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2019  이전 다음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여호수아 9장 - 기브온과의 화친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골 골짜기에서 아간이 죄를 회개함으로 다시금 하나님께 묻고 순종함으로서 패배했던 전쟁에서 승리한 장면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순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에발산에 올라 그 옛날 모세가 당부했던 그 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에발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나누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심 산과 에발산에 올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순종과 불순종, 축복과 재앙에 대한 말씀을 민족적으로 함께 나누는 장면을 나누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애굽에서부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삶에서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그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산 체험을 통해 점차 말씀의 사람으로 변모해가는, 성화되고 성숙되어져 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듭 말씀 드리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삶, 성화의 삶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늘 유혹이 우리를 순종치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9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과 기드온 민족의 예를 통해 누가 진정 믿음의 사람인가?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1. 승리 뒤에 오는 악한 세력의 방해 

1절: 이 일 후에 - 이 일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성에 이어서 아이성마져 무너뜨린 이 사건 이후에 가나안의 모든 족속이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이제 이들 모두가 힘을 합쳐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합니다. 


2절: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NLT 성경) These kings combined their armies to fight as one against Joshua and the Israelites.


우리가 은혜를 맛 볼 때에, 신앙적으로 성숙되려 할 때에 사탄의 방해는 더욱 심해집니다. 

이러한 영적인 세계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신앙 안에서 무엇인가 결심을 할 때 방해가 나타나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구나 오히려 확증을 하고 그런 방해와 유혹과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 무감하면 이런 방해가 올 때에 아직 때가 아니구나... 나중에 해야지, 하면서 미루다가 결국은 전진하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 걸음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서 성숙하려 할 때에 사탄은 더욱 방해한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사탄은 분열의 영이기 때문에 그 특징이 자기들끼리도 잘 합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 단합하느냐? 믿음의 방해꾼이 될 때에 그들은 하나가 됩니다. 

예수를 죽이고자 할 때에 절대로 합치될 수 없었던 헤롯당과 열심당이 하나가 됩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하나가 됩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절대로 합치될 수 없는 집단들인데 예수를 죽이려는 목적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 기브온 주민  

(수 9: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기브온 주민들은 가나안 여러 족속들 중 히위 족속에 속해 있는 한 마을의 주민들입니다. 

가나안 전체가 지금 하나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치려 하는데 유일하게 기브온 주민들은 꾀를 내어 이스라엘과 화친하는 일을 선택합니다. 그러면서 의복과 음식과 모든 짐들을 다 헤어지게 하여 그들이 먼 곳에서 왔음을 강조합니다. 

6절에도 보면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9절에도 보면 "우리는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왜 그들은 먼 나라에서 왔음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신명기 20장 10-18절 

신 20: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신 20: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신 20: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한 이스라엘 민족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말씀 까지도 철저히 연구한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요구는 무엇이었습니까? 

당신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3. 여호수아의 실패 

여호수아는 바로 이 전 장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큰 실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드온과 화친할 때에도 똑같이 묻지 않고 행하다가 그들의 꾀에 넘어 가 화친을 허락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들의 잘못을 꼭 집어서 14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 9: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언제 실패하는가? 만약 이 일이 거꾸로 강대국 사람들이 와서 위협하며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라는 요구였다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엎드렸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들이 와서 엎드려 종이 되게 해달라고 하니까 그들은 묻지 않고 그들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그들은 왜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까? 

정탐꾼의 말이 이 전투는 너무 쉬운 전투다 하니까 묻지 않고 올라간 것입니다. 

어려운 일 앞에선 기도하지만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나에게 보탬이 되는 일에서는 우리가 그 영광을 취하려 합니다. 신앙의 실패는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까지 기록한 것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그들의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가지고 종이 되고자 찾아온 자들에 대해서 총체적인 영적인 부재를 드러냅니다. 


  • 분별력의 부재- 사신들의 외모를 보고 판단함. 낡고 기운 옷차림- 대표자의 자격이 아니다 

                        어느 나라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먼나라라고만 함. 

  • 기도의 부재-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14절) 
  • 순종의 부재 - 출애굽기 23장 - 가나안 어느 민족과도 언약하지 말라. 그것이 너희의 올무가 되리라.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마땅히 정복해야 할 땅을 정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듣지 않아도 될 원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18절 b)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그들은 하지 말아야 할 원망, 40여년의 광야 생활의 원인이 되었던 원망의 삶을 또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수 9:23)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수 9: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수 9:25)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4. 약속 이행  

이 계약에서의 거짓을 저지른 쪽은 분명 기브온 주민들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을 저주하여 하나님의 집에서 대대로 일하는 자들이 되게 합니다. 

계약은 쌍방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쩌면 거짓으로 임한 계약에 이스라엘이 파기할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25절에 보면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앞에 바짝 엎드려서 "당신의 의향에 좋은대로 행하소서"하고 처분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을 저지른 그들을 죽여도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19절에 나와 있지요 

(수 9:19)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기브온 사람들은 거짓을 범했지만 그들의 거짓 유무와 상관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침범치 않기로 맹세했기 때문에 고민할 것 없이 그들을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이었습니다. 


야곱을 축복한 이삭...그 축복을 거두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입다....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 앞에서 자기의 딸을 내어 놓습니다. 


시편에 보면 반복해서 나온 구절은 "내 서원을 지키고...."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자기 사정을 핑계로 지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환경이 변하고, 사정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해로울 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5. 기브온의 축복 

기브온은 거짓 화친으로 말미암아 여호수아로부터 저주를 받게 됩니다. 

야곱이 이삭의 축복은 받았어도 그 거짓의 대가로 라반의 집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해야만 했듯이 기브온 사람들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자기 동족 가나안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어제까지 가족이요, 친구였던 그들과 이제는 상종조차 못하는 원수가 된 것입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10장에서 이스라엘을 치기 전 이 기브온을 치기 위해서 힘을 모아 공격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기브온 백성들은 자기 동족에게 배신자라고 낙인 찍히고, 이스라엘 민족에겐 종이 되는 그런 불리한 조약을 스스로 채결한 것입니까? 

그것이 사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종이 될 지언정 그것이 그들에겐 살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주민은 히위 족속에 속한 주민들입니다.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자녀입니다. 저주받은 민족이요,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가능성이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가나안 족속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나눌 10장에서 가나안 족속들은 기브온 민족들을 치기 위해서 연합하여 그들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종이라고 저주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그들을 구해냅니다. 

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가나안의 연합군을 맞써 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유명한 사건, 태양을 멈추게 하여 가나안 연합군을 멸하게 하십니다. 기브온의 땅에 태양마저 멈추어 전쟁을 도운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할 때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되었고(수18;25), 이후 레위인의 성읍으로 지정되었습니다.(수21:17)

하나님의 집에서 나무나 패라던 족속이 정말로 레위인이 거하는 성읍이 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실로가 함락되자 하나님의 성막이 이 곳 기브온에 옮겨져 오게 되고 솔로몬은 이곳 기브온 산당에서 그 유명한 일천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 이들은 이방민족이면서도 더불어 예루살렘 재건에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종에서 성전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수 10: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그들은 영원한 삶을 위해 현재의 지위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기보다 약한 민족의 종이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종이 되기 위해서 자기 민족들로 부터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저주받는 일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고 

가나안의 저주로부터 벗어났고

레위인이 거주하는 장소가 되었고, 성막을 맞이하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고 일천번제를 드린 축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의 실패를 맛보고도 또다시 자기의 유익 앞에서 묻지 않고 행하다가 하나님의 질책을 받습니다. 

자기 유익 앞에서 신앙의 길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유익을 벗어 던졌습니다. 

스스로 종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누가 참 신자입니까? 누가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