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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 1-6절 (종된 삶으로의 초대) 

 

[사 53:1-6]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종의 노래의 결정판 - 가장 잘 알려진 본문, 마치 십자가 밑에서 예수를 본 것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묘사, 제 5의 복음서 
  • 그런데 그 종-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 자신의 어떤 것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종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지만 그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제자들에게, 그 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남겨주신 예수의 재림때까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룰 자 - 종
  • 이 종과 상반되는 성경의 반대인물- 선악과를 먹은 아담 (하나님이 내 삶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선악의 판단자가 되어 살 것이다) - 사사기 -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을 택하기 전 - 바벨탑 사건을 통해 드러난 그들의 삶의 목적 - 우리의 노력으로 하늘 꼭대기에 닿아 우리의 이름을 내자. - 하나님과 같이 되자. 그 분보다 높아지자. 
  •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을 외면한 자의 반대편에 하나님의 종이 묘사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다. 자기의 이름과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종이다. 
  • 그리고 그 종의 완전한 모델이 되어 하나님이 친히 성육신 하여 종의 완성을 보여준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 우리의 마음에 담겨져 있는 예수의 얼굴, 예수의 모습 - 우리의 이상형, 왜곡된 현실 

만약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혹은 사진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나타낼까요? 

역사를 통해서 많은 예술가들, 혹은 영화 감독들, 혹은 영화 배우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왔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인자하고, 온유하며 사랑이 많은 그 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그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노력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 

 

이상하게도 성경은 예수님의 생김새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키가 큰지 작은지, 미남인지 추남인지, 멋있는지, 유머가 있는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절대로 예수의 생긴 건 언급을 안 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어떠하셨을까? 

성경에 예수의 얼굴이,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예수의 얼굴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에게 예수의 얼굴을 함부로 상상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패션오브 크라이스트가 상영될 때에도 많은 유대 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영화의 상영을 막으려 애썼다. 

고난당하는 예수, 매맞는 예수, 피투성이가 된 예수.... 이를 신성에 대한 모독이라 여겼기 때문이지만 그 속내는 예수를 그렇게 만든 유대인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성경은 예수를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은  넓은 이마와 긴 머리, 그리고 수염을 가진 잘 생긴 남자의 모습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Celsus(2세기)는 예수를 '작고 못생겼다'고 혹평한다. 역시 2세기에 살았던 초기 기독교 신학자인 Justin Martyr 또한 예수를 '주목할 만한 아름다움은 없는' 이로 이야기 했다. 하지만 200년 정도 후 제롬과 어거스틴은 예수의 얼굴과 몸을 이상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어거스틴은 예수를 '아이처럼 아름다우며 지상과 천국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자'로 말하고 있다. 

 

장면은 바뀌어, 예수님은 잡신들이 우글거리는 이방인 지역,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을 제자들과 함께 가시다가 문득 한 가지 질문을 불쑥 던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이때 제자들의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며 그냥 예언자 중의 하나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아닙니다. 
이때 예수님이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은 다 착각하고 있다 해도 제자들은 과연 당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대답을 못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나서서 자신 있게 말합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희랍 말이고 히브리말로는 메시아요 우리말로는 구세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만이 옳게 바라보고 바르게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제자가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도 착각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관입니다. 베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메시아란 현세적으로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가진 분이라 믿었으며 바로 그 힘으로 나라를 해방시키고 경제적으로 부흥시키며 또한 사회를 안정시키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보처럼 당신이 사람들에게 잡혀 버림을 받아 죽는다고 하시자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펄쩍 뛰면서 주님을 말렸습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는 잘 나가다가 사탄으로 전락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베드로의 믿음의 눈은 아주 위대했지만 그러나 그 그리스도를 영화롭고 현세적인 문제의 해결사의 메시야로만 봤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고 자신의 욕망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큰 꾸지람을 듣습니다. 정신이 번쩍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잘못된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생활은 사탄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게 신앙의 모순이며 그리고 그 모순 속에서 평생 방황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메시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가 말하는 메시아는 이미 왔으며 그가 곧 예수님이십니다.

 

어제 본문의 끝 부분인 52:13절부터 53장까지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아의 모습을 그리는데 오늘의 말씀은 마치 메시아의 모습을 십자가 아래에서 그린 것처럼 선명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제 5의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 Who 

[사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왕, 권력자, 힘, 돈, 명예를 쥔 자로? 그런 자들을 통해? 
  • 하나님이 바벨탑 앞에서 아브라함을 택할 때부터, 에서가 야곱을 택할 때부터, 사울이 아닌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을 택하면서도...한결같이 하나님이 쓰시는 자, 하나님이 택하는 자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건만 너희가 믿었더냐? 너희들이 우러러 보던 그 권력자에게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타났느냐? 
  •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통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종이, 메시야가, 하나님 당신이 온다. 

 

왜 믿지 못했는지를 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연한 순- 어린 묘목같다. 어린 나무일지라도 비옥하고, 물이 풍부한 곳에 있어서 머지않아서 큰 나무로 자랄 것이 확실하게 보이면 좋을 텐데, 마른땅에 자라고 있어서 살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되고, 게다가 뿌리가 아주 작게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저히 제대로 클 나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될 성 싶은 나무 - 미리 판단한다. - 외모로 그를 바라본다. 

  

그래서 메시아가 사람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게 될 것인지를 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렇게 초라하게 보이니까 사람들이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방 한 칸 없어서 말구유에 누우셨고,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게다가 말씨도 표준어가 아닌 갈릴리의 투박한 사투리를 쓰셨을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 보아도 메시아로 인정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구절들에서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입니다.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 ‘우리 모두의 죄악’입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다 영원히 죽은 존재였음에도 하나님은 독생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을까? 

그 초라함이 바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져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상한 얼굴로 와야만 했던 이유는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 상한 얼굴로,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실존 - 

왜 열심히 믿는데도 고난이 오나? 왜 우리에겐 엄청난 복을 허락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리스도가 그런 우리의 가장 평범하다못해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고난 받는 모습으로 오셔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그래야 구원이 임한다고, 우리가 가야할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목회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과 유혹  

- 내게 힘이 있다면, 내게 능력이 있다면, 내게 권위가 있다면, 내게 돈이 있다면...

- 성도들이 내 말을 잘 듣고, 우습게 보지 않고, 말 한 마디에도 종처럼 움직일 텐데...

- 그런데 주님이 가라하신 길- 네가 종이 되어 걸어가야 결국 구원이 임한다. 네가 멸시를 당해야 그들의 죄가 사해진다. 그래야 은혜를 안다. 그래야 나를 안다.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자들은 숱하게 많지만 그 권력으로 사람의 몸은 움직여도 영혼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구약의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로 그들에게 비추어 주었어도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예수가 초라하게 십자가를 지었을 때에, 그분을 따르는 그 분의 제자들은 누가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았다. 종의 길을 가는 것이 마땅했기 때문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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