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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8장 - 아이성 전투 2, 에발산의 예배


지난 주 여호수아 7장은 여리고성 전투에서 승리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아간의 죄가 발각이 나고 아골골짜기에서 심판당하는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

여호수아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거듭남 이후에 성화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영적인 일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출애굽기가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는 사건을,  홍해를 건너는 세례사건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듭남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만나와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성막을 통해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께서 사탄에게 시험 받을 때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 4:4)  하신 것처럼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려는 사람입니다. 

말씀과 예배는 거듭난 신자라면 당연히, 그리고 최소한 행해야 하는 거듭난 자들의 삶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본격적으로 성화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거듭나는 사건은 한 번이지만 성화의 사건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수행해야 하는 매일 매일의 전투요, 매일 매일의 순교입니다. 


거듭남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사탄과 세상과의 영적인 전투라면 성화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닌, 우리 안의 내 자아, 내 죄된 타락한 본성, 내 성품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변하고 반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데 우리가 반응하고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바로 우리가 마음 문을 닫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의 전투는 바로 이 내 마음을 여는 전투입니다. 나를 정복하는 전투입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그런데 한 번 은혜 받고 내 자아가 깨졌다고 해서 우리의 자아는 그냥 무너지지 않습니다. 끊질기게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도록 순간마다 우리를 걸고 넘어지며, 우리를 자꾸만 과거에 얽매이게 합니다. 


  • 7장의 아이성의 전투는 여리고를 정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다시 실패하는가?를 다룬 신앙인의 실패를 다룬 장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7장의 내용을 아이성, 아간, 아골 골짜기라는 세 주제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아이성의 의미는 황폐한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산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장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을 받고, 열두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소입니다. 

아이성의 패배는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에 일어난 패배였습니다. 

신앙인의 실패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일을 벌이다가 일어납니다. 

여호수아는 다른 때와 달리 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로 움직입니다. 저 곳은 쉬운 곳이니 군사 이삼천만 데리고 가면 된다는 말에 묻지 않고 가다가 혼비백산합니다. 


상황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해야 할 우리의 신앙이 황폐해 질때에 실패가 임하고 고통이 임합니다 .


아간은  곤란이라는 뜻입니다. 왜 곤란해졌습니까? 정욕과 탐심때문입니다. 

승리했던 신앙은 결국 탐심으로 인해 곤란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가로채다가 아간은 심판을 당합니다. 

외투 한 벌과 금덩이로 구원의 은혜를 맞바꿉니다. 


신앙인의 실패 두번째는 정욕입니다. 우리는 떡으로 사는 삶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삶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시 떡으로 인해 말씀을 버리면 결국 우리의 삶이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탐심은 무엇입니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탐심이 아닙니다. 

필요치 않은 것을 욕심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탐심과 욕망에 진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36명으로 인해 마음이 녹아집니다. 

작은 손해가, 작은 고통이 자기를 지배합니다. 무너집니다. <->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 <-> 별 거 아닌 것에도 무너지는 것  

 

과거에 집착합니다. 애굽이 더 좋았더라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 광야가 더 좋았더라고 불평합니다. 

탐심의 결과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은 언제나 가장 크고 과거는 언제나 살기 좋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신앙은 현실을 이기라는데 불신앙은 현실이 항상 가장 최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골 골짜기 곤경과 고통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 이제 8장입니다. 8장은 회복의 장입니다. 회개한 후에 일어나는 은혜의 장입니다. 

수 8: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회개 이후에 주어지는 은혜: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까?  상황이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세워지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빛이 비추이게 됩니다.  


군사를  거느리고 올라가 : 정탐꾼이 했던 말? 이삼천명만 데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쉬운 싸움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싸움이다)

오직 거기서 탈취한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전부 불사르거나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 

아이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 오직 침묵하고 나팔을 부르고 부르짖으라. 


- 왜?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가?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주시는 말씀이 다르기 떄문입니다. 문제마다 해결책이 다릅니다. 

우리는 겉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을 꿰뚫어 보신다. 정확한 해결책을 아신다. 


7장의 전쟁: 묻지 않고 스스로 정탐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행하다가 실패한 전쟁 

8장의 전쟁: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여호수아가 명령하고 백성이 따른 전쟁 

여리고성은 낮에 침묵하며 성을 돌다가 나팔이 울리면 소리질러 무너뜨린 전쟁 

아이성은 밤에 매복했다가 낮에 돌격하는 전법 


여호수아가 전쟁을 걸면 군사들이 나와 그들을 쫓을 것이고 그러면 매복한 군사들이 성으로 들어가 점령하여 성을 불태우라. 

-> 성 안에 있는 군사들의 숫자가 많았다. 

정탐꾼을 속인 것이다. 정탐꾼이 보지 못한 군사들의 숫자가 많았다. 


10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수아서를 통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구절. 믿음은 행함으로 하는 것이다. 성실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아이성왕의 대비 - 

일찍이 일어나 (14절) - 그들은 잘 준비하였다. 그들 역시 성실하게 전쟁을 준비했다.

정한 때에 싸우려 하나 (14절) 그들은 전쟁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복병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 만이 안전하다.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17절) 그들은 동맹군도 있었다.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 하였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 

  •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18절) 
  •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6절) 

-> 마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산에 올라 손을 내리지 않은 것처럼 단창을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진멸시키려 했던 아이성의 모략이 결국 그들이 진멸되는 사건으로 끝이 났다. 


  • 에발산에서의 율법낭독 

아이성과의 두 번의 전투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첫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패배였고, 두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승리가 더 기쁘고 신났던 것은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성 자체를 제외한 성안의 모든 귀한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쟁에 참가했던 3만명의 군사들은 저마다 아이성에서 취한 값진 전리품들을 손에 들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개선행진을 하며 돌아오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고 나머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도모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때에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뜻밖의 일을 행한다. 

 바로 에발산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전쟁을 기뻐하고 축하하기 전에 사람들을 모두 모으고 굉장히 엄숙하고 진지한 예식을 하나 행합니다. 꽤 멀리 떨어진 에발산까지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을 다시 세웠습니다. 

 

(신 27:1)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신 27:2)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신 27:3)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신 27:4)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신 27:5)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신 27:6)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 27:7)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신 27:8)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승리에 때에 그들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하나님과 맺은 하신 언약을 기억했다. 

33절 모세의 명령을 재반영

온 이스라엘과 장로들과 관리와 재판장들이 본토인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궤 좌우에 섰다.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다.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고 명령한 것이었다. 

34-35절 율법의 낭독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낭독하였다. 곧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였다.


특별히 다듬지 않는 돌 위에 단을 쌓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제사를 원하심은 인간의 인위적인 가식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순수함 자체를 받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고 온전한 제사를 원하신다. 불순물이 첨가되어 부자연스럽거나 온전하지 못한 제사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출 20:25)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에발산에 세워진 제단 위에서 번제와 화목제, 그러니까 참된 헌신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본격적인 언약예식에 들어갑니다. 우선 여호수아는 돌 위에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다시 기록하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왜 그렇게 이미 있는 율법을 다시 기록했고, 또 백성들에게 그 지루한 과정을 모두 지켜 보게 했을까요? 


이것이 이야기해 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지게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저주로 채워지게 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언약 안에서 사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모양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심 산에 세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에발산에 세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애석하게도 복된 쪽만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쪽은 받아들이지 않을 방도는 없습니다. 34절을 보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데요. 지금 전쟁에 승리해서 한 껏 기쁨과 흥분 속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모아놓고 여호수아는 ‘율법책이 기록된 모든 것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듣는 일은 참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그것은 승리의 기쁨을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겠지요. 그러나 저주의 말씀을 듣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런 기쁨과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일입니다. 


축복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려주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모두 불편하고 힘들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주의 말씀이나 경고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없고, 듣는 사람도 그 말씀을 유쾌하게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성도들을 마치 소비자나 고객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교회들 안에서는 죄에 대한 이야기,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위로와 축복의 말씀만 넘쳐나고 있지요. 그래서, 교회 안에는 항상 가벼운 웃음 소리와 부담 없는 걸음들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참으로 성도들을 사랑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성도들을 그리심 산 앞에 뿐만 아니라 에발 산 앞에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의 말씀 뿐만 아니라 저주의 말씀도 들려주어야 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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