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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병자 (요한복음 5장 1-15절) 


  1. 배경 

  • 유대인의 명절 (시간) 
  • 예루살렘
  • 양문 : 이중적인 장소 - 희생과 제물의 문 Vs 절기 때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 왜? 가지고 온 제물을 검사맞고 교환하고... 성전 정화- 예배를 두고 장사하는 곳. 
  • 베데스다 : "은혜의 집, 자비의 집" 이라는 뜻.


2. 문제제기 

  • 그런데 은혜의 집에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은혜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은혜를 찾을 수가 없다. 정작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3. 그들이 지금 기대하고 있는 은혜는 어떤 은혜인가? 

가끔 천사가 못에 내려올 때 물이 진동하고 그 때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것을 듣고 기대하고 있다. 


4. 이것이 정말 은혜인가? 

  • 때- 가끔 (결코 풍성한 은혜가 아니다). 백화점 경품 추천보다도 확률이 낫다. 그런데 백화점 경품은 추첨이라도 하지 이 은혜는 언제 있을지 모를 물이 동할 때에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야 한다. 그럼 이건 은혜라기 보다는 경주이다. 1등하면 상주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는 경제적 거래이지 더 이상 은혜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한 것이다. 
  • 대상- 그리고 지금 이 곳에 은혜를 기다리고 있는 대상들을 보면 더욱 은혜라는 말을 의심하게 된다. 

               맹인(보지 못하기 때문에 물이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다) 

               다리 저는 사람 (그는 다리가 불편에 경주할 수 없는 사람이다)

               혈기 마른 사람 (중풍병자, 그 역시 기력이 없어 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 놓고 눈에 불을 키고 있다가 아주 가끔 천사가 나타나 요이 땅 하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자에게 기적을 베푼다. 이건 은혜라기 보다는 정말 잔인한 게임이다. 이건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더 불가능한 확률을 가지고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만약 어떤 돈 많은 사람이 경품을 걸고 이러한 일을 진행한다고 하면 그를 칭찬하기 보다는 잔인하다고 비판을 할 것이다.  


5. 기독교인들의 믿음 

언젠가 나에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나타날 거야...(막연한 기대) 

내가 은혜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성이 모잘라서, 남보다 믿음이 없어서, 열정이 없어서 그래...

언젠가 나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거야

먼저 못에 들어간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막연한 기대를 품지만 정말 그런 은혜는 희귀한... 


6. 율법 주의자들의 신앙

은혜가 임할 때에 그 은혜를 경험하는 자들은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입니다. 무능한 사람은 절대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에 얽매인 자들의 구원관이 이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 그것도 흠없고 거룩한 율법의 완수자들이 성막이나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어린 양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릴 때에만 선택적으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은혜라는 말을 쓰기 민망할 정도로 시험보고 면접 보아서 뽑힌 영적인 엘리트들만 받을 수 있는 것이 그들이 아주 가끔 받을 수 있는 은혜였습니다. 


7. 38년된 병자

여기에 삼십팔년 된 병자가 누워 있습니다. 그는 그나마 전혀 은혜를 기대할 수 없는 자입니다. 

누워서 일어날 수 없는 자가 기껏할 수 있는 것은 물이 동할 때에 남들이 못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요 5:7)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가 38년 못에 있으면서 경험한 것은 남들이 고침받는 모습을 보거나 들은 것이 전부... 그에게는 절대로 못에 제일 먼저 들어갈 기대나 확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그가 살아가는 목적은 확률없는 기대에 의지해서 헛된 소망을 품고 매일 같이 이 곳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38년이나 지나면서 그의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고, 은혜는 메말라가고 목마름은 더해갑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남들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습니다.


(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 가데스 바데아 - 여호수아가 열두 정탐꾼을 보낸 땅. 우리 힘으로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한 땅. 

        ->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곳에 들어가리라 하며 38년을 기다리고 있는 병자의 모습과 광야 가운데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우리 힘으로 절대로 그곳에 들어갈 수 없어하면서 유리구걸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우리는 삼십 팔년이라는 그 환자의 병력에서 구약에 나와 있는 어떤 영적인 의미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가데스 바네아가 어느 땅입니까? 바로 여호수아가 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낸 땅입니다. 그들의 보고가 무엇입니까? 우리 힘으로는 그 땅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그들은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힘만을 생각하다가 가나안 땅 앞에서 38년동이나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 곳에 들어가리라 하며 38년을 기다리고 있는 병자의 모습과 광야 가운데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우리 힘으로 절대로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어 하면서 방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자기 힘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다가가고자 하는 비참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똑같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 모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이 거한 곳은 모두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 정작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은 한없이 무력하고 무능하고 연약합니다. 

야훼 하나님은 분명 존재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내 여호와가 되지 못합니다. 

남들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너무 무정하고 엄격한 분이십니다. 

 

8.  예수, 복음으로 다가오다!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주님: 자기 힘으로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38년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하며 여전히 절망하고 있는 자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이것이 복음이다! 

      은혜의 집, 베데스다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베데스다만 죽어라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열심히 달려 구원을 이루리라 베데스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은혜가 임했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열두제자에게 찾아오셨다. 그들에게 은혜가 임한 것이다. 그런데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는 그 은혜를 저버렸다. 은혜에 원수로 반응했다. 

       부활하신 후 500여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은혜가 임한 것이다. 그들 중 120명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예수님께서 약속한 더 큰 은혜를 기다렸다. 500명이 다 그 말씀을 들었는데 380명은 떠나고 120명은 끝까지 기다렸다. 

  • 네가 낫고자 하느냐? 마음 속에 낫고 싶은 소원을 일깨워 주시는 질문. 그 소원 때문에 38년을 기다림.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소원이 약해지기 시작.. 누워 있으면서 좌절도 경험... 소원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소원의 강도가 약해지기 시작. 그 사실을 알고 그의 마음의 소원에 불을 붙여 주신다. 
  • 이것이 38년된 병자에게는 얼마나 울화통 터지는 질문입니까? 

아니 그가 여기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낫기 위해서입니다. 

낫기를 포기하면 여기 나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가운데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앞에 두고 그들은 자기들은 힘이 없어 못들어간다고 포기하고 있습니다. 

38년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런데 그는 어느덧 낫기를 포기하고 그저 익숙한 공간에서 남들이 은혜받는 것을 바라보는데에 만족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왜 교회 나오십니까? 왜 신앙생활 하십니까? 

우리 영혼이 낫기를 원해서 아닙니까? 

세상으로부터 상처입고, 사람들로 부터 상처 받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상처받은 영혼 낫기를 기대해서 나온 것 아닙니까? 

아니면 아무 기대도 없이 이 자리에 와서 앉아 계십니까? 

그저 익숙해서 이렇게 하다보면 하나님이 나에게도 기회를 주시겠지 하고 앉아 계십니까? 


9. 네가 정말 낫고자 원하느냐? 

은혜는 내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오시는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경주해서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주의 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분이 오셨을 때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기 땅에 오신 예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남들의 이목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를 재치고 앞에 나와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은 도발적인 질문입니다. 자존심 상하는 질문입니다. 

아니 병낫고자 베데스다 연못에 나와 있는 환자에게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왜 이 질문을 하십니까? 

정작 은혜받으러 온 사람들이 은혜 받는 통로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익숙해져 버린 방법에 의지하다가 그저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두리뭉실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그저 난 할 도리 다한다고 자기 위안 삼으면서 자기 한계 안에서 신앙생활 하기 때문입니다. 

(요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건 자기 변명입니다. 하느라고 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요...그러는 것입니다. 


정말 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내가 익숙한 방법이 아닌 그 분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분의 소리는 무엇입니까? 


10.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변화는 변명이 아닌 순종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주신 여자가....

당신이 만드신 뱀이....

다윗 때문에...


핑계는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 입니다. 


능력은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순종할 때에 일어납니다. 


예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지금까지 그는 자리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그 자리는 38년동안 그가 의지하던 그의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에 의지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똑같이 38년동안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날 변화시키지 못하고 내 영혼을 치유하지 못하고, 내 삶에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방법을 버리고 내 말을 좀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의지하던 방법을 버리고 내 말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 아닌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38년된 신자는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우리 안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타성에 젖어 버리고, 자기 변명하기에 급급한 신앙입니다. 

어떻게든 다가가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던 우리 신앙의 어두운 과거입니다. 


은혜는 내가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오심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 분의 지시하신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오래된 병자들 입니다. 

죄악의 병에 너무 오래 빠져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 지, 빠져 나와야 될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으니....

확률은 없지만 그냥 막연히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믿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이삭을 바치기까지 순종해서 믿은 것이지 어떻게 될꺼야 하고 막연히 믿은 것이 아닙니다. 

타성에 젖어 신앙생활 하면 우리는 똑같이 38년된 병자처럼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인생을 맞이할 것입니다. 

아무런 변화없이 평생 막연하고 메마른 병자와 같은 신앙생활 할 것입니다. 

그저 원망하고 남탓 하면서 그래도 언젠간...하는 무기력한 신앙생활....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진짜 낫기를 원하냐? 네가 진짜 은혜받기를 원하냐? 

그럼 일어나라. 떠나라. 자리를 들고 안주하지 말고,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하라!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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