰자가 없다"고 증언하지요. 그런데 큰 자가 결국 나중된 자 예수를 섬기며 그의 길을 예비합니다. 리브가에게 했던 예언의 성취,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예언이 세례요한을 통해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구원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시게 되시지요. 이것이 잉태로서 본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곰곰히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한 계획이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복음서라든가 성경에서 흔히들 성도와 그리스도의 관계, 혹은 하나님과 그 택하신 백성들과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표현을 합니다. 

특히 구약 솔로몬의 아가서와 호세아서, 신약의 요한복음, 그리고 에베소서는 성도와 그리스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남편과 신부로 표현한 가장 대표적인 성경입니다.  

에덴 동산은 영적인 의미로 하나님과 우리가 가정을 이룬 가정입니다. 우상숭배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에 빠진 것을 성경에서는 영적인 간음 사건으로 표현을 하지요. 그러니까 더 이상 하나님이 주인되신 가정에 머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탄에게 바람이 난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 생명나무의 공급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나무의 공급을 어떻게 회복하느냐? "너희가 남편을 원하고 남편이 너희를 다스리면" 즉, 너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이 너희를 다스리면, 너희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그리스도가 너희의 "주"가 되시면, 그 잃어버린 생명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죄악에 빠져서 죄와 어울려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원하는 것, 그리스도를 주로 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듭나기 위해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성경은 그것을 "임신하는 고통"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자, 일차적으로 에덴에서 실패하여 죄를 지은 여인에게 하나님께서는 벌을 주시는데 그 벌이 임신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임신만 고통입니까? 해산도 고통입니다. 해산 후에 육아도 고통입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 그러한 고통이 동반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고통만을 의미하는가? 가만히 보니까 이 고통이 우리에게는 곧 특권이며 은혜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말하는 잉태는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그 죄로인해 우리가 짊어져야 할 고통을 복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벌인 것 같은데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고 보면 복이라는 것입니다.  


요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EX) 물- 홍해, 요단강, 풍랑, 요나....물은 곧 고난, 연단, 사망->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그것은 세례다. 거듭남이다. 물을 통해 죽고 물을 통해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이 없는 신앙은 축복이 아니라 방탕으로 간다. 어제 우리가 성가대 헌신 예배 때에 설교 전에 동영상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고통이고 연단이고 짐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은혜는 좋아도 십자가는 싫어하고 피합니다. 자꾸 자기 십자가를 벗어 던지려고 합니다. 가정도, 아이도, 부모도, 직장도, 될 수만 있으면 벗어나고 회피하려 합니다. 어려움의 때를 극복하기 보다는 피할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결국 천국문 앞에 낭떠러지를 건너는 다리가 되는 것 아닙니까? 십자가가 없으면 건널 수 없는 길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죄를 범한 인간이 이제 생명의 공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는데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고 주께서 우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한해서 생명의 잉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런 잉태, 해산을 구원과 연결시켜서 약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디모데전서 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대신한 우상숭배, 영적인 간음을 그치고 오직 하나님께 대한 정숙함과 믿음, 사랑, 거룩함에 거하면 생명을 잉태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 


해산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해산도 구원도 다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부터 끄집어 내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출 23: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하고 약속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잉태치 못하는 죄인입니다.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가 열매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간절히 주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내 머리가 되게 하고 나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라는 바랄 수 없는 중에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 단산한 여인이 열방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라헬은 인간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열매를 맺고자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갈등만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를 생각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니까 그녀에게 귀한 자녀 요셉이, 베냐민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자, 하나님의 기억에 남는 자는 긍휼하심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관심만 나에게 머문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틈만 나면 떨어져 있었습니다. 부부는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 둘은 계속해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 마음대로 행동하며 동행하지 않는 것처럼 마노아와 그의 아내도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임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그들에게 계명을 줍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상과 벗되어 살지 말고 하나님을 머리 삼아 살라는 것입니다. 

마노아는 아담처럼 실수하지 않고 자기에게 찾아온 은혜를 붙잡았습니다. 아내와 떨어져 있었지만 천사가 나타났을 때에 일어나서 천사를 쫓아가서 그를  만나고 그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전의 삶은 상관없습니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그분을 주인 삼아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한나는 삼손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세상과 벗되지 말고 하나님을 머리 삼으라고 했는데 겉으로는, 형식적으로는 머리를 자르지 않았지만 그는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아 영적인 간음을 저지르고 술과 향락에 젖어 살다가 육신적인 머리도 잘렸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벗삼는 것은 바리새인 입니다. 형식은 있지만 영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한나는 회개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약속하고 그대로 지켰습니다. 하나님을 머리 삼고 기도의 삶을 실천해서 사무엘을 기도의 선지자, 기도의 사람으로 키웁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앙입니다. 생명의 열매가 믿음의 행위, 실천에서 나옵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흠이 없이 말씀대로 살다가 세상에서 큰 자를 얻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로부터도 칭송을 받고 존경을 받는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큰자는 자신의 큰 것을 나타내지 않고 어린 자를 섬겼습니다. 

신앙은 큰 것을 자랑하지 말고 약한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나중된 자를 먼저되게 하는 것입니다. 배아파하고 시기하면 하나님의 열매가 없습니다. 어린 자를 섬겼더니 그 어린자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참 신앙은 친구를 위하여 목슴을 내놓은 것입니다. 약한 자를 위해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한 영혼 살리기 위해 나의 전부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인이 나은 자 중에 가장 큰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예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열매맺어야 합니다. 

열매맺지 못하는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세상을 다 가져도 생명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주신 사명을 이루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같은 연약한 것을 통해서 그분의 열매를 맺으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 로고스 교회는 아이낳는 은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애 낳기 힘든 사람들이 와서 다 애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의 영적인 멸매를 맺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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