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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다. (요 17:6-19) 


예수님의 일생중 마지막 3년 공생애가 가장 중요하듯 공생애 중에서도 마지막 1주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 한 장면입니다. 복음서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요한복음만 해도 전체가 21장인데 12장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1주일 즉 예루살렘에의 입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북쪽 반대쪽 시골마을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그 동네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신앙의 가장 중심부인 예루살렘에, 마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의 행차와도 같은 입성은 얼마나 흥분되는 장면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수많은 인파의 환호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왕의 입성이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소문으로, 혹은 기적을 통해 만났던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면서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왕을 환호하는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덩달아 신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심정은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도 그리 신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 당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길, 그리고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동안 방황하고 넘어질 제자들을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추스리기조차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축제와 환호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루살렘 입성의 장면은 4복음서에서 다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누가복음 19장 41절에는 다른 복음서에 표현되지 않은 예수님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눅 19: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예수님은 수많은 인파가 환호하던 말든, 제자들이 덩달아 신나하던 말든 예루살렘에 들어온 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파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첫번째 성만찬을 행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는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제자들에게 "이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하시면서 가룟유다를 바라보시면서 슬퍼하셨고 또한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설교를 행하시는데, 14장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하시는 말씀과 15장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고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곧 가더라도 곧 성령이 와서 함께 할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새 계명은 곧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서로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더라도 성령 안에서 제자들 사이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이룰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룟유다에 의해 로마 병사들에게 끌려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이 바로 17장 예수님의 기도장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전체가 다 예수님의 기도로 이루어진 장입니다.  

물론 이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시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준 적이 있지만 그것은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라면 17장에 나와 있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에 드렸던 기도입니다. 

이른바 대 제사장의 기도라고도 불립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읽은 6절부터 19절까지의 기도는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는 기도입니다. 


왜 그들에게 중보가 필요합니까? 

이제 까지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가르치시면서 함께 하셨는데 이제 예수께서 잡혀가시면 당장 그들에게 닥칠 혼란과 고난, 방황이 있음을 아시면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도에는 마치 어린 자녀들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나거나 다시 못 올 먼 길을 떠나는 부모의 심정,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심정이 절절히 녹아 있다. 

제자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시는가? 

  •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6절)  -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은 세상의 사람들과 그들과 다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람들을 완전히 구분한다. 

분명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의 이름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 

공생애 3년동안 구석구석 누비면서 예수님은 때론 수많은 무리에게, 때론 한 영혼, 한 영혼을 찾아다니면서 천국의 복음, 영생을 전하셨다. 

그런데 이제 십자가를 앞에두고 자신에게 주어진 영혼과 여전히 세상 속에서 나오지 못한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시면서 원래 아버지의 것이었던 하나님의 자녀들, 내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다 전했고, 그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6절)

어떻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이 기도 후에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가고, 흩어질 것을 이미 알고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완전하기 때문인가? 그들이 곧 돌아올 것을 아셨기 때문인가? 

예수가 뿌린 씨앗, 말씀의 능력을 믿었고,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9절) 

그들은 누구인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 아버지의 것. 

예수님이 계속해서 하신 일 - 영생을 전한 것.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는 것. 사람의 영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 복음,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스도의 사랑. 

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곧 영적인 기쁨일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의 공급처이다. 영육간에 주어지는 은혜이다. 

지난 주에 나눈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영적인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 

오직 주의 살과 피로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땅의 것만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자들은 그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을 떠난다. 오직 몇몇의 제자들만이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우리가 뉘에게로 가오리까?"하며 예수님께 남아 있는다. 그것이 제자이다. 


떠나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주님이 말한 하나님의 것이 아닌 세상의 것,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께 더 큰 것을 기대하며 나온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27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로 인해 육적인 갈급함이 채워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신의 육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하루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이 세상의 풍요만을 위해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습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것만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진리를 얘기해도 자신의 정욕으로만 가득 차 있는 그런 사람들은 생명의 떡을 말하는데도 계속해서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기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당신의 피를 먹으라고 그 피를 먹어야만 너희가 죄에서부터 자유를 얻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셔도 여전히 오병이어만을 기대하며 물고기와 보리떡만을 바라보고 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그런데도 주님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세상이 있고 정말 아버지의 것,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무엇인가? 결국 자기 배를 채우고, 이 땅의 것을 위해서만 신앙생활 하려는 것. 자신의 행복, 자신의 목적,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신앙을 가지는 것. 

결국 무엇인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만 뭉쳐져 있는 신앙, 그것의 다른 이름은 우상숭배요, 불신앙이고 세상이라는 것이다. 


(요일 2: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I.m Spiritual but not religious

많은 사람들, 난 예수는 믿는다. 그런데 너무 광신도는 싫다. 결국 예수믿는 다는 것은 행복하게, 사람답게, 착하게 살기 위한 것 아니냐? 

그럼 남들에게 피해 안주면서 잘 살면 되지 꼭 교회 가야하느냐? 

그들의 첫째 우선순위는 가정, 직장, 공부, 취미 생활.... 땅의 신앙으로 가득찬 세상. 이것이 땅의 신앙이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신앙이 이렇게 생명의 떡의, 예수님의 살과 피의 신앙이 되려고 할 때 많은 수많은 무리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육신의 행복을 위하여 믿었던 신앙이 참 영원한 나라의 영생을 위한 신앙으로 바뀌어 갈 때 수많은 무리들이 흩어져 버립니다. 배부르기 위하여 예수님을 단지 부분만, 순간만 의지하려는 신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하고 우리의 삶의 전 영역을 예수와 연합하는 삶으로 가고자 할 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도망을 쳐 버립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6절) 

666- 짐승의 표-> 땅의 신앙. 세상의 신앙. 


  • (요 17: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들을 세상에 놔두고 와야 하는 마음. - 그들을 보호해 주십시오. 서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절: 그들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들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하나님을 다 믿었어도 땅의 신앙, 세상의 신앙으로 믿는 자들은 무엇인가? 결국 멸망의 자식들이라는 것. 이것이 성경의 진리.

이들은 영적인 자녀들을 미워한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14절) 

육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영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서로 속할 수도 없고 속하지 않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은 그러한 영적인 자녀들을 세상에 남겨 두어야 하는 것. 왜?  계속해서 영적인 자녀, 영생의 자녀들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 (요 17:15)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왜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시기를 기도하는가?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면 우리 믿는 자들도 세상을 미워하는가? 같이 미워하면 발생하는 것이 분노이고 곧 죄이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 곧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다. 분노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악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중보-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17절) 

- 신앙인의 삶의 기준은 오직 말씀 안에서 거룩해 지는 것. 거룩함으로 세상을 이겨라. 선으로 악을 이겨라.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본이 되어라. 세상을 섬겨라. 빛과요 17: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라. 

왜 그래야 하는가? 

그것을 통해서 한 영혼 이라도 영생을 얻게 하려고. 구원하려고.  

단지 도덕적인 우월감을 위해서가 아니다.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나 아무리 본이 되어도 결코 섞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 결코 하나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까지의 고민. 

예수의 사랑만 있으면 변화되지 않을 영혼이 있을까?

어떤 영혼이라도 주님의 사랑 가지고 나아가면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끝까지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자기만을 위해서, 땅의 것만을 위해서, 높아지기 위해서만 믿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이 오히려 참으로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시험하며 고난에 빠뜨린다. 

그러나 16장 가장 마지막 절 예수님의 선포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믿는 자는 세상을 이긴다. 영생을 바라보는 자들은 하루 하루 사는 자들을 이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참 신앙인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하신다. 


물론 이 기도 후에 제자들은 큰 시험에 빠진다. 

흩어지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로 떠나고, 문을 잠가두고 세상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었고, 믿음을 지켰으며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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