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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11:1-9]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임마누엘 약속의 연장선상에 있는 메시야 예언 

- 심판이 끝이 아니라 구원이 있을 것이라 

-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것 너머에 구원이 있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 구원에 대한 약속은 궁극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도 유효한 현실에서의 구원과 은혜이다. 

아하스라는 악한 왕 다음에 나타난 히스기야- 아하스와 정반대의 길을 걸은 왕 

히스기야의 아들이었던 므낫세와 그 아들 아몬- 유다의 가장 악한 왕 -> 

->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요시야 - 다윗 이후로 가장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치리했던 왕 

-> 하나님의 개입이 없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뿌리에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다. 

어디에 속한 자인가? 모래 위에 기초를 두고 있는가, 반석 위에 기초를 두고 있는가? 

그 뿌리에서 나온 모든 가지가 당연히 같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곁가지, 돌연변이들이 많고 뿌리에 합당한 가지가 희귀하다. 왜? 사탄의 유혹과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의 경향성으로 말미암아...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 -> 그 결실, 다윗의 가지를 타고 나온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그 가지의 면면 - 한 뿌리에 속한 예수를 열매맺게 되는 한 가지, 한 족보 -> 흠이 없고, 바르고, 깨끗한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그 족보- 장자를 통해서만도 아니고, 연약한 자, 흠 많은 자, 부정한 자- 너무 평범해서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 가지.... 그런데 그 가지를 관통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모든 죄악을 품고 있는 그의 가지. 

 

그 위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임한다. 

[사 11:2-3]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

 

지혜와 총명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 지혜의 근본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런데 이 마음이 저절로, 우리의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을 주어 이스라엘을 구원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 영이 강림하셔야 한다. 성령이 임해야 한다. 성령없이 내가 믿을 수 있는가? 믿는 것,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가?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우유부단하다.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 참지 못한다. 그 영이 강림하셔서 우리 안에 역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이 임한 자의 삶 

 

[사 11:4-5]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 공의, 정직, 성실 

성령이 임한 자의 삶 - 공의, 정직, 성실

성령이 임해서 기도만 하고 말씀만 읽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질서가 들어오고, 관계가 바로되며, 성숙된 인격과 삶이 나타난다. 성령의 충만한 자의 삶은 교회 건물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세상에서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변화 

 

[사 11:6-8]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 -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 - 자연의 자연의 평화 -> 자연과 인간의 평화 -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 

-> 샬롬 

지금의 모든 재해 - 자연의 파괴, 관계의 파괴-> 그 중심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데에서...교회의 책임이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교회의 신앙 교육의 목적이 이러한 샬롬의 삶, 사회를 이끄는 정직, 공의, 성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오히려 나만, 내교회만, 내 가족만....강조하는 이기적 삶

죄를 지어도 무감각한 정직하지 못한 삶

일상의 삶의 성실이 아닌 일확천금같은 현실을 내팽개친 그런 신앙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강조하며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에는 무감각하지 않은가? 

 

[사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내 거룩한 산 곧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삶 

->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삶 ->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끄시는, 완성하실 왕. -> 새 하늘과 새 땅. 

 

1-39장 : 하나님의 모든 손길 - 심판을 향하여...

그러나 그 심판의 목적이 이 메시야 예언을 통해 약속되는 심판 이후의 구원의 삶, 심판의 메시지마다 그 끝은 이 임마누엘 구원의 메시지로 끝이 난다. 

 

이사야가 외치는 설교 - 너희들은 망할 것이다. 너희 불신앙에 대한 심판을 맞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무엇을 말해도 그들이 너의 말을 듣거나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너의 구원이시다. 

예수가 이 땅에 빛으로 올 것이지만 사람들이 빛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죽인다. 그런데 그 죽음이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 

 

이사야의 두 아들 

스알야숩 - 남은 자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마할살렐하스바스 - 그들이 신속히 망할 것이다. 

 

둘째 아들의 일이 먼저 일어나지만, 첫째 아들의 일은 훨씬 더 나중에 일어날 일이지만 그런데 그 첫째, 궁극적인 목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리신다. 

 

[롬 5:6-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몰랐을 때에도, 죄인 되었을 때에도 그가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셨다면 , 하나님과 화목한 인생에는 도대체 어떤 구원이 나타날까? 우리의 무지 때문에 그의 죽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이루어야 했다면 우리가 화목된 자라면, 그의 살아나심으로 일하시는 구원- 동행하는 구원-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구원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구원

 

그가 심판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룬 것 같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모든 고난, 모든 질병, 모든 연약함을 통해서도 그의 구원이 나타난다는 것을 믿는가? 신뢰하는가? 

 

내게 나타나는 구원이 내가 무엇을 해서, 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바라고 신뢰하고 열심내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더 깊은, 더 즐거운, 더 충만한 삶을 누리기 위한 자원함이라는 것을 아는가?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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