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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1장 4-6절 하나님의 간섭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요나서는 4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성경이지만 믿는 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너무도 강렬한 말씀입니다. 그것도 불신자나 초신자가 아닌 자기 스스로나 남들로부터 신앙적으로 나름 신실하다고 인정받아왔던, 착하고 바르다고 인정받아왔던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생활 하면서 좋은 평판과 인품을 자랑하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고집장이이고, 불순종하며, 자기 멋대로 하는지를 정말 무서우리만치 자세히 살핀 말씀이 요나서 입니다. 

그래서 요나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요 나, 바로 이 불순종하며 고집불통인 나 자신을 대면"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절에서 3절까지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로 가라는 소명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명은 "자신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신앙의 목적과 방향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차마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모세처럼 분명히 말씀을 받으면 누가 순종하지 않겠냐 반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다 순종할 수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감히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냐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실상 진실하게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자신이 신앙생활 중에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순종보다 불순종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알면서도 하나님께 거역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습니까? 

자기의 생활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보다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 자기에게 급한 일을 언제나 선택하지 않습니까? 


요나는 지난 시간 말씀을 나눈 대로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여정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이었습니다. 니느웨로 가라 했더니 다시스로 갔고 동으로 가라 했더니 서쪽 끝으로 갑니다. 육지로 가라 했더니 바다로 갔고 남을 살리라고 했더니 자기도 죽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불순종 하는 자의 특징입니다. 신앙 안에서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 죽음의 길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불순종을 통해서 요나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의인인지 알았던 요나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정반대로 가는 악인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남들보다 못할 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님을 만나고 그 말씀안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내 안의 죄가 얼마나 가득한지 그 죄로 인해 항상 민감해지고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첫째 시간을 통해서 설명했던 하나님이 명하신 곳, 니느웨는 바로 내 안의 불순종의 공간, 의로운 것 같지만 항상 자기를 주장했던 자신의 뜻, 도저히 순종할 수 없고 이것만큼은 못해요라고 말하는 불순종의 공간이었고 지난 시간 설명했던 다시스는 지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죄를 선택하면 항상 택하게 되는 죄의 공간, 내가 교회만 않다니더라도, 내가 집사만 아니라도, 내가 목사만 아니라도 하고 싶었고 반드시 했을, 죄가 나를 유혹하면 언제나 넘어갈 수 있는 세상적인 욕망, 세상적인 욕심, 세상적인 유혹의 공간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나눌 4-6절의 말씀은 불순종의 길을 가는 요나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간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순종을 하려고 맘먹고 욥바라는 항구로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습니다. 선가를 주고 배에 올라서 불순종의 길은 순탄하게 흘러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불순종의 길을 갈 때 맘은 좀 불편할 수 있어도 만사가 형통하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이세상의 권세자가 바로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불순종하기를 원하기에 우리가 불순종을 선택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불순종하는 자를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가는 것처럼 보여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세상을 초월해서 만물을 다스리는 자기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온 우주의 통치자로 내버려 두지 않고 개입하고 간섭하시는 창조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고 돌아오도록 끊임없이 촉구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4절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에 내리시매”...큰 폭풍이 일어나...

완벽하게 진행된 요나의 도주에 하나님의 간섭이 시작됩니다. 완벽하게 진행된 불순종은 무엇입니까? 바로 나의 영이 죽는 시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나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자, 택한 자들이 죄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먼저 찾아오십니다. 불순종한 요나에게 먼저 찾아오신 것 역시 하나님이셨습니다. 불순종한 자가 먼저 회개하고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의 언제나 불순종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간섭은 큰 바람, 대풍으로 오늘 요나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은 요나에게 대풍을 내리시듯 우리에게 아픔으로 다가오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가 커서가 아니라 나의 죄악이 그만큼 커서 그런 것입니다. 요나의 죄, 나의 불순종한 죄가 그만큼 컸기에 그 죄의 결과로 인생에 큰 풍랑이 옵니다.  

내가 아플 때, 징계 받을 때, 힘들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를 통해서라도 돌이키시기 위해서,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바로 잡고 싶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한 요나를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아직도 요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죄악의 땅, 쾌락의 땅 다시스로 향하는 요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대풍을 통해서라도 그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 도피선-> 훈련선으로...

자신을 유혹의 땅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도피선이 요나가 오갈 수 없도록 꼼짝 못하게 단련시키는 훈련선이 되었고, 단련선이 되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쳐버린 그것이 나의 신앙의 훈련장이 됩니다. 이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훈련의 장으로 요나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아이성 전투"를 하는데 큰 성 여리고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이 아간의 죄로 말미암아 패배하게 됩니다.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그 중에서 작은 것을 훔쳐서 자기가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간을 잡는 방법이 좀 까다롭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이스라엘 12지파 중 한 지파가 뽑힙니다. 바로 아간이 속한 지파(유다지파)입니다. 그 다음 지파 가운데 여러 족속 중에 한 족속을(세라 족속) 뽑습니다. 바로 아간이 속한 세라 족속입니다. 그 다음은 그 족속 중에서 한 가정을 뽑습니다. 바로 아간의 가정인 삽디의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 중에서 한 사람 바로 아간을 뽑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한 사람을 뽑는 과정이 복잡합니까? 하나님이 직접 한 사람을 택하실 수가 없겠습니까? 여러 과정 중에서 아간이 먼저 나와서 잘못했다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전쟁에 졌다고 하고 그리고 제비를 뽑아서 자기가 속한 유다지파가 나왔다면 당연히 사죄하고 잘못을 빌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한 번 죄를 선택한 죄인을 자신의 잘못이 추궁되어도 선뜻 인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잘못은 눈감아 버리고 다른 것을 탓하는 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조금이라도 선한 양심이 있었더라면 세라 족속이 선택되었을 때, 더 나아간다해도 삽디의 가정이 뽑혔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자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죄악중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만큼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었건만 죄인인 아간은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요나의 모습이고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잘못이 발각되어도 끝까지 가는 것이 죄인의 습성입니다. 다름아닌 사망을 주려는 마귀에게 놀아나는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룟유다에게까지 "이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하면서 그가 돌아오도록, 그의 발을 씻기시면서까지 기회를 주시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언정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후회는 해도 회개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연단이 있고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징계가 아니라 돌이키기 위해서, 회개 시키기 위해서, 회복시키기 위해서 때로 아픔도 주시고 고난도 주십니다.  

그 간섭의 첫 번째는 주위의 여건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기를 소망하는 자들은 내 주위의 환경이 어려워지면 먼저 하나님께 물을 수 있는 예민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잘못이 무엇입니까? 알려주십시오.” 

그런데 죄인의 모습은 “왜 믿는데 나한테 이런 일이 생깁니까? 왜 하나님은 나한테 항상 이러십니까? 하고 항상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을 탓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의지를 끝까지 존중하십니다. 우리가 민감하다면 하나님의 간섭의 초기에 돌이키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죄의 습성은 끝까지 가보는 것이지만 갈 때까지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알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많이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요나서를 통해서도 여러 다른 말씀들을 통해서도 끝까지 가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죄의 끝까지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대풍이 일어나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만일 공의의 하나님만 계시다면 그것은 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거의 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대풍이 불되 결코 깨어지게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죄인에게 채찍을 들지만 인자하심과 성실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내가 막대기로 그들의 죄과를 다스리며 채찍들로 그들의 죄악을 다스리리라.

그러나 내가 나의 자애를 그로부터 완전히 거두지는 아니할 것이요, 나의 신실함도 약해지지 아니하며 내 언약도 깨뜨리지 아니할 것이요,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경시키지 아니하리라.

(시 89: 32-34) 


그러나 요나가 보통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남들로부터도 자신으로부터도 의인이라고 인정받던 자였습니다. 그러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을 때에 그것은 보통 각오가 아닙니다. 쉽게 돌이켜지질 않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 번째의 움직임을 시작하십니다. 

5절: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사공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생의 프로들입니댜. 경험자이고 노련한 기술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조차 큰 바람을 두려워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이길 수 없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 바람 앞에 자기들의 능력을 버리고 자기의 신을 부르고 물건을 던짐.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지가 드러납니다. 배의 전문가, 파도의 전문가들이 감당치 못할 바람이 부니까 결국 자기들의 물건을 버리고 자기들의 신을 찾습니다. 

무당들에게 가장 큰 소득을 안겨주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아닙니다. 

재계의 거물들, 정치계의 거물들이 큰 일을 당하면 찾는 곳이 무당입니다. 그들이 배운 것이나 사회적인 품격을 보면 설마 저런 사람들이 굿을 할까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감당치 못할 일을 만나면 몇억씩 돈을 들여가며 굿을 하고 부적을 붙이고, 무당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두 번째 단계의 특징은 전문가의 사람, 내가 세상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마져도 자신을 저버림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보통의 순간이라면 이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요나는 역시 대단합니다. 

5절 B "그러나 요나는 배 밑 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그러나 요나는 (그러나 -> 요나의 이름표...(3절) , 그리스도의 이름표 그러므로, 그래서...


배 밑에서 잠자고 있다... 파도 가운데 평안해서 잠자는 것이 아닙니다 .눈 뜨고 깨어 있으면 불순종으로 인해 괴로우니까 아야 눈을 닫아 버리고 잠자는 것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까.... 하나님을 알기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합니다. 

좀 눈을 열고 상황 파악을 하면 저렇게 가만 있을 수 없는데 불순종하는 사람은 지금 파도가 자기를 삼키는 데도 잠에 빠집니다. 도무지 주위를 살피지 않습니다. 

폭풍 가운데 잠잠할 수 있는 두 사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

                                                       하나님을 전적으로 외면하는 자 


하나님의 두 번째 간섭에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 3번째 하나님의 움직임 ,,(6절: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직접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발락과 발람...-> 불순종...-> 당나귀의 입을 통해...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피조물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치욕의 순간..부끄러움,,

왜? 불순종해서 눈이 어두우니까...


6절 - 선장 : 이방인,,<복음 선포의 대상> 

이방인이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함..

선지자가 각성치 않으니까,,,, 이방인 선장을 통해서,,,

- 일어나서,,,(제발 영적으로 잠자지 말고 일어나라. 각성하라,,,) 

- 하나님께 구하라,,,  ->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


교회 다닌다고 그렇게 못살게 구는 남편이 어느날 "너 요즘 왜 교회 안가냐? 왜 요즘 안하냐?" 

그럼 얼마나 창피한 것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그런데 요나는 끝까지 저항합니다. - 요나만 그럴까요? 아간도, 유다도, 사울도, 하나님 믿었다가 실패한 자들은 우리가 보기에 아니 저렇게 될 때까지 왜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을까? 왜 회개하지 않을까? 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불순종의 길을 갑니다. 


아이들이 떼 쓰면 부모들은 아니어도 들어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키지 않으면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이길 수 없음을 알았을 때에라도 "아 내가 하나님께 안되는 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해야 하는데 이 미련한 사람은 안되는구나 하면서 무얼 선택하냐면 그냥 이대로 죽자!하녀 끝까지 죽는 길로 갑니다. 


자,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일대일의 대 전투를 시작합니다. 

나를 축복하던지, 아니 하던지 일사각오로 축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고 그의 이름이 바뀝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만 기억하면서 아, 나도 기도해서 하나님을 이겨야겠다 생각합니다. 하나만 알고 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서 야곱은 환도뼈를 상하게 됩니다. 평생을 절뚝거리게 된 것입니다. 

환도뼈가 상했다는 것은 자기의 육신적인 힘, 자기 고집이 꺾였다는 것입니다. 

바뀐 것은 야곱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야곱의 이름이 바뀌고, 야곱의 걸음걸이가 바뀌고, 야곱의 인격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바뀐 것을 가지고 "네가 진짜 이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진짜 이기는 것은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는 안 바뀌고 하나님을 바꾸려 합니다. 

그 분은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진리이신 분입니다. 그 진리는 나 때문에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진리로 말미암아 바뀌고, 내가 바뀜으로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섭 

A. 환경을 통해서

B. 주위 사람을 통해서

C. 직접 사람의 입을 통해서...


ex) 우울증에 걸린 목사님....사회는 너무 어지럽고...누구도 자기는 이해해 주지 않고... 교인들도, 아내도, 자기를 탓하기만 하고... 몸에 이상이 와서 보험도 없고 해서 한약방을 갔는데 의사가 화병이라고 합니다. 울화가 나서 몸이 제 기능을 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묻더랍니다. 

"혹시 교회 다니세요?"

차마 목사라고까진 못하고 "네 교회 다닙니다."했더랍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주변은 선생님이 아무리 불평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 스트레스 받아서 화병이 생기셨는데 그냥 두면 더 병이 커집니다. 변하지 않는 것 때문에 화 품지 마시고 하나님께 맡기세요. 교회 가서 기도하세요. 그럼 편해집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대상이 나를 권고할 때,,.

-> 하나님의 간섭, 하나님의 대상,,,


하나님이 왜 이렇게 참으시는가? 

왜 그렇게 많은 기회를 주시는가? 

그 분이 화내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오히려 내가화를 냄. 


내가 뭐기에.,,, 무슨 가치가 있기에...


-택하신 한 영혼을 이토록 사랑하심..

- 나에 대한 목적과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심...

- 나를 위해 더 큰 일이 남아있기에.,,,


기회를 주시는데 오히려 더 내려가고 잠자는 요나,,,


내 모습에 혹시 어렵거나 고통이 있는가? 

물론 마귀의 시험도 있고 믿음의 성장을 위한 훈련도 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할 때 첫 번째 살펴보아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이 없는가하는 것이다. 


내가 아플 때 -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아픈 것이다. 


난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안 아플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아프게도 하신다.

왜? 돌이키시기 위해서,,,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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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9.15 16:18

    비밀댓글입니다

  2. 소리벼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9.16 16:49 신고

    감사합니다. 본문 바로 고쳤습니다. ^^
    세심한 배려에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