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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2장 5-3장 4절) 다시 주어진 사명 


문학적인 견지에서 요나서 -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도 물론 그렇지만....

어떻게 그당시 인물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까? 

요즘도 드라마를 보면 선한 인물은 실수는 할 지라도 선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악한 인물은 항상 악한 생각만 한다. 

그런데 2천 5백여젼 전에 기록된 이 요나를 보면 그가 선한 자인지 악한 자인지 분별이 안된다.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와 똑같은 자다. 

믿는다고 하지만 고집세고, 의로운 것 같지만 불순종한다. 


이 성경을 우리에게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요나와 같은 성정을 가진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자기 의에 갇혀서 하나님과 맞서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나서를 읽으면서 과연 물고기 속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 

사람이 들어갈 만한 물고기는 무엇일까?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가? 

이런 것에만 관심이 가 있으면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만다 그 구절을 지금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의도를 알아야 한다. 

선생님이 나를 앉혀놓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은 하나도 안듣고 저 분이 입은 옷은 진품일까, 남대문 표일까? 

저분이 쓰는 사투리는 어느 고장 사투리일까? 이런 것에만 신경을 쓰면 그건 정말 어리석고 교만한 자이다. 


지난시간에 우리가 나눈 것 - 요나의 회개 

요나의 회개의 근거 - 2절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1장의 폭풍 - 그는 잠자고 있었다. 주위는 다 죽겠다고 하는데 영적으로 죽은 자는 홀로 태평히 잠을 잔다. 

우리가 이렇다. 하나님은 성도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돌아오도록 말씀하신다.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가족 중에 누가 아프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도 하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정말 피부로 와닿는 고난이 없으면 그런 것에 대하여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영적인 잠에 든다. 조금만 쉼 쉴 구멍만 있어도 회개하지 않고 아직 괜찮다고 한다. 

1장의 요나 - 머리로는 아는데 회개가 나오질 않는다. 고집만 더 거세진다. 

2장의 요나 - 그 고난 가운데 쉼쉬기 조차 어려워지고 나서야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불러 아뢰었더니"라고 말한다. 

이럴땐 어쩌면 믿는 다는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하다가도 다시 생각하면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내가 받는 고난의 결과는 무엇인가?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7절)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하였다는 것은 내 마음이 고통스러웠다는 표현이 아니다! 

기름 부은 자에게 주신 은혜의 영,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이 그 안에서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믿는 자가 불순종하면 내 영혼이 그 속에서 피곤한 것이다. 

왜? 영은 하나님 주신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데 자꾸만 그 말씀에서 벗어나니 피곤하고 지치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피곤하고 지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고단해서 피곤하고 지치는 것이 아니다. 

영은 불순종하면 피곤하고 지친다. 영의 호흡은 기도요, 양식은 말씀이다. 

은혜로운 것은 믿는 자의 영혼이 피곤해지니까 그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본향을 향한다는 것이다. 


1장에서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 같던 요나가 자신에게 닥친 고난으로 말미암아, 또 영혼의 피곤함이 극에 달하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한다. 


(욘 2: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8절은 좀 뜬금없는 구절이다. 지금 자기 죄를 회개하면서 주께 돌아오는데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은혜를 저버린다고 말한다. 이 표현에는 두 가지 마음이 다 스며져 있다. 

당시의 거짓 선지자를 비롯한 잘못된 신앙인이다. 물질적인 번영 앞에서 하나님을 떠난 세대를 가리킨다. 요나의 처음 마음이다.난 그래도 저 들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그런 물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표현이다. 


두 번째는 왜 회개 가운데 남을 이야기하는가? 결국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요나 그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는 것이다. 거짓되고 헛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자기의 의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말씀 마져도 자기가 판단해서 그것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뜻이라도 거절해 버리는 자기 우상에 빠진 모습이다. 이제 그런 교만함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주께 돌아오겠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기도의 표현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회개 가운데서도 두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서의 인물 표현은 너무나 사실적이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회개함 가운데서도 잔머리를 쓰고 있다. 

그 결과를 후에 보게 된다. 


이제 3장으로 넘어간다. 


  • 3장 : 니느웨의 회개의 장, 부흥의 장 

그 근거는 2장 ->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드린 회개와 결단의 기도

한 사람의 회개가 한 민족의 회개로, 부흥으로 이어졌다! 


  • 요나서의 엔딩은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불순종으로 시작했다가 불평으로 끝난다. 

1장 : 불순종 -> 2장 : 요나의 회개, 부흥 -> 3장 : 공동체의 회개 부흥 -> 4장: 불평 

-> 우리 신앙의 굴곡, 삶의 모습..


* 개인적인 부흥 다음에는 공동체의 부흥을 기대하라. 그러나 공동체의 부흥 후에 누군가의 불평, 침체가 올 수 있음을 각성하고 근신하자. 

-> 선 줄 알면 넘어질 줄 조심하라. 


  • 2장과 3장의 공간: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내자 바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의 지체가 있었다.  

(고독, 준비의 시간) -> 하나님이 훈련하시고 다시 찾으시는 기간


2:9 주께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학자들의 의견 -> 제사는 성전에서 드리므로 예루살렘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고향으로 귀향하여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2장 : 절박한 현실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회개와 부흥, 기쁨과 소망이 함께 했던 시간

2장과 3장의 사이 :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침묵과 고독의 시간 

  개인적인 뜨거운 체험 뒤에 현실이 바뀌고 내가 온전히 바뀐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차가운 현실로 날 보내어서 온전한 순종을 이루게 하신다. 

  연단 뒤에 오는 마지막 차가운 연단...

그 기간을 통해서 자신을 확실히 살피고 준비되어진다. (2번째 사명을 위한 준비의 시간,,

ex) 사도바울.. 다메섹에서 회심 사건 다음에 아라비아로 내려가서 3년간의 준비의 시간...다윗-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뒤 7년간의 준비의 기간...

-> 그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삶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받은 은혜가 몸에 입혀지게 하는 것이다. 


1. 광야의 시간을 지내는 요나에게 말씀을 들고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배반했던, 불순종했던, 실패했던, 절망했던) 나에게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

ex) 베드로... 3번 부인하고 절망 중에 다시 고기 잡으러 나갔을 때에 다시 찾아오셔서 물고기를 구우시고 따뜻한 불로 맞아주시며 네가 날 사랑하느냐 하신 예수님..


-> 다시 찾으신 하나님은 첫 번째의 일을 들추어내시지 않는다. -> 인격적인 하나님..

왜 그랬냐, 그것봐라. 하시지 않고 나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심판이 아니라 긍휼이고 평안..


2. 두 번째 재 소명에서 첫 번째 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주신다. 

실패했다고 깎지 않으신다. 인간의 사회라면 훨씬 작은 임무를 주셨을 텐데 실패 뒤에 온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처음의 사명을 그대로 주신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 움직이기 때문에...


*다른 점 :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불순종한 과거가 있기에 사명은 그대로 주시되 요나의 그릇된 행동을 지적해 주시고 하나님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일을 행하게 하신다. 


1: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 

3: 내가 네게 명한 것을 (40일이 지나면 멸망한다는 것) 

  -> 다시 불순종하지 않도록, 급박한 일을 공개하신다. 


3. 순종하는 요나 -

1장 : 말씀 -> 그러나 (1:3) 

3장 : 말씀 -> 여호와의 말씀대로 (3:3)


*공통점 : 

(1)“일어나” :

동일한 행동 -> 문제는 불순종의 차원에서 일어나느냐 순종의 차원에서 일어나느냐..

(2) 목표를 향해서 가려고 함 

(다시스, 니느웨..) 

-> 어떤 사람은 순종의 행위에서 일어나 가고 어떤 사람은 불순종의 의미에서 일어나 간다. 


4. 순종하게 되었을 때에 기다린 것은 어려운 현실 

3장의 순종의 대상-> 하나님의 말씀   

순종이 곧 형통은 아니다. 순종하자 곧 만사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 : 지극히 큰 니느웨, 3일 길을 가서, 하룻길을 행하며 외침...

니느웨를 다 돌면 3일 길 


온전한 순종은 3일 길 -그러나 요나는 하룻길만 행함...-> 4장의 불평이 나온다. 

하나님의 일을 경험했지만 이내 불평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3일 길의 순종이었다. 


1장 : 큰 성읍,  2장 : 큰 물고기   3장 : 큰 성읍,  4장 : 큰 풀 

-> 요나를 힘들게 했던 것..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장벽 

그러나 그 장벽을 능히 이기시는 하나님...

반쪽 순종하면 반드시 화가 일어난다. 불평, 갈라짐, 또 다른 침체...


요나서는 4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성경이지만 신앙인생의 여러 굴곡들이 다 나와있다. 

오늘 읽은 3장의 짧은 4절의 내용에서도 긴 연단 뒤에 생략된 준비의 기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온전하지 못한 순종으로 나아가는 요나의 모습이 다 나와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워나가신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구원이 온 땅에 충만케 일어나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개인에게 부흥을 체험케 하시고 그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신다. 

우리 모두는 요나와 같이, 그보다 나을 것이 없는 신앙인들이다. 우리도 요나와 같이 불순종하고 때로는 우리 맘 속에 늘 품고 있던 어둠의 장소-다시스-에 가서 쾌락을 꿈 꾸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거부하며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을 때만 순종하면서도 내 신앙이, 열심이 제일인줄 안다. 

회개의 순간에서조차 자기 합리화를 한다. 자기 변명을 한다. 그래도 저들보단 낫잖아요 하며 자기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품어주시면서도 고쳐나가신다. 어쩔땐 물고기 뱃속과 같은 그런 연단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죄악 됨과 연약함을 깨달아 회개케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참 구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신다. 그 보다 더 많이 우리를 기다리시고 또 참아주신다. 정말 오래동안 참아주셔서 우리가 온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끌고 가신다. 온전치 못한 자들을 끌고 꾸역 꾸역 그 분의 일을 이어가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금 소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하신다. 사랑으로 다가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분의 일을 거역치 못하게 하신다.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로 만들어 가신다. 

그러지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지만 우리가 그 가운데서도, 다시 주신 기회 가운데서도, 뼈져린 회개와 결단 가운데서도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면 다시금 불평이 일어날 수 있다. 갈라지기도 하고 분열될 수 있다. 

예수님이 다시 찾아 오셔서 세우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은 제자들이 세운 교회라 할지라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순종하면서도 온전히 순종치 못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점차 쇠퇴하고 갈라지고 분열되어 사도 요한이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을 기록할 수 밖에 없었다. 


요나와 같은 은혜를 우리는 받지 않았나. 소망없는 우리 인생에 참 의미와 목적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사람들은 입을 것, 먹을 것 같다가 염려하며 사는데 우리는 주의 일을 염려하며 사는 은혜를 누리지 않는가?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온전한 순종함이 없으면 곧 불평한다. 불평은 우리가 순종치 않는다는 증거다. 
우리를 다시금 찾아오신 예수를 기억하자. 배반하고 불순종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계획을 알려주시는 주님께 온전한 순종함으로 제사를 드리자.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