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2020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올라감과 내려옴 (눅 19:1-10절)


배경 - 18장 

  • 1절: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 7절: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간절히 부르짖는 자) 
  • 9절: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바리새인) 에게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한 자 - 겸손은 자기 존재를 아는 자)  

바리새인 - 난 저들과 다릅니다. 서서 따로 기도하는 자,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자 

세리 -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18:14)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15절: 어린아기 -제자들이 꾸짖거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연약하고 부족한 자) 

  • 18절: 어떤 관리 (다른 복음서에서는 부자 청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0절: 계명을 지키는 자 (그런데 그 계명에서 1-5계명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계명을 들지 않고 6-10계명인 사람들 사이에서의 계명...

내가 다 지켰나이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그가 큰 부자이므로 심히 근심하더라. 

고린도 전서 13장 3절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없는 의는 외식이요, 교만함이요, 죄이다.

  •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구걸하는 맹인 거지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8장의 모든 비유에 해답으로 제시한 사람이 바로 삭개오이다! 

1절- 여리고라는 장소적 배경 

2절 - 삭개오 (의로운 자), 세리장 (죄인 vs 18장에 나타난 겸손한 자) 부자(사랑이 없는 자, 천국과는 먼자) 

3절 - 키가 작은 자 - 어린아기와 같은 자 


죄인과 의인이 혼합되어 있는 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자,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과 그의 선택이 흥미 진진해진다. 

 

  • 여리고성 - 여호수아때, 철의 요새 

              - 가나안 입성의 관문, 홍해-광야-가나안의 여정에서 가나안의 관문

              - 구원을 넘어서 성화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가장 큰 장벽 - 철저히 숨겨지고 닫혀진 나의 자아의 성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장면 - 여호수아 6장   

              어떻게? 침묵과 순종  마지막 7일째 - 양각나팔불고 소리치며 - 예배하며 

              다시는 여리고성을 짓지 말라...하지만 바알과 앗세라를 국교화시키려 했던 아합왕 때 여리고성 다시 지음...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고 우상숭배하게 되면 짓게 되는 성 - 여리고성, 굳게 닫힌 내 자아의 성 

              

  •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니 (4절) 

그의 간절함과 열심이 드러나는 구절. 그는 자신의 장애에 주저앉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앞에서고 앞에서도 안되니까 올라갔다. 

올라감이 없으면 그 은혜가 무언지 깨닫지 못한다. 올라가 본 자 만이 의로움이 무엇인지, 율법이 무엇인지, 죄가 얼마나 무엇인지 깨닫는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깨닫지 못한다. 구약이 없으면 신약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 세례요한이 없으면 주의 사역이 시작하지 못한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

올라감의 신앙이란 의로움을 향한 몸부림, 하나님을 향한 갈망, 죄를 이기려는 싸움이다. 

호렙산에서 40일 40야를 금식하며 하나님을 대면하는 기간이요, 동시에 광야에서 사탄을 맞닥뜨려 전쟁을 치루는 기간이다.

올라감의 신앙이란 하늘을 향하여 갈급해하고 부르짖고, 갈망하는 신앙이요, 내 영혼의 공허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신앙이다. 


  •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5절) 

올라간 삭개오에게 주님은 속히 내려오라 하신다. 그냥 내려오라는 것이 아니라 속히 내려오라는 것이다. 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여러분이 예수님이라면 삭개오에게 무엇이라 말했겠는가? 

나무위로 올라간 아이같은 자에게 "조심히 내려오라. 천천히 내려오라," 이것이 상식이지 않은가? 

그런데 성경의 구절이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면 거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주님은 속히 내려오라고 하신다. 왜? 

그 위에 머물러 있으면 갈급함이 곧 교만함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 서 있으면 남들이 다 낮아 보이고, 주님 마져도 내려다 보기 때문이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밑에 있다. 남는 것은 자기의 의로움 뿐이다. 

신앙의 열심과 교만함은 순간이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부르짖는 과부의 기도는 갈급함이고 열심있는 신앙이지만 부르짖는 것 자체가 자기 의가 되어 "남들은 왜 부르짖지 않지? 기도는 부르짖어야 하는 거야.."

거기에 자기 만족과 남들을 향한 판단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열심은 곧 교만함이 된다. 


부자 청년의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따라 계명을 지키는 것은 훌륭한 것이다. 칭찬받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다. 평안이 없다. 자기를 채우는 데는 자신있다. 

올라가는 데는 자신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려오라는 말에는 근심한다. 자기의 것을 나누어주고 주님과 함께 하지 할 때는 나서지 못한다. 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높이며 기도했던 바리새인은 거절을 당하고 자기를 낮추는 세리에게 주님은 이가 의롭다 했다. 의롭다고 인정받은 세리는 자기 집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세리를 보며 주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신다. 


내려와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여 하겠다는 것은 부자 청년에게 하신 요청과 같은 말씀이다. 

네 교만함에서 내려오면, 너를 채우고 높이고 돋보이게 하고 인정받으려 하는 것에서 내려와서 나와 함께 거하자 

이 요청 안에는 부자청년에게 하신 네가 가진 소유를 다 나누어주고 나와 함께 하자하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삭개오는 이 말씀을 듣고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6절) 주님을 영접한다,

그리고 주님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가 빼앗은 자에게 돌려준다. 


신앙은 올라감과 내려옴의 신앙의 반복이다. 

올라가는 열심이 없으면 주님을 보지 못한다. 무리를 헤쳐 그 분을 만져야 한다. 

나무에라도 올라가 그 분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열심이 나를 망가뜨리게 해선 안된다. 

그 열심이 어느덧 자기 만족이 되고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자기를 높이는 수단이 되면 그 신앙은 이미 바라새인 신앙이 되는 것이다. 


올라감이 있으면 내려옴이 있어야 한다. 

아니 내려 올 때에 진정한 은혜를 발견한다. 의를 넘어선 십자가의 은혜, 자기 의가 아닌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구원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게 오신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도 남들과 같은 자들이라고...

아니 난 남들보다 더 큰 죄인임을 마음 중심으로 고백하고 주님께 가식적인 겸손함이 아닌 자기 존재 중심의 겸손함으로 어린아이처럼 주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