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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8장 (실로의 회막과 베냐민 지파)

  • 길갈에서 실로로 

길갈 (광야 땅) : 굴러가다. 넘어가다. 

          지금까지 회막이 있던 곳. 

          할례를 행하고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여 열 두 돌을 세워 놓은 곳. 

          수치가 굴러가고 죄가 굴러가고 가난이 굴러 간 곳.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한 곳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 (요단 동쪽) 

          유다, 요셉 (에브라임, 므낫세 반)지파가 땅을 기업으로 받은 곳. 

          

실로: 가나안의 중심지, 이 때부터 사무엘때까지 성막이 머무는 곳. 

        정복시대에서 가나안 통치의 시대. 그리스도를 가나안 땅의 중심으로 모심. 

        

  • 분배를 하다말고 성막의 처소를 옮긴다. 

왜? 분배를 가지고 불만을 제기하고 분배를 받으러 나오지조차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면 불평과 피곤함이다. 

왜 불평과 피곤함이 생겼을까? 

인간적인 이유를 대면 하나 둘이 아니다. 

첫째, 그들은 쉴 틈이 없었다. 애굽에서의 종살이...40년간의 광야생활 7년간의 가나안 정복....

큰 일 뒤에 또다른 일이 항상 생겨났다. 

그들의 육신은 한계에 다달았다. 

둘째, 그 긴 여정끝에 얻은 땅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였다. 왜? 

땅은 작아 보이고, 또 들어가서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야 했다. 땅만 얻으면 될 줄 알았는데 또 힘든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이유는 한가지다. 말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단강을 건널 때 등장했던 언약궤가 긴 전쟁과 분배의 과정 속에서 잊혀졌다. 예배를 잃어버리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호수아는 문제의 중심을 알았다. 피곤함이 문제가 아니라 예배가 실종된 것이다. 불평의 근원을 알았다. 환경에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길갈에 있던 성막과 언약궤를 옮겨 실로에 세운다. 여호수아 때 세워진 실로의 회막은 사무엘 때까지 그 곳에 거하게 되고 다윗 때 헤브론 성전으로 옮겨진다. 


1절의 끝을 보면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그 중간에 "비로서"라는 말을 넣어 보자. 

땅을 정복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정복의 완성은 회막을 세웠을 때에 "비로서" 완성된다. 

10명의 문등병자... 고침을 받은 자 가운데 단 한 명만 예수께 나와서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 

그 때 그는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그 땅이 비로서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라는 의미이다. 


성을 무너뜨리고, 왕을 죽임으로 그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예배할 때에 비로서 그 땅이 정복되었다. 

그들이 정복한 것이 아니라 땅이 정복되었다.

우리는 땅은 가만히 있고 내가 움직여야 땅이 정복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 할 때에 땅이 정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할 때 복이 되는 것이다.



  • 땅을 분배받지 않은 일곱 지파 

왜 그들은 땅을 분배받지 않는 것일까? 

1) 긴장이 풀리고 피곤해 짐. 

38년간의 광야생활, 7년간의 정복전쟁. 

이제 좀 쉬자. 좀 쉬었다 하자. 그러나 내가 쉬면 안된다. 쉬라고 할 때 쉬어야 한다. 

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몸이 쉬어도 마음이 쉬지 못하면 쉼이 없다. 

그러나 육신이 움직여도 마음이 쉴 수 있다. 영은 쉴 수 있다. 믿음 안에 거하면 쉼이 있다. 

안식일은 영이 쉬는 날이다. 예배가 쉼이다. 


2) 지도자가 없다. 

유다지파의 지도자, 갈렙 

요셉 지파의 지도자, 여호수아 

믿음 안에 거하고 꿈을 심어주고 성취하는 지도자

나머지 지파, 불신의 지도자, 계산하는 지도자. 현실안주형, 물질 주의형 지도자. 


각 각 세명을 뽑아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을 따라 그 땅을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4절) 


왜 신앙생활 하다가 방황하는가? 

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선 다섯지파가 분배받는 과정을 통하여 상대적인 상실감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의 불평을 보며 저들도 만족 하지 못하는데 하는 두려움에 빠졌을 수도 있다. 

땅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앞선 자들의 땅을 보며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기도하고 예배는 하는데 자기 삶에 대한 열정이 없다. 

기대가 없다. 

기도하라면 하나님 주신 것이 다 감사하지 난 따로 뭐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주어도 깨닫지 못한다. 

주님은 기적을 베푸실 때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널 구원하였다"하신다.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것을 추수하는 것이다. 


신앙 생활은 꿈을 꾸는 것이다.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 안에서 교회를 그리고 가정을 그리고 남편을 그리고 자녀를 그리는 것이다.  

시편 145편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자랑하리라. 


다윗은 기도하며 자기의 자녀의 자녀들이 주의 위대하심을 세상에 알게 할 것이라 확신하며 기도했다. 

그는 자기의 개인적인 기도를 성가대가 부르고 온 민족이 따라부르며 온 세대가 부르게 했다. 

자기의 꿈을 실천한 것이다. 

(주를 자랑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녀의 이야기)


그려서 내게로 가져오면 제비를 뽑으리라. 

그린대로 제비가 뽑히는 것이다.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밟고 꿈꾸며 그리는 대로 땅을 주는 것이다. 

  

  • 베냐민 지파 

- 야곱의 축복: (창 49:27)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남북을 잇는 교통로, 분쟁이 많은 지역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지역은 다른 지파뿐 아니라 이방 세력들에게 있어서 약탈의 대상.  베냐민 지파는 항상 긴장하며 자신들의 영토를 지켜야만 했다. 따라서 자연 베냐민 지파는 호전적이고 전투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 모세의 축복: (신 33: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예루살렘에 거함으로 요셉 지파 곁에서 머뭄. 


하나님의 전지하심, 한 인격의 앞날과 그들의 성격과 기질 조차도 붙잡고 계시는 전능하고 초월하신 분.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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