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2019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38년된 병자와 예수


1. 시간적 배경-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느니라.(5:1)  

                       어차피 예수님 당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대인, 그런데도 유대인이라 칭할 때는 유대인들- 절기와 율법, 예루살렘성전에 근거를 둔 예수의 복음에 반대되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쓴다.  

2. 공간적 배경-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2)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 예배가 있는 곳. 

                    양문-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문 중 제물로 쓸 양들이 들어오는 문. 희생과 생명을 의미.

                    베데스다 -  은혜의 집, 자비의 집


  • 그런데 은혜의 집에 풍성한 은혜가 없다. 은혜를 사모해서 사람들이 찾아갔는데 풍성한 은혜가 없다. 가장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갔는데 필요한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 
  • 가끔 천사가 나타나 은혜를 주고 있다. 누가 은혜를 입었는가? 

      은혜라고 하면 무능한 사람에게 임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사람이 은혜의 혜택을 받음. 

  • 구약의 은혜, 율법의 은혜- 선택된 백성에게 임한 은혜, 구별된 사람에게 임한 은혜, 예배 제도, 성막, 성전, 하나님이 명하신 어린 양을 잡아 피를 흘릴 때 죄인에게 은혜가 임함. 
  • 신약의 은혜 - 누구나 은혜를 사모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 예수님의 은혜는 특별히 가장 무력한 사람에게 임함. 


3. 상황적 배경-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이 움직임을 기다리니 (요 5:3) 

  •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 - 은혜의 집 베데스다에서 자신들의 행위(내달려서...) 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    
  • 죄인들은 값없이 주는 은혜에 분노한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데 왜 다 해주냐면 오히려 은혜베푸는 자를 경멸합니다. 나도 힘있고 능력있는데 왜 나를 그딴 식으로 대우하냐며 오히려 큰소리칩니다. 이게 바로 선악과의 마음입니다. 나 스스로 살 수 있는데 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하는 마음이 곧 선악과 아닙니까? 
  • 그럼 죄인들의 모습을 보자. 소경이 물이 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가? 절뚝발이가 물이 동하면 달려갈 수 있는가? 혈기마른 자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중풍병자이다. 제대로 거동 못하는 자다. 그가 물이 동하면 제일 먼저 달려 갈 수 있는가? -> 절대 자기 힘으로 가장 먼저 달려 갈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달려갈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다. 

                     

  • 세상살이 - 결코 혼자서 달려갈 수 없는 길을 가장 먼저 달려가기 위해서 기다리며 가장 먼저 도달하기 위해서 무슨일도 서슴치 않고자 하는 자들... 자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것이라고 믿고 남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먼저 달려가려고 생각하지만 실재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이다. 결국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
  • 그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 나보다 먼저 연못에 들어갔기 때문이다고 생각하기 때문... 나도 언젠가 그 연못에만 들어가면 세상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그러나 정작 자기 힘으로 그 연못에 들어간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이 세상의 죄인들이 바로 소경이요 절뚝발이고 중풍병자들이다. 


4. 38년 된 병자- (요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자기 자신이 할 수 없음을 뼈져지게 느끼고 있는 죄인. 그렇지만 무능력하고 불가능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자신들의 힘을 생각하며 유리 방랑하는 사람들 

  •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 

      (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 가데스 바데아 - 여호수아가 열두 정탐꾼을 보낸 땅. 우리 힘으로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한 땅. 

                                 ->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곳에 들어가리라 하며 38년을 기다리고 있는 병자의 모습과 광야 가운데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우리 힘으로 절대로 그곳에 들어갈 수 없어하면서 유리구걸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5. 예수님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주님: 자기 힘으로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38년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하며 여전히 절망하고 있는 자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이것이 복음이다! 

      은혜의 집, 베데스다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베데스다만 죽어라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열심히 달려 구원을 이루리라 베데스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은혜가 임했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열두제자에게 찾아오셨다. 그들에게 은혜가 임한 것이다. 그런데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는 그 은혜를 저버렸다. 은혜에 원수로 반응했다. 

       부활하신 후 500여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은혜가 임한 것이다. 그들 중 120명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예수님께서 약속한 더 큰 은혜를 기다렸다. 500명이 다 그 말씀을 들었는데 380명은 떠나고 120명은 끝까지 기다렸다. 

  • 네가 낫고자 하느냐? 마음 속에 낫고 싶은 소원을 일깨워 주시는 질문. 그 소원 때문에 38년을 기다림.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소원이 약해지기 시작.. 누워 있으면서 좌절도 경험... 소원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소원의 강도가 약해지기 시작. 그 사실을 알고 그의 마음의 소원에 불을 붙여 주신다. 
  • 어떤 사람은 큰 병을 앓고 있는데도 전혀 낫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픈 데 익숙해 있는 사람에게 건강한 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다. 병보다 낫기를 포기하는 절망이 더 무거운 짐이다. 
  • 아프다고 하면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아프기 때문에 아무도 귀찮게하지 않는다.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병에 익숙한 사람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천덕꾸러기가 되어서 무능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 미국에서는 정신 질환자로 판명되면 나라에서 돈을 받는다. 사회적인 책임,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사람들은 가난을 즐기고, 병약함을 즐기고, 정신질환 속에 갇혀 지낸다. 나으려고 소망하지 않는다. 
  •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일부러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가는 것이다. 삶의 목적도 없고, 소망도 없고, 미래도 없는 삶이다. 
  • 은혜가 임할 때 우리는 책임지는 존재가 된다. 신세지는 자에게서 책임지는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된다. 38년된 병자에게 예수님은 도전한다. "네가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낫고 싶으냐? 그 방법을 가르쳐 주랴?  -> 상식적인 대답- 네 낫고 싶어요. 어떻게 하지요? 

                

6. 병자의 대답                

(요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 이 말을 하고 있는 병자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 물이 동할 때마다 그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내려가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포자기하고 누워있지 않았습니다. 계속적으로 힘썼습니다. 38년을 할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원했습니다. 기다리고 인내했습니다. 

      절망을 참았고, 좌절을 참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열심히 노력해도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라. 아직 끝난것이 아니다. 끝나기 전에 내 마음에서 먼저 포기가 일어나면 안된다. 

성도는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때가 되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의 간구에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 하던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던 봉사 힘들어도 계속해야 하고 읽던 성경 계속해서 읽어야 한다. 어느 순간 눈이 열린다. 힘이 생긴다. 축복이 임한다. 우리가 기다릴 때 하나님도 기다린다. 때가 차기를 기다린다. 

(사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조급하면 이스마엘을 만들지만 기다리면 이삭을 만든다.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온 것이다. 

소중한 것일 수록 기다리게 하신다. 귀중하게 쓰일 물건일수록 감추어 놓으신다. 요셉은 13년을 기다렸고 모세는 40년, 80년을 기다렸다. 다윗도 기름부어 왕으로 삼기까지 13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까지 수천년을 기다리심. 

  • 그런데 병자의 잘못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쫓는 방법만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에도 불구하고 베데스다만 바라보고 있다. 길은 여기 있는데 지금 자기가 알고 있는 길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7. 이르시되 

(요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 그동안 그 사람은 자리를 의지해서 살았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하심다. 그가 의지해 왔던, 도움을 받았던 것을 뒤로하고 네 길을 가라는 것이다. 

은혜가 임하면 우리가 의지해왔던 사람들이 우리를 의지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난다.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를 의지해서 베들레헴에 왔는데 자신이 의지했던 시어머니가 어느덧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은혜를 받으면 오랜 습관을 버리고 새역사를 창조하는 능력을 받게된다. 38년이나 된 병자의 사고와 습관을 한 순간에 벗어버리게 된다. 

  • 내가 지금껏 의지하던 너의 길, 너의 가치관, 너의 터전을 뒤로하고 말씀에 순종해 보라. 나를 믿어보라. 전적으로 신뢰하라. 
  •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이 환자의 답변은 그야말로 회한이 묻어 나옵니다.  아무도 자기에게 말을 걸어 준 사람도 아무도 자신을 쳐다 보지도 않은 세월이 38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자하신 목소리에 그는 자기의 38년 동안의 눈물의 탄식을 쏟아 놓습니다. 
  •  "주여" 이 낮아진 마음으로 고백을 합니다.
  •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습니다. 낫겠다는 일념으로 예수님의 권능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38년동안 누워있던 사람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는 말에 의심도 없습니다. 즉각 일어납니다.
  • 이것이 그 사람이 고침을 받은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 먼저 입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어떻게 그럴수가!! 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기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적은자여라며  물 위를 걷다 실족한 베드로에게 한 말씀 그대로 입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믿습니다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어야만 합니다.  믿습니다 하고 내가 먼저 일어나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오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오시기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38년된 병자의 포기하지 않는 끈기처럼 말입니다. 


8. 결론 

지금도 38년된 병자처럼 기적만 바라고 누워있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말씀 보고 기도도 하지만 결국 자기가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나도 성공할 꺼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은혜 받는 사람들을 곁에서 보면서 나도 조금만 누가 도와주면 할 수 있을텐데 하며 남을 원망하며 자신의 무기력을 비통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8년 동안 광야에서 헤메면서 언젠가 주어질 은혜만을 갈망하며 하나 둘 희망을 잃어가던 자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다. 

자기 방법대로, 자기 의, 자기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무력한 신앙생활 하는 자에게 주님은 나타나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다. 

내가 지금껏 기대오고 의지하던 방법을 뒤로하고 이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새 삶을 살아보라 하신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