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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을 위해 (누가복음 24장 36-49절)

 

부활을 믿지 않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향해

평강 - 샬롬, 에리레네

평안과 편안: 편안함은 평안함의 모조품이다.

 

평안함은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편안함은 환경을 통해 누리는 육신의 즐거움이고 평안함은 마음을 통해 주어지는 영혼의 즐거움이다.

 

요즘 처럼 육신적 편안함 가운데서 영적 평안함을 간구한 적이 있을까?

몸은 편한데 마음은 절대적으로 불안한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주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편안함이 아닌 평안함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신다.

왜 제자들을 방문했을까? 어떤 상황에서 그들을 방문하신 것일까?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그런데 그 소리를 믿지 않았다.

[막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그 이전

[막 16: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눅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허탄하다: 영어 번역- (Non-sense) 감각할 수 없는 것. 넌센스- 비이성적이라는 말의 기원- 자기 몸으로 감각할 수 없는 것.

그런데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것- 그게 더 Non-sense 아닌가?

 

왜 믿지 않았을까?

믿었더라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 - 갈릴리.

[막 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신앙생활, 끊임없이 내 감각, 내 상식, 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서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그분을 믿고 바라는 것- 그런데 그 분을 믿지 못하는 일들이 불신지들이 아닌 예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말씀을 읽고, 왜 기도하는가?

과거의 믿음이 날 보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신령한 은혜를 체험해도 말씀 가운데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또 내 감각 속에 갇혀서 산다.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가 된다.

 

그들이 믿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숨어 있으니 주님이 갈릴리로 가시지 않고 그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발걸음을 돌이키신다. 우리를 찾아다닌다.

 

[막 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왜 나타났는가? 그들이 안믿으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난다.

 

어떻게 믿게 하시는가?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몸- 마리아도, 제자들도 못알아본다. 왜?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몸. 모든 상처와 죄와 연약함이 사라진 몸.

 

십자가상의 주님의 몸 - 상처투성이의 몸- 채찍질, 가시면류관....

온 몸의 모든 상처, 찢긴 것들이 다 회복된 몸일진대....단지 이것은 회복하지 않고 그대로 오신다.

 

그것이 무엇인가?

못박힌 손, 못박힌 발.

왜 그 상처를 부활하신 주님이 남기셨을까? 오직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늘보좌에 좌정하셨던 그 예수가 왜 이 죄많은 땅에 내려오셨는가?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예수껜 어떤 의미일까?

여행하는 기분으로 오셨을까?

애인만나는 기분으로 즐겁게 오셨을까?

물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셨지만, 하늘 보좌를 버러고 이 땅에 내려오신 그 의미는

재벌가 자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 자기 상속과 지위를 다 버리고 오는 것과는 상상할 수 없이 더 큰 불편함과, 고통과, 아픔을 각오하고 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가 자기의 사명을 다 끝내고 십자가의 그 고통을 다 겪으시고, 감당하시고

이제 하나님 나라, 그 보좌를 향해 가는 일만 남았는데, 어서 빨리 가고 싶은 그 나라를 바로 올라가시지 않고

40일간을, 마치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에 40일간 금식하셨던 그 마음으로, 그 고통을 다시 감당하며

이 땅에 남으셨다. 왜? 오직 제자들을 위해서...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믿게 하시려고....한 영혼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그냥 남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쳐다보기도 싫은 그 고통의 흔적, 그 조롱과 비아냥과, 그 모욕의 흔적인 손과 발의 못자국을 그대로 남기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신다. 무슨 훈장처럼 달고 오셨을까?

그 고통의 흔적을? No! 오직 제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그 제자들이 그 못자국의 깊이를 알까? 그 고통의 의미를 알까?

예수가 못박힐 때, 창에 찔릴 때, 그들은 다 어디 있었는가?

 

숨고, 도망가고, 저주하고, 부인하고.... 그 손의 못자국을 제대로 보기나 했을까?

그들이 보기 싫어 외면했던 십자가, 그들이 지기 싫어 도망쳤던 십자가, 그 십자가의 흔적을

 

살아나신 주님께서 나타났는데도 그 분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뚫어진 입이라고

"당신이 만약 예수라면 손의 못자국 보여줘 봐. 발의 못자국 보여줘 보! 창에 찔린 옆구리 보여줘 봐!"

 

그들이 그 상처를 보기라도 한듯이, 알기라도 한 듯이....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샬롬! 평강이 있을지어다....하며 닫혀진 문을 뚫고,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뚫고

"어찌하며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하면서 자, 내 손과 발을 보아라. 감각이 있어야 믿는다고 하면 너희들 가 감각을 가지고 마음껏 만져보라....

 

그런데 그 다음 절을 보면

[눅 24: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 문장은 제가 아무리 해석해도 해석이 안돼.

너무 기쁜데, 믿지 못해....

눈으로는 보고, 손으로는 만지는데 그래도 믿지 못해....

그 손과 발을 보여주시는 데도 아직도,.....

 

뭘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주석들과 논문들을 찾아봐도 뚜렷이 확 마음에 닿는 것이 없는데....

 

크게 두 종류의 해석

 

  • 너무 기뻐서 실감하지 못하는 마음
  • 기쁘긴 한데 여전히 믿기지 않는 마음,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증언하고, 이제 급기야 자기 눈으로, 손으로 만지는 데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것. 믿지 못하게 하는 것 -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나....하는 common sense

영적, 육적 모든 감각보다 더 우선하는 사회적, 일반적 상식.

 

나를 주님 안으로 더 가깝게 믿게 하지 못하는 일반적 상식

 

다른 복음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그들을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면서 생선을 구워 그들 앞에서 같이 식사한다.

그들과 늘 하던대로, 가장 일상적이고도, 친근하게 지내던 함께 밥먹는 일. 영이 아닌 육적으로 살아났음을 친히 체험케 하신다.

 

우리는 식구잖아......

 

그리고 나서....그들을 믿게 하는 더 깊은 길

45절: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은 우리의 경험보다 더 확실한 믿음의 통로다.

말씀은 주의 못박힌 손과 발보다 더 확실한 믿음의 통로다.

말씀은 가장 친밀한 주의 사귐보다도 오히려 더 확실한 믿음의 통로다.

이게 믿어지고, 인정이 되고, 이게 납득이 되야 말씀 앞에 목숨을 건 자가 된다.

 

가장 좋은 교회는 은사가 충만한?

증거가 확실한?

사랑의 교제가 뜨거운?

물론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하고, 필요하지만 가장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이다.

 

그래서 성도는 목사의 설교를 위해, 강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은 무엇을 통해 확증되는가?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위로부터의 능력이 무엇인가? 바로 성령을 통해 .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할 때 우리는 위로부터의 능력으로 덧입혀 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모든 죄와 당신을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심을 믿는가?

그리고 그 분이 죄와 사망의 모든 권세를 이기고 다시 부활하셨음을 믿는가?

그 주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나를 믿게 하기 위해서

그 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그 상처를 내 보이면서까지 나를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함을 믿는가?

 

우리는 지금 부활의 소망과 부활의 능력이 필요하다.

 

영국 형에게서 온 메시지... (영국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번역해서 나에게 보내 준 편지)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

 

지구가 속삭였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내고 급기야 소리쳐 외쳤을 때 조차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벌 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을 깨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지구는 도와 달라 외쳐왔습니다. 대규모의 홍수로 외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고, 불타는 화염으로 외쳐도, 강력한 폭풍과 돌풍에도 당신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양의 생물들이 해양 오염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당신들은 여전히 지구의 외침을 듣지 않습니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심각한 경고에도, 혹독한 가뭄에도, 지구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끊이지않고. 욕심은 멈추지 않고, 무수한 증오에도, 하루에도 수 많은 죽음이 일어나도 당신들은 그저 당신들의 삶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지구가 보여주는 수많은 징후를 알아내기 보다는 최신 아이폰을 갖는 것이 더 중요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여기서 서서 세계가 돌아가는 그 궤도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내가 마침내 당신들로 듣게 만들었습니다. 당신들로 대피하게 만들었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생존에 대한 염려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깨닫고 계십니까?

지구 온난화로 지구가 뜨거워 몸살을 겪는 것처럼 당신들에게서 고열이 나고,

지구가 대기가 오염으로 가득 찬 것처럼 당신들에게 호흡곤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구가 매일 약해지는 것 같이 당신들에게 연약함을 주었습니다.

세계를 멈추게 만들어 당신들로 지구와 그 아픔을 잊게 만들던 편안함과 즐거운 외출을 당신들로부터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국과 인도의 하늘이 깨끗해지고 공기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단지 공장들이 더 이상 오염물질을 지구의 대기에 내뿜지 않게 된 것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니스의 물이 깨끗해지고 돌고래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곤돌라가 멈추는 것 만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신들은 비로소 당신들의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나는 여기에 당신들을 벌 주러 와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을 깨우기 위해 온 것입니다.

내가 떠나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제발 이 시간들을 기억해주세요.

지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당신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더 이상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을 멈춰 주세요.

 

싸움을 멈추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이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시작해 보세요.

지구와 그 안의 모든 생물을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조주를 기억하세요.

 

그렇지 않다면 혹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모습으로 오게 될 거예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치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깨우듯 이 질병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깨우고자 하는 이 글의 모습이

자신의 손과 발의 상처를 보여주시면서까지 우리를 믿게 하시면서

편안함이 아니라 평안함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갖지 않은가?

 

주님은 부활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부활의 증인이 되라 하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은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 시작 한 뒤로 처음맞게 되는 가정 온라인 예배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편지 글 대로 우리를 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깨우기 위해서일꺼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오히려 믿지 못하고 자기 길로만 가는 수많은 성도와 교회들에게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고... 단지 예배당에서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으라고....

 

부활의 주님은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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