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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난 사람 4. 바디메오 (막 10:46-52)

 

동방정교회에서 시작되어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기도

Jesus Prayer - 예수 기도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떤 순례자가 성경을 읽다가 "쉬지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의 말씀을 읽고 어떻게 하면 계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하면서 스승을 찾아 헤메었다.

누구를 만나도 기도에 대한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하고 헤메이던 그에게 어떤 수도사에게서 길을 걸을 때나 어느 때던지 호흡과 같이 이 기도를 계속적으로 반복하거라. 그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 말을 신뢰하지 않고 길을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 스도자가 말한 대로 호흡과 더불어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를 계속적으로 되뇌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다 말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머리속으로는 이게 도대체 뭐야....

그렇지만 길을 걷는 순례자로서 걸음걸이에 맞추어 호흡에 만주처 계속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 를 되뇌이다.

그 짧은 기도의 한 마디 한 마디의 의미가 머리 속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예수, 하나님의 아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토록 멀리 있게만 느껴지던, 아니 아무리 느끼려고 해도 느껴지지 않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강하게 임하게 되고

그 분께 내 영혼을 의탁하고 은혜를 구하는 간절함이 가슴에서부터, 아니 영혼에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예수 기도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바디메오의 기도이다.

이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나다나엘 - 바돌로메 - 돌로메의 아들

바디에모 - 디메오의 아들 -, 디메오, 혼돈, 불결,

그리고 실제 그의 처지 - 거지이고 동시에 맹인..

 

그가 길 가에 앉아 있다.

길 가에 앉아 있다. 길 가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 13: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 13: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말씀이 뿌려져도 악한 생각, 악한 습관, 악한 행동이 그러한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리니 존경받아야 할 자가 거지가 되었고 명예로와야 할 자가 장님이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이 단절된 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길 가에 앉은 신앙인이 어느 날 나사렛 예수가 지나신 다는 소리를 듣는다.

같은 사건을 다룬 누가복음 18장 36절에 보니까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이 무슨 일인가 묻는데 그들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얘기를 하니까

소리를 질러 예수를 부르기 시작한다.

 

특별히 마가복음의 본문에서 이 바디메오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가복음은 전체가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간인 8장에 베드로의 고백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아니이다. 라는 고백이 나온다.

 

이 고백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로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질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8장과 10장을 걸쳐서 세 번을 말씀하시는데

1. 첫번째 십자가와 부활 예고 (막 8:31-32)

  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2. 두 번째 십자가와 부활 예고 (막 9:31-32)

  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왜 묻지 않는가? 관심이 없기 때문에...그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그 일은 내가 싫어하므로....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복음은 이미 우상숭배이다. 샤머니즘이다.

 

3. 세 번째 십자가와 부활 예고 (막 10:33-34)

-> 반응이 없음. 무시

세 번째는 제자들이 아무 반응이 없다. 그냥 으례 하는 이야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 반응이 없는 것

아픔이 있어도 반응하지 못하는 병,

불에 디어도, 살이 썩어도 반응하지 않는 병- 문등병. 죄악의 병, 저주의 병

 

주님은 점점 더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데 죽음을 향해 가는데, 제자들은 처음엔 항변하다가, 묻기를 두려워하다가, 급기야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육적 반응은 어떠한가?

처음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주님을 위해 또한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고 그 밑에서 함께 동거하며 살고자 했다.

두 번째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두고 다투었다.

오늘 세번째 제자들은 은밀히 주를 찾아와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기를 간청한다. 마가복음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라고 나와있고 마태복음에는 그들의 어머니가 은밀히 와서 청탁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죽으러 가는데 이들은 계속해서 살고자 하고 계속해서 높아지고만 하고 그것도 점점 더 은밀해져가며 부정한 방법으로 거래를 하려고 한다. (세상의 방법으로 높아지려 하는 것)

 

46-52: 이해 못하고 자꾸 어리석은 길로 가는 제자들과 달리 그 마침은 항상 뜻밖의 이방인의 구원의 이야기라 마무리 합니다.

맹인거지 - 바디메요... 길 가에 떨어져 예수의 말씀과 떨어져서 결국 혼돈과 불결한 삶으로 전락하여 거지가 되고 맹인이 된 자-> 제자들의 현제의 모습이 아닌가?

 

눈은 보이지 않지만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면서 예수가 곧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한다.

 

큰 자 되게 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우편에 좌편에 세워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메시야를 아는 사람들의 고백,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소리 지르는 바디메오에게 제자들은 꾸짖고 잠잠하게 하신다.

이미 어린아이들이 달려드는 것을 꾸짖은 적이 있던 제자들이다.

예수님을 향해 이처럼 달려드는 자들을 왜 꾸짖을까?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도 더 높은 자리, 더 가까운 자리를 요구하는데 그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소리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가 멈춘다. "머물러 서서"

예수를 멈추게 하는 소리는 무엇인가? 바디메오의 부르짖는 기도였다. 더욱 소리지르는 그의 간절함이었다.

예수를 멈출 수 있는 기도를 해 본 경험이 있는가?

한나처럼 간절히 기도해 보았는가? 그 메어지는 가슴과 구원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 보았는가?

 

"그가 너를 부르신다"는 소리에 바디메오의 행동은 어떠한가?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자신을 숨기고 있던 감추고 있던 모든 겉옷을 벗어던지고, 죄악을 회개하고, 드러내고, 예수께 나아온다.

죽은 나사로를 막고 있던 돌을 굴려 옮겨 놓듯, 칭칭감긴 붕대를 풀어재끼듯, 자신을 감추어 놓았던 겉옷을 벗어내놓고 예수께 뛰어 일어난다.

 

그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인가? 보기를 원한 것이다.

 

진리를 알기 원한 것이다.

 

눈을 떠도 장님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제자들의 모습이 장님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누구보다 예수 가까이에 있으며 그가 하신 말씀을 듣지만 애써 외면하고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본 제자들....

 

지난 시간에 나눈 나다나엘 - 네 속에 간사함이 없다. 누구를 빗대어 하는 말인가?

헤롯 성전에서 로마의 힘과 권력에 기대어 사는 종교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 안에 흡수되어 버린 바리새인들이 나다나엘과 반대편에 있던 간사한 자들의 무리라면

지금 바디메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은 바로 그 나다나엘을 비롯한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다니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과 동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길로 간다.

또 다른 간사한 자들의 무리가 되어 버린다. 왜?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멀게 헀는가?

높아지려고 하는 탐심이 누가 높냐를 두고 그들을 싸우게 만들고

은밀한 거래를 통해 취하는 세상의 방법을 취하게 했다.

 

그런데 바디메오는 바로수 주님의 소리를 듣고 소리지른다.

높아지게 해 달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남들이 모라하건 소리 지른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옆에 두고도 장님된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비로서 자기의 이름을 되찾는다.

그리고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죄악의 옷, 탐심의 옷, 은밀한 죄악의 옷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된다.

 

예수를 만난 바디메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