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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예수님 


[요 15:13-17]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최근 베스트셀러 책들 중에 꾸빼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한 정신과 의사의 삶의 체험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꾸빼씨는 파리 중심가 한복판 한국으로 치면 강남 중앙에 진료실을 가지고 있는 아주 유능한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파리는 세계의 어느 도시들보다 풍요로우면서도 동시에 정신과 병원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합니다. 그는 의사로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로플 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병에 걸려 몸이 아프게 되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본인도 직장이 있으며, 원할 때마다 영화나 외식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짜로 마음에 병이 들어서 스스로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하다가 꾸빼씨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꾸빼씨는 그들에게 때로는 신경 안정제나 우울증 치료제 같은 약물을 처방하거나 심리요법을 통해 그들을 진단하고 처방하곤 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꾸빼씨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들은 왜 불행할까? 그들 중 대부분은 사악한 부모를 만난것도 아니고, 외적으로 불행할 껀덕지가 거의 없어 보이는 데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찾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정말로 행복을 원하지만 가질 수가 없어서 찾아온 사람들... 

그가 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약물 몇개, 그리고 심리치료...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은 그것이 저들에게 정말 행복을 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죠. 

그리고 본인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나는 저들을 치료할 수 있는가?" 

그런 고민 끝에 어느날 갑자기 병원을 정리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납니다. 

도대체 행복은 어디 있는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 

그래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행복에 겨운 사람들을 만나 꼬박꼬박 메모하며 기록한 것을 출판한 책이 바로 꾸빼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행을 통해서 23가지 행복에 관한 중요한 배움을 기록해 둡니다. 

다 소개하기는 그렇지만 그 중 제가 깊게 마음에 다가왔던 몇가지는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결국 그가 긴 여행을 통해서 느낀 것은 행복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으며 또한 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는 비록 크리스찬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로 수많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던 사람이었지만 긴 여행을 통해 행복의 비밀을 조금씩 깨달아 갔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십니까? 

행복하십니까?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공생애를 보내시다가 공생애 끝자락 즈음에 와서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모여 그의 마지막 교훈, 그래서 사람들은 유훈이라고도 하는 것들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3장에서 16장 까지의 내용이지요. 

한참 교훈을 베푸시다가 갑자기 예수께서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오늘 본문에서 하신 말씀인데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에게 있어서는 종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너희들은 내 친구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내 친구라고. 

이스라엘의 문화적 정서는 한국과 대단히 흡사하지요. 우리나라도 군사부 일체라 해서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극진히 받들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거의 주인과 종의 관계에 비교될 수 있는 그런 정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라니, 스승 편에 서 있는 사람이, 그것도 보통 스승입니까? 베드로가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 하나님의 아들이 갑자기 말하기를 이제부터 그대들은 나의 친구라, 이 말은 제자들을 얼마나 놀라게 만들었을까요?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그 친구를 한문으로 지기(知己)라고 불러왔습니다. 지금 많이 그 말을 쓰지는 않죠. 지기(知己), 그 알 지(知)자에다가 자기 할 때 기(己)자, 그래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나와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그리고 내 마음을 이해 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친구를 내 인생에서 갖는 다는 것은 분명한 행복의 요소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친구" 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들은 내 친구야!”이렇게 말씀 하시면서 16절에서 매우 의미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16절에 보니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어떤 사람은 친구가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내 일생 속에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적용해 보자면, 친구란 어느날 갑자기 인생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누군가를 선택함으로써 친구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친구는 내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됨으로써, 그 친구를 선택함으로서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다 우리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오직 몇 사람만이 그 중에 나의 친구가 됩니다. 즉 친구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내가 선택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지요. 

그런데 우리가 선택을 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가 나보다 낫거나, 그를 통해서 내가 배울 것이 있거나, 재미있거나, 마음이 통하거나....그런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선택을 보면 좀 우리와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12제자를 친구로 선택하신 어떤 동기를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자 다시 읽어보시면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 이유는 너희로 가서, 그 다음에 뭘 맺게 할려고? “과실을 맺게 할려고” 또 그 과실이 항상 있게 할려고, 
자,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를 자기의 제자로, 그리고 친구로 선택하신 그 중요한 의도는 어디에 있느냐? “열매를 맺기 위해서다” 그들의 삶이 열매로 풍성하도록, 그리고 그 열매가 항상 있는 삶을 보고파서 예수께서 그 제자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친구로 선택함으로 자신이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 친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얻기 위해서만 친구를 선택한다면 그 우정은 이기심에 근거한 상대방을 이용하고 조작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선택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선택이 순수한 우정으로 발전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상대방의 삶 속에 그분이 축복이 되어주기 위해서, 그래서 상대방의 삶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들로 풍성한 것을 보기위해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삶에 축복이 되어주기 위한 선택,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의 어떤 사람을 접근해서 우정을 형성하려고 할 때 주님에게 배울 수 있는 아름다운 우정의 선택의 모습이 아닌가요?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덕을 보기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저 사람의 인생 속에 축복이 되어주기 위해서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되겠다. . 


많은 사람들이 에덴 동산에 아담을 창조한 목적이 무엇인가? 심심하셨나... 심부름꾼이 필요하셨나...궁금해 합니다. 

인간을 왜 창조했을까?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세상의 살아있는 것들의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에게 비전을 주고, 사명을 주고, 꿈을 주는 것입니다. 열매맺게 하는 것이지요. 

인류의 시작부터가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로, 동역자로 부른 것입니다. 종으로 부른 것이 아니지요. 자녀이고 후사고 또한 친구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홀로 인간보고 친구가 되어 달라 안하십니다. 그 우정을 독차지 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라 우리의 관심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어야 그 분이 만족하신다고 하는데 그 분은 영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고 육신이 있는 존재이기때문에 

서로를 완전히 소유할 수 있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것, 그리고 서로에게 "돕는 베필"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 또한 동시에 인간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우정의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너는 나의 돕는 베필이며 또한 너는 또 다른 자의 돕는 베필로서 서로를 도와주는 삶을 살아라. 서로를 책임지고, 서로를 아끼면서, 서로를 알아가며...

하나님은 인간을 또한 돕는 베필로 만드시고 그렇게 돕는 베필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마음 속에, 인간의 마음 속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더 이상 돕는 베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돕는 베필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 욕심대로, 내 마음대로, 나를 위해서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와 이 세상의 평화가, 질서가 깨진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 하나님과 우리가, 또한 우리 서로 서로가 서로에게 돕는 베필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고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안의 죄성, 이기적 욕망, 남보다 더 잘되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내 것만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들, 우리 안에 뼈 속까지 스며있는 그런 죄된 마음들과 행동들을 

말씀을 통해서, 훈련을 통해서, 순종을 통해서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처음의 사랑, 처음의 우정의 모습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먼저 "너희는 내 말에 순종해야 한다. 내 말에 거해야 한다. 먼저 제자가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안의 죄성, 우리 안의 연약함 때문에 예수님은 비록 이 땅에 내려와서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 있으려고, 친구가 되려고 내려왔지만 우리가 열매 있으려면, 참 우정이, 사랑이 회복되려면 먼저 그 분의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시지요. 그런데 왜 우리를 깨끗케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삶에 열매가 있게 하기 위해서...


[요 15:3-5]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더 나아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주님께서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모든 비밀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우정은 비밀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상담자요 또 심리학자요 의사 가운데 “폴 투리니에”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그 비밀에 관리를 중심으로한 인간 성숙의 발달의 단계를 세 단계로 나누었어요. 
첫 단계는 뭐냐하면 어린이의 삶의 단계, 그 아이들에게는 비밀을 간직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어린이의 특성입니다. 비밀을 절대로 간직할 수가 없어요. 아빠 이건 비밀이야! 해놓고 그 다음에 금새 그 비밀을 말해 버립니다. 어린아이들은 비밀을 간직하거나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물론 어른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른 아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어른 아이에요. 그러나 이런 어린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틴에이져의 그 단계가 되면은 달라져요. 소위 비밀을 갖기 시작합니다. 사춘기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비밀을 갖기 시작하는 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에게 얘기 안하고 비밀이 생겨요.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발전 단계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사춘기에 들어선 우리의 자녀들은 비밀을 간직하면서 그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때 좋은 친구를 갖게 되면 건강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또 그렇지 못하면 매우 불안한 성장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거죠. 
자, 그 단계를 넘어서면 세 번째, 성인이 됩니다. 이 성숙한 성인의 단계에 있어서는 자기의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돼요. 저는 부부의 정의 가운데 하나가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내 약점도 나누고 아픔도 나누고 좌절도 나누고 실패도 나눌 수 있는 관계, 이것이 부부관계가 아니에요?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이런 이성 배우자 만으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건강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런 친구들을 통해서, 또 우리는 그 배우자와 함께 건강한 배우자와 함께 건강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의 형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15절에서 시작에 무어라고 말씀하시냐면 "이제부터"라고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로 삼겠다. 또 그 이유는 내가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였고 이제 알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이 12제자를 선택한 그 직후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위 비밀을 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이땅에 오신 이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 인자가 되어 이땅에 오신 성육신의 비밀들을 나누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생애에 거의 마지막 끝자리 단계에 와서 비로소 가장 중요한 비밀인 십자가의 비밀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있으면 그분이 죽으러 간다고,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십자가의 엄청난 비밀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정말 깊은 친구, 피상적인 친구가 아니라 깊이 있게 삶을 나누는 친구는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친구잖아요. 예수님은 지금 그 비밀을 말하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비밀을 말할 수가 있다라는 것은 중요한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 전제는 뭡니까? 신뢰에요. 
신뢰의 관계가 없이는 아무도 비밀을 말하지 않죠. 비밀을 말했다가는 큰일 나잖아요. 
그런데 신뢰 할만하다! 라는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우리는 비밀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진짜 친구가 되는 거에요. 나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약점, 내 인생의 실패, 내가 숨기고 있는 내 인생의 갈등, 이런 속 깊은 자기의 내면을 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되는 것이에요. 

어디에서 이런 친구를 구할 수가 있을까요? 
저는 교회라는 공동체야 말로 우리가 좋은 신앙의 친구를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마당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일날 예배만 왔다 갔다 해 갖고는 그런 친구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전 교회 나와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이유, 이런 나눔의 마당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나눔이 없이는. 우리가 자기의 마음을 오픈 하지 못할 때, 열지 못할 때 사람은 더 외로워지고 더 깊은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대 선교회에 매우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가운데 한 사람은 중국내지 선교회에 소속해 있던 아마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허드슨 테일러가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파견된 다음에 얼마 되지 않아서 몇 년이 지난 후에 그의 생애 가운데 아주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갈림길이 찾아왔습니다. 이분은 의욕적인 선교사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개척적인 선교의 프로젝트들을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빨리 가다가 보니까 선교 본부와 이견이 생겼어요. 이견이 충돌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선교 본부에서 드디어 경고장 하나가 날라 왔습니다. 
선교 본부를 탈퇴하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하던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순종하던가 선택하라! 
그래서 그 통지를 받고 허드슨 테일러는 아주 깊은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거의 같은 때에 허드슨 테일러는 또 편지 한 장을 받습니다. 그 편지는 뭐냐하면 영국에 있던 자기 애인으로부터 날아온 편지에요. 그런데 허드슨 테일러가 너무나 모험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삶을 살기 때문에 이런 사람과 내 일생을 같이 할 수가 있을까 불안해 졌어요. 그래서 우리 교제 그만하자고, 절교하는 편지가 날라 왔어요.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가 아주 깊은 낙심과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그는 선교를 포기하고 싶었고 심지어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까지 그때 받았다고 술회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허드슨 테일러를 건질 수가 있었던 것은 그가 그 위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곁에 친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놀랍게도 나이가 20살이나 많은 사람 이였어요. 선교사 였는데 스코트랜드 출신에 윌리암 번스라는 20살 많은 그런 선교사가 그 분 곁에 있었습니다. 이분은 허드슨 테일러를 가만히 보니까 허드슨 테일러가 굉장히 아주 가능성이 많은, 포텐셜(potential)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를 좋아했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였지만 허드슨 테일러를 열심히 따라 다녔습니다. 이 윌리암 번스가 이 절망과 낙담 속에 빠진 허드슨 테일러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아주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나자!” 그래서 여행을 떠나요. 무려 7개월 간의 중국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쉬기도 하고 또 같이 사역하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면서 허드슨 테일러는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윌리엄 번스라는 이 20살이나 많은 친구를 자처했던 이 사람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그 여행하는 기간동안에 7개월간 계속해서 말한 것이 두 가지 말이 였다고 그래요. 
하나는 뭐냐하면 “나는 자네를 믿네” 나는 자네를 믿네, 또 하나는 “나는 말이야 자네를 따라 갈거야” 나는 당신을 믿소! “I trust you” 그리고 나는 당신을 따라가겠네. 이 두 마디 말이 허드슨 테일러를 회복시키는 길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허드슨 테일러 에게 그 친구가 없었더라면 그는 결정적인 인생의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허드슨 테일러는 그런 회고를 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마지막으로 우정의 네번째 스텝이 있다면 “우정은 희생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우정은 희생으로 완성됩니다. 저는 이것이 우정의 마지막 완성의 단계라고 생각을해요. 

본문이 시작되는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우리1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그리고 본문이 마지막은 어떤 말씀으로 끝납니까? 
17절 우리 다같이 읽어요. 17절 시작,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크다란 사랑이 없다. 이 사랑을 위해서 친구 여러분, 나는 지금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은 이것을 말씀으로만 한 것이 아니지요? 난 너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가 있다고 말로만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 이 말씀을 한 시점이 어떤 시점 이에요?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고 이 말씀을 하신 거에요. 
그러니까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친구들을 위한 죽음을 각오 해 놓으시고 지금 주님은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 이에요.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크다란 사랑이 없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제 1차 대전 중에 있었던 실화라고 그럽니다. 미국에 어떤 같은 마을에서 자라났던 두 친구가 같은 때에 이 전쟁에 징집이 되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친구는 같은 부대에 배치되었고 또 같은 전선에서 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 전선 순찰을 나갔다가 갑자기 아군에서부터 격리 되었어요. 포탄이 나르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 친구는 나른 파편에 부상을 입어 피 흘리고 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멀리서 참호 속에서 바라보고 있던 친구가 견딜 수가 없어서 참호를 빠져 나와 친구에게 달려 갈려고 그랬더니 주변에 있었던 부대원들이 그를 막습니다. 분대장이 그를 막습니다. “가면 안돼 이미 때는 늦었어, 너까지 죽어!” 그러나 분대장이 잠시 시선을 다른 쪽으로 팔고 있는 그 순간 다시 그는 참호를 빠져 나와 그 친구가 쓸어져 있는 그곳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들쳐 업고 다시 자기 참호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친구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고 그래요. 그런데 분대장이 화를 내면서, 그것 보라고, 내가 늦었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너까지 죽을 번했다고. 
그때 이 사람은 자기 분대장을 향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분대장님 그렇지만 제가 이 친구에게 다가갔을 때 이 친구는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때 내 친구가 저에게 무어라고 그랬는지 분대장님 아십니까?”, “무어라고 그랬나?”, “내 친구는 헐떡이면서 이렇게 말 하더라구요. 친구야 나는 네가 나한테 올 줄 알았지.” 
친구야 난 네가 올 줄 알았단다. 그것이 친구가 아니겠어요. 이것이 우정이죠. 

저는 여러분과 제가 인생의 길을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런 친구들과 더불어가는 인생 길은 얼마나 보람 있는 인생의 길이 되겠어요.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기 앞서서 나는 어쩐지 친구가 없다 인생이 외롭다,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은 정말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기를 기뻐하시면서 다가오시는 예수그리스도라는 분을 만났는지를 여러분 앞에 묻고 싶어요. 
우리는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고백 합니다. 예수님 나의 구세주 이시요 그리고 나의 주님이시여 그러나 또 하나의 명칭으로 그 예수님을 부를 수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묻고싶어요. 

“나의 친구이신 예수님” 우리가 찬송가의 가사에서 부른 데로 “죄 짐 맡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그 분은 내가 그를 선택하기 앞서서 나를 선택해놓고 내게 다가오신 바로 그 분, 그리고 내가 그를 붙드는 순간 하늘나라의 비밀을 나에게 쏟아놓으시면서 나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그 분. 그리고 십자가에서 기꺼이 나의 죄와 고난을 짊어지고 나를 대신해서 죽음을 대신 죽어 주시고 그리고 부활하신 그 분, 내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면서 다가오시는 바로 그 분,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은 친구로 정말 만난 적이 있습니까? 


목회라는 것이 영혼을 담당한 것이기에 어쩔땐 많이 힘들고 외롭습니다. 더 잘하고 싶은데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래서 많이 웁니다. 

할 얘기는 많은데 털어놓을 때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예배당에 혼자 남아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많이 부족해서 잘 안됩니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참 많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어서 힘듭니다. 

그러면 뭐 꼭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느껴지는 주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나도 제자들에게 해 줄 것이 없어서 힘들었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것 내가 해 주지 못해서 많이 속상했다. 

그래도 승구야, 난 네가 나와 함께 이 길을 가는 것이 정말 좋구나. 난 너를 좋아한다. 난 너를 사랑한다. 난 너를 믿는다...."  

인생의 길이 때로 외롭다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외로운 인생 길에 우리의 친구가 되기를 자청 하시면서 다가오시는 그 분, 네가 알지 못할 때부터 나는 너를 선택했다. 네가 나의 친구 될 것을 선택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려주시면서 이것이 너를 향한 내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며 인생의 길에 함께 하자고 다가오시는 바로 그 분, 그 예수님을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교회에 나오시면서 그 예수그리스도를 내친구로 만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기도해 보세요. 예수님, 내 친구가 되어주세요. 내 주님이 되어주시고, 그 분이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 길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그 분의 위로와 그 분의 임재로 경험하는 놀라운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만나셨다면 또 그 분 앞에 이렇게 매달려 기도해 보십시요. 그 위대하신 친구 되시는 주님을 함께 섬기고 함께 자랑하며 함께 전할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 친구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 그래서 인생길 그 모든 외로움 이기고 승리 길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도와 달라고 우리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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