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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0장 - 도피성 


  • 2절: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 

(출 21:12)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출 21:13)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 십계명을 주실 때에 주신 말씀. 

출애굽기 21장에 처음 언급하며 이후, 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 그리고 여호수아 20장에 각각 언급 


  • 대상: 부지 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

(신 19:5)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 목적: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3절)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가 율법의 원칙 (동해 보복벅) 

친족이 자기 친족의 권리를 물을 수 있다. (고엘제도) . 

율법은 동해 보복법과 고엘제도를 통해 피살자의 친족은 그 죽은 자를 대신하여 합법적으로 피의 복수를 할 수 있다. 도피성은 합법적인 재판이 공개적으로 열려서 정확한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보복하려는 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읍이다. 

일단 도피성으로 도피하면 도피성은 그를 내어주지 않고 보복자는 따라 들어올 수 없었다. 


  • 위치: 7-8절- 어느 지파든지 반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도록 각각의 가장 가까운 처소. 

(신 19: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가장 가까운 장소에 길을 닦아 누구든지 쉽게 올 수 있도록 도피성을 마련 (누구든지 하루 길 안에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어진 말씀에 보면 도로의 각 교차로마다 이정표를 세워 도피성의 위치를 정확히 알리도록 하였다. 


  • 운영방법 (4-6절) 

문 어귀에서 자기의 사건을 말하고 그들은 성읍에 받아들여 그 곳에 거주하게 한다. (고백, 회개) 

누가 와도 내어주지 않는다. 

재판으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가 확정되면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에 거주하여야 한다. 그 이전에 나오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예표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자유케 되었다. 


  • 도피성과 그리스도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도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모두를 위한 곳 

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리 가까와도 도달하여 들어와야 한다. 


차이점: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자만? 누구든지가 예수 그리스도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 

            대 제사장이 살아 있을 동안만? 그 대제사장은 영원히 죽지 않는 구세주. 

            

우리는 여기서 율법과 은혜의 원칙을 본다. 복음을 순종하고 믿는 자는 결과적으로 그의 죄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행한 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사탄에게 속아서 범죄한 것이 되며 모르고 사탄에게 종 노릇 한 것이 된다.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자, 고의로 죄를 짓지 않은 자  

예)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긍휼은 입은 것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였다(딤전 1:13).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도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 그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 같은 사람을 도피성으로 피하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 그러나 우리는 믿으면서도 고의로 죄를 지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신앙 안에서 우리가 짓는 죄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영이 고의로 짓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의해서 영이 영향력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 탕자 -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 그러나 그가 깨달았을 때에 멈추지 않고 돌이켜 회개했다.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은 고의로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다. 이들은 사탄의 고의적인 죄에 동참한 자들이므로 그들의 죄가 고의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에는 죄를 용서하는 은총이 있을 뿐 아니라 범한 죄를 의도성 없는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녀가 아버지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 하자. 그런 경우 나중에 아버지께 돌아와서 회개하며 잘못했다고 할 때 아버지는 그의 죄를 용서한다. 용서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그 자녀의 죄는 당시 철이 없고 너무 어려서 잘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10년이고 20년이고 그가 회개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그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의 과거의 죄는 고의적인 것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도피성이 어떤 죄인이라도 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된다.


게데스는 성소 혹은 거룩을 의미하고, 세겜은 어깨, 헤브론은 교통, 베셀은 요새, 라못은 높은 곳, 고지(高地), 골란은 기쁨 또는 환희를 뜻하는데,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 또는 성소이시며(요 2:19), 정사를 멘 어깨와 같으시고(사 9:6), 아버지와 사귐을 갖게 해주시는 분이며(고후 5:18-19), 신자들의 피할 요새시며(시 91:2), 높은 하늘에 앉게 해주시는 높은 곳이며(엡 2:6), 기쁨(롬 5:11)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도피성이시라는 말이다.


죄인이 살기 위해서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이는 그가 도피할 곳의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 자신의 사고를 고백하는 것이다. 


  왜 땅의 분배를 마치고 이 도피성을 세우는가? 

            진정한 안식은 땅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땅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사망의 골짜기가 된다. 

            아무리 험한 땅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으면 안전하다. 

            참된 피난처는 우리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